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대만 외교가에 보이지 않는 한국

중앙일보 2016.01.20 01:29 종합 29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대만 총통 선거 이튿날인 17일, 차이잉원(蔡英文) 당선인은 민진당 당사로 찾아온 일본인 손님을 만났다. 오하시 미쓰오(大橋光夫) 일본 교류협회 회장이었다. 단체 이름엔 막연히 ‘교류’라고 돼 있지만 실제는 대만과의 교류를 전담하는 기관이다. 이 단체의 타이베이 사무소는 사실상 일본의 대사관 역할을 한다. 차이 당선인은 이날 만남에서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의욕을 보였다고 대만 언론들이 전했다. 당선 이튿날부터 1면 톱 기삿거리를 내놓은 건 갑작스러운 돌출 발언이 아니라 꽤 오랜 기간에 걸친 준비의 산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10월 일본을 방문해 오하시 회장의 주선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함께 식사 회동을 했다는 게 대만 외교가의 정설이다.
 
기사 이미지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다음 날인 18일엔 빌 번스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회동하면서 미·대만 관계는 물론 양안 관계와 지역 정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대화했다. 공식 외교 관계가 없기 때문에 전직 부장관이 온 것일 뿐 실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보낸 특사나 다름없다. 대만 언론들은 번스의 이름 뒤에 아예 ‘특사’란 직함을 붙여 보도했다. 차이 당선인은 지난해 6월 미국을 방문했다. 당시 미국은 정부 청사에서 대만 요인을 만나지 않는 관례를 깨고 국무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청사에서 차이를 접견하는 등 이례적인 예우를 했다. 당시 시사주간지 타임은 차이 당선인을 표지 인물로 선정하며 “중화권 유일의 민주체제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미·일 외에도 차이 당선인은 대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의 사절들을 접견했다. 자신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을 위한 지방 순회는 외빈 접견 일정이 끝난 뒤로 미뤄놨다. 하지만 이렇게 부산한 차이 당선인의 외교 행보에 한국은 보이지 않았다. 차이 당선인이 각별히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갖고 있는 건 박근혜 대통령의 자서전에 추천문을 쓴 걸로도 입증된다. 그럼에도 한국과 차이 당선인을 이어줄 네트워크는 없다. 양국 지도층 교류가 단절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24년 전의 단교는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라 쳐도 정치인·여론지도층 교류를 통한 비공식 외교조차 지금처럼 소원해진 건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대만은 국교가 없는 가운데서도 상호 5위의 교역량을 유지하고 있는 중요한 이웃이다. 대만과의 무역량이 독일이나 호주보다 많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대만과의 친선이 결코 중국과의 우호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국 외교에서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16세 쯔위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양자택일의 발상을 외교 관계에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 <타이베이에서>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