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언제까지 정당은 인물에 의존할 것인가

중앙일보 2016.01.20 01:28 종합 29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조진만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정치외교학과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이 인재 영입에 혈안이 돼 있다. 좋은 인재를 얼마나 많이 영입하는가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우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대표하던 정당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안철수 의원이 이 틈을 노려 중도를 표방하며 신당 창당을 추진할 정도다. 많은 한국의 유권자가 기존 정당들에 대한 실망감을 갖고 투표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이 상황에서 인물은 정당에 대한 실망감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선거에서 상당수의 유권자는 인물을 중시하는 투표를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호남 지역 지지도가 역전된 이유를 인재 영입 경쟁의 성과 차이에서 찾는 평론가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정당들이 인재 영입에 정치적 사활을 거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 준 정당들의 인재 영입 과정에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언제까지 정당은 어떠한 원칙과 기준, 그리고 검증과 합의 과정도 없는 인재 영입에 의존해 선거를 치르려고 하는가다. 정당이 인재 영입에 정치적 사활이 걸려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금까지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정당은 항상 선거를 코앞에 두고야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고, 또 그때가 돼서야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선수들이 나타난다. 인재 영입을 위한 정당의 공식 기구와 절차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이를 통해 영입된 인사들이 누군지 알 수 없다. 오히려 정치인 누구와 친분이 있는지가 더 강조된다. 이러한 이유로 정당 지도자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해 모셔왔다고 해도, 방송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에 도전하겠다고 나서도 많은 국민이 감동을 받지 못한다. 특정 정치인의 추천과 지원으로 정치권에 진입한 인재들이 자율성을 갖고, 공익을 생각하면서 정치활동을 할 가능성도 작아질 수밖에 없다.

 
기사 이미지
 국민뿐만 아니라 정당에서 그동안 헌신적으로 일해 온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까. 갑자기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들이 정당 내부의 인사들보다 더 대접을 받는다면 누가 정당에서 일을 하겠는가. 정치에 꿈을 갖고 있는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정당에서 헌신적으로 일을 하고 실제로 정치인이 돼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민주주의가 좀 더 나아지고 희망이 생긴다. “평소에 우리는 이 정도의 인재를 제도적으로 키우고 있어 선거를 앞두고 최소한의 필요한 인재만을 영입하면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정당이 나와야 한다.

 정당이 큰 인물을 모셔 오면 그동안 해 온 일들에 많은 변화가 생긴다는 점도 문제다. 즉 정당의 지도자가 바뀌면 자기 입맛대로 정당에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하려고 한다. 한국의 정당들이 제대로 시스템을 갖춰 운영되지 못했고, 비전이나 정책 등에 있어서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정당이 스스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당하는 일종의 수치이자 자승자박(自繩自縛)적 상황이다. 하지만 정당정치가 잘되려면 기본적으로 안정성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도자가 바뀌어도 정당의 정체성과 정책적 입장들은 유지돼야 한다. 만약 지도자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변화와 개혁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치열하게 논쟁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이런 정당이 민주적이고, 준비가 돼 있고, 발전이 있는 정당이다.

 정치 자원의 충원은 정당의 고유 권한이다. 특히 정당에 대한 불신이 크고, 인물에 대한 기대가 있는 한국 정치에서 정당들은 인재 영입을 잘해야 한다. 정당에 꼭 필요한 인재상은 무엇인지, 어떠한 분야에 얼마만큼의 인재가 필요한지, 이러한 인재들을 어떻게 조기에 발굴해 양성시킬 것인지, 발굴한 인재들에 대한 합당한 경쟁과 대우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제도적으로 고민해야 할 일이 많다. 선거를 앞두고 원칙 없이 보여 주기 경쟁식으로 외부 인사들을 영입하는 정당의 모습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지금 정도의 시점이면 정당이나 후보자 모두 정책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합의점도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샤츠슈나이더라는 학자가 쓴 『절반의 인민주권』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정당들이 제 기능을 못하면 국민은 온전한 주권자가 되지 못하고 절반의 주권자로 전락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잘 표현한 말이다. 한국의 정당들은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지 않고 언제까지 인물에만 의존하는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주권을 절반으로 줄이는 한국의 정당들. 그 이상으로 자신들의 위상과 권한도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아직도 인식하지 못했다면 분명 바보다.

조진만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정치외교학과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