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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손동운의 도전과 좌절 함께한 ‘울보 아빠’의 편지

중앙일보 2016.01.20 00:10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최고의 유산] 아이돌 그룹 ‘비스트’ 손동운의 아버지 손일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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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되고 싶다”는 아들 말에 충격
무조건 반대 않고 ‘꿈 이루라’ 지원
데뷔 직전 포기한 아들에겐 “고생했다”


비스트 데뷔 후 음악방송 1위 한 날
“아빠, 1등 먹었어” 전화에 눈물
“환호 뒤 공허 채워주는 아버지의 편지”



손일락(61) 청주대 교수는 스스로를 ‘울보 아빠’라 불렀다. “저는 지금껏 제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어요. 그런데 저는 애들 앞에서 엉엉 운 것만 다섯 번은 넘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를 울린 아들은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멤버 손동운(25)이다. 네 살 터울 형과 다투는 일 한 번 없이 얌전하게 자라던 아들이 중학교 때 가수가 되겠다고 선언한 날부터 손 교수는 아들과 함께 사춘기의 한복판에 다시 섰다. 아들의 손을 잡고 오디션을 보러 뛰어다녔고, 질풍노도 시기의 혼돈을 함께 겪었다. 아들은 데뷔 후 처음으로 음악 방송 1위에 오른 날, 가장 먼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1등 먹었어.”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아들의 목소리에 울보 아빠는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의 꿈, 부모 기준으로 재단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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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운


손 교수는 자녀를 연예인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나 같은 일반 사람이 보기엔 연예계는 너무 생소한 곳이고,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연예계 생활이란 것이 상당히 척박해 보였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아이 외모가 남의 눈에 띄는 것이 신기하긴 했지만, 얌전하고 차분한 성품이니 착실히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하는 평범한 삶을 살 거로 생각했다.

아들의 꿈이 가수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래서 더 충격을 받았다. 아이가 중학교 1학년쯤 됐을 때 일이다. 지인의 소개로 아들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게 돼서 감독을 만난 자리였다. “감독이 동운이더러 ‘꿈이 뭐냐’고 묻는데, 이 녀석이 대뜸 ‘가수’라고 하는 거예요. 처음 듣는 얘기라 깜짝 놀랐어요.”

예상치 못한 얘기였지만 손 교수는 반대부터 하진 않았다. 아무리 허황되고 엉뚱해 보이는 꿈이라도 그걸 부모가 ‘시시하다’거나 ‘이건 안된다’고 재단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와 대화를 했다. 그 꿈을 언제부터 갖게 됐는지,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아들은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밴드를 결성해 보컬을 맡아 노래를 해왔다고 했다. 손 교수도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들이 네댓 살 무렵부터 동요 대신 발라드 가요만 부르던 게 떠올랐다. 아이의 꿈이 확고하다면 말릴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아이를 돕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재능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어떤 회사에서 오디션을 봐야 할지, 연습생으로 들어가면 계약 시 어떤 항목을 확인해야 하는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연예인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하고, 지인 가운데 연예계와 관련 있는 이들을 만나 묻고 또 물었죠. 어린 아들을 이끌기 위해선 제가 먼저 그 분야를 알아야 하니까요. 정보를 수집한 뒤부터 오디션을 직접 데리고 다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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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손동운(왼쪽)과 네 살 위 형.


연예기획사의 훈련 과정은 생각보다 혹독했다. 숙소 생활을 하며 하루에 10시간가량 노래하고 춤을 추는 생활이었다. 연습생 생활이 6개월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이가 씻지도 못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손 교수는 잠든 아이의 양말을 벗겨주다 눈물을 쏟았다. “동운이가 원래 몸치거든요. 얼마나 춤 연습을 했는지 발톱이 성한 게 없고 여기저기 찍혀 피가 잔뜩 맺혀있고… 하여튼 엉망이었어요. 밤새 아이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마음속으로 ‘이만큼 노력하는 걸 배웠으면 됐다. 네가 스타가 되지 못해도 평생 이 길을 갈 수 있게 아빠가 밀어주겠다’고 결심을 했죠.”

가끔 아들의 숙소에 들러 보면 다른 연습생들의 노력도 엄청났다. “연습생 때 기광이의 운동화를 본 적 있는데, 열 켤레나 밑창이 닳아서 없더군요. 발바닥에 있는 족문까지도 다 닳아버렸고요. 지금 데뷔한 연예인들 쉽게 된 게 아닙니다. 엄청난 노력파들이에요.”

 
아들 마음 이해하려 명상센터서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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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멤버들. 왼쪽부터 손동운, 양요섭, 장현승, 용준형, 이기광, 윤두준.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매 순간이 예측불허다. 아이의 변덕은 죽 끓듯 하고 그때마다 부모의 감정선도 롤러코스터를 탄다.

손 교수도 이 같은 과정을 겪었다. 연습생 생활 1년이 넘어, 데뷔가 임박해오던 시기에 아이가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포기 선언을 한 거다. 손 교수는 “그때가 중3 때였다”며 “연습생이라는 게 학교 공부와 대학 진학을 다 포기한 채 데뷔만 목표로 달려온 건데, 그 시점에 포기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얘기했다.

아무리 설득해도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손 교수는 “심한 배신감이 들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아들과 의절을 선언할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 아들 손동운씨는 “연습생 생활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게임도 하는 평범한 학교생활이 그리웠다”며 “그 마음을 몰라주는 아버지가 야속했다”고 떠올렸다.

손 교수는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매를 댄 적이 없다. “매를 들면 아이가 눈앞에서 무릎을 꿇을 순 있겠죠. 하지만 마음 깊이 설득되고 수긍하지 못한 채 겉으로만 하는 순종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또 제가 매를 때릴 때, 완벽하게 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거란 자신도 없어요. 때리면서 오히려 제 분노가 팽창될 거 같아 아예 매를 들지 않죠.”

대신 산속에 있는 명상 센터를 찾았다. 자신부터 마음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간 명상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며 ‘내 마음속에 정말 아이를 위한 생각뿐인가’ ‘내 욕심은 없었나’ 되짚었다. “결론은 아이의 인생에서 마지막 발걸음을 떼는 건 결국 아이의 몫이란 사실이었어요. 조언을 해주고 방향을 잡아줄 수 있겠지만 마지막 걸음은 아이가 뗄 수 있게 지켜보는 게 부모의 몫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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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운이 연습생을 그만둔 뒤 일본으로 다녀온 가족 여행.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뒤 온 가족이 일본 여행을 떠났다. 손 교수는 여행하며 아이에게 “고생했다”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손동운씨는 “이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건네준 맥주를 마셔봤다”며 “일본어를 잘하는 아버지를 따라 도쿄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든든한 아버지의 사랑을 진심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이 여행 뒤부터 가족 중 누구도 ‘연예인’이나 ‘가수’란 말을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2PM, 원더걸스가 데뷔해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손 교수는 “원더걸스 소희는 동운이랑 같은 날 연습생 계약을 체결했던 아이고, 다른 친구들도 전부 같은 숙소에서 연습하던 아이들이라 씁쓸했다”며 “그러니 동운이는 오죽했겠냐”고 말했다.

2년간 차분히 공부하던 아이가 어느 날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빠, 한번 사는 인생인데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라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손 교수는 “의지가 느껴지더군요. 그래, 마지막으로 한번 도와주자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 소속사인 큐브엔터테인먼트가 다른 기획사에서 겉돌던 우리 동운이를 비롯해서 현아, 기광이 이런 애들을 받아줬어요. 비스트 멤버 6명은 전원이 한 번씩 실패를 겪었던 아이들이에요. 현승이는 YG에서 빅뱅 멤버를 선발할 때 마지막 순간에 떨어졌죠. 두준이는 2PM 멤버를 선발하는 ‘열혈남아’라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는데 탈락했고요. 어린 나이에 얼마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을 느꼈겠습니까. 데뷔를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도 하나같이 너무 안쓰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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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운의 별명은 ‘남신’이다. 이국적인 얼굴이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남신(男神)처럼 보인다는 의미다. 손일락 교수는 아들에게 편지를 쓸 때면 팬들이 지어준 별명인 ‘손남신’을 애칭으로 사용하고, 자신은 ‘남신의 아버지’라는 의미로 ‘제우스’라 칭한다. 편지는 손동운이 일본에서 ‘KIMISHIKA’라는 발라드 음반을 내고, 지난해 8월 단독 콘서트를 갖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손 교수가 쓴 것이다. 댄스 그룹 비스트로 데뷔했지만 발라드를 부르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고 도전하는 것에 대한 격려와 칭찬의 내용을 담았다. 손 교수는 “이 편지를 일본어로 번역해 콘서트장에서 사회자가 낭독하자 일본 팬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바쁜 아들에게 '잔소리 편지'로 마음 전해

지금은 어엿한 인기 아이돌이지만, 비스트 데뷔 직후 팬은 300명, 안티는 1만 명이 넘었다. 당시 인기를 모았던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 코너의 ‘왕비호’가 비스트 멤버를 “재활용 쓰레기”라 소개했을 정도였다. 각종 비방과 악성 댓글도 넘쳐났다.

손 교수는 아들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편지를 썼다. ‘아빠가 네 왕팬인 건, 네가 속한 그룹이 실패와 역경을 이겨낸 가상한 친구들이기 때문이야. 무자비하고 혹독한 비난과 날 선 시선만이 전부가 아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기억해’라는 격려부터 ‘너는 프로 가수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담배는 절대 손대선 안 된다. 담배는 성대와 폐활량에 악영향을 미치니 네가 그토록 되고 싶어하던 가수로서의 삶을 단축할 뿐이다’라는 훈계까지 편지에 담았다. 손동운씨는 “아버지의 말씀은 늘 한결같다”며 “가끔 흘려듣기도 하지만 느슨해지는 나를 다잡는 데 더없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인은 무대 위에선 엄청난 함성과 박수를 받지만, 팬들이 돌아간 순간 적막과 공허함을 견디기 힘들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편지가 내 안의 공허함을 채워주고 다시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자신의 편지를 “잔소리를 글로 쓴 것”이라며 웃었다. “집에서 얼굴 마주볼 시간이 길다면 말로 잔소리를 했겠지요. 그런데 동운이는 중학교 1학년 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엔 뒤처진 공부 따라잡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데뷔한 다음부턴 너무 바빠 통 얼굴 볼 수가 없고요. 지금도 편지를 써서 책상에 올려두거나 SNS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동운이도 가끔 답장을 써서 제 책상 위에 올려놓지요.”

아이돌 그룹 비스트가 처음으로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른 날, 손동운씨는 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연습생이 됐을 때부터 힘들어서 포기하고 좌절했던 시간, 다시 도전한 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다”며 “그때마다 항상 내 옆에 있어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옆에서 격려하고 같이 아파해주셨던 아버지가 보고 싶어 울면서 전화를 걸었죠. 아버지는 ‘장하다’는 한마디 하시곤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씀을 잇지 못했고 저도 아무 말 못하고 한참을 같이 울기만 했어요.”

 -아들과 갈등하다 명상 센터에 들어갔다는 게 인상적이다. 일반적인 부모라면 아들을 보냈을 텐데.

“아들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생각을 바꿔야 할 사람은 나였다. 자식의 선택이 안타깝고 화가 나도, 부모가 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의 선택을 인정할 수 있게 나의 혼란한 마음을 정리하고 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내 마음이 차분해졌을 때, 아이와 집사람에게도 가보라고 권했고 그 두 사람도 다녀왔다. 모두가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아들 둘을 키우면 매를 안 들 수 없다고들 하는데.

“나 역시 부모님께 매를 맞아본 적이 없다. 중고교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께 매를 맞은 적은 있지만 그게 ‘사랑의 매’라고 느낀 적은 없다. 그리고 내 아들이 나에게 매가 두려워 고개 숙이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를 통해 마음으로 승복하고 수긍하는 게 좋다. 내 생각이 잘못됐으면 그것도 대화를 통해 발견하고 고치려고 한다.”

-대화를 많이 하는 친구 같은 아빠인가 보다.

“전혀 아니다. 오히려 엄한 편이다. 대학에서 글로벌 매너를 가르치는데, 아이들에게도 매너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시켰다. 교육은 아침 식사 시간에 주로 했다. 동운이가 연습생으로 숙소 생활을 할 때를 제외하면 거의 항상 아침 식사 시간은 함께한다. ‘밥상머리 교육’을 하는 거다. 맛있는 반찬 집어서 아이 숟가락 위에 올려주며 짤막한 우화 같은 걸 한 토막 들려준다.”

-어떤 이야기를 밥상에서 주로 하나.

“내가 자주 하는 이야기는 ‘빈 항아리론’이다. 어린 시절은 빈 항아리를 채우는 시기다. 누군가는 그 안에 구정물을 담기도 하고, 누군가는 맑은 물을 담는다. 또 누군가는 물을 반도 못 담고 그만두는데, 누군가는 넘치도록 붓고 또 부어 항상 신선한 물이 넘실거린다. 너희는 지금 항아리에 무엇을, 얼마나 담았느냐고 묻는다. 이 이야기를 여러 버전으로 각색해서 들려준다.”

-스스로 ‘울보 아빠’라고 했다. 언제 눈물을 보였나.

“부모는 인생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이 앞에 있는 바윗덩어리가 보인다. 이 길로 계속 가면 분명히 바위에 부딪혀 넘어지고 다치고 피가 날 것을 알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말린다. 아이가 그 말을 듣지 않고 바위를 향해 달려가 부딪히는 모습을 볼 때, 눈물이 흐른다. 동운이가 연예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도 눈물이 났고, 중간에 연습생을 포기했을 때도 울었다. 큰 아이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차분히 설득했는데 아이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때도 정말 눈물로 호소했다. 내 진심을 느꼈는지 자퇴 의사를 번복하더라.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따라 나 역시 새롭게 성장하는 거다. 눈물을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수가 되기까지 힘들었는데 인기 가수가 된 후에는 어떤가.

“연예인의 삶이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 가족들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열렬한 사랑과 비수 같은 공격을 동시에 받는다. 많은 연예인이 자신을 향한 극단의 반응 사이에서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낀다. 가족의 보살핌과 지지가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 생활이 녹록지 않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나.

“동운이는 가수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니 대단한 성공이라도 한 것 같지만, 실상은 이제 20대 청년에 불과하다. 아직 빈 항아리를 채워나가야 할 시기다. 현재 모습에 안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러운 건 데뷔 8년차 가수임에도 꾸준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일본어 등 외국어를 배우는 데도 열심이다. 뮤지컬 등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도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잔소리 편지에도 ‘끊임없이 내면을 성찰하며 잠재력을 끄집어내길 바란다’는 내용을 자주 담는다.”

-아빠가 잔소리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잔소리를 시작할 때 내 특유의 말버릇이 있다. ‘예컨대’라거나 ‘이를테면’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면 아이들이 ‘아빠, 또 교훈 시작하시네요’라고 얘기하긴 한다. 듣기 싫을 때도 있겠지만 대놓고 반항하진 않는다. 반항하더라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요즘 청소년의 희망 진로를 조사해보면 ‘연예인’이 항상 상위권에 올라있다. 연예인을 꿈꾸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조언해달라.

“꿈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어떤 꿈도 그 자체로 완성형이 아니다. 자녀가 어떤 꿈을 꾸더라도 그 자체로 인정해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이드를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연예인을 꿈꾼다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고 반대할 일도 아니고, ‘한번 시작했으면 무조건 거기서 승부를 보라’고 채근할 것도 아니다. 아이에게 재능이 있는지 전문가에게 데려가서 상담도 받아보고, 재능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펼쳐줄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보길 바란다. 하지만 마지막 걸음을 떼는 건 아이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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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일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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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경희대학교대학원 관광경영학과 석사
92년 경기대학교대학원 관광경영학과 박사
78~83년 신라호텔·서울가든호텔 레스토랑 마케팅매니저
83~90년 부산여대·한국관광대학 교수
97년 한국외식산업연구소 부소장
2000~2002년 한일월드컵 교육위원
1990년~현재 청주대 호텔경영학과 교수

○ 인생의 롤 모델: 부모님(정의와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들), 세자르 리츠(위대한 호텔리어)
○ 내 인생을 바꾼 습관: 신문 스크랩(대학 진학 이후 주제별로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 반복적으로 읽는 습관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함)
○ 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나도 세 번 이상 읽었으며, 아이들에게도 세 번 이상 읽도록 강추함)
○ 좌우명: 매너는 경쟁력이다.

글=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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