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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시장 자율 외치더니…정치권 등쌀에 카드사 팔 비튼 금융위

중앙일보 2016.01.20 00:08 경제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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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강제할 일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카드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인상안에 대해 묻자 금융당국자 A씨가 18일 내놓은 답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19일 확인됐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전날 금융당국이 카드사 담당자들을 불러모아 논의한 끝에 일부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인상 계획을 철회키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애초엔 수수료 인상 시기를 4월 총선 뒤로 미룰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예 철회로 입장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당국자 A씨의 말대로라면 금융당국은 카드사 임원들을 불러모으기만 했을 뿐인데 카드사들이 알아서 철회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앞서 카드사는 이달 초 244만 가맹점 중 약 25만 곳의 수수료를 이달 31일부터 올린다고 통보했다. 매출액이 3억~10억원인 일반 가맹점이 대상이었다. 196만 영세·중소가맹점(연 매출 3억원 이하)의 수수료율을 일괄 인하(0.7%p)한 것과 동시에 이뤄진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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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따라 영세·중소가맹점 수수료율은 사실상 정부가 정한다. 이와 달리 나머지 가맹점은 각 카드사가 원가(결제에 드는 비용)를 계산해서 인상요인이 있다면 올릴 수 있다.

 인상 통보를 받은 가맹점의 불만이 연초부터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난해 11월 정부와 정치권이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대폭 완화했습니다”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게 불만을 더 키웠다.

수수료가 오른 약국·수퍼마켓·편의점·음식점 관계자들이 국회로 달려갔다. 그러자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카드사 성토에 나섰다. 카드사의 ‘꼼수 인상’이자 ‘수수료 돌려 막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카드사는 “꼼수가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른 조정”이라고 해명해도 소용 없었다. 불과 일주일 전 일이다.

 정치권이 나서자 화들짝 놀란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회의를 소집하고 카드사에 대책을 내놓으라 했다. 이미 원가 계산을 끝냈고 그에 따라 수수료 인상 통보까지 한 뒤다. 그런데 대책이랄 게 뭐가 있겠는가.

금융당국의 서슬에 카드사는 손 들고 말았다. 수수료 인상을 통보한 25만 가맹점 중 10만 곳에 대해 철회를 결정했다. 소액 결제가 많아서 원가 인상요인이 있었던 약국·수퍼마켓·편의점 등이 주 대상이다.

다만 과거엔 영세·중소가맹점이었지만 매출이 3억원을 넘어선 가맹점 15만곳에 대해선 수수료를 예정대로 올리기로 했다.

 “수수료 수입이 7000억이나 줄어든다”, “카드사가 동네북이냐”, “공정위가 보면 이건 담합 아니냐”. 카드업계는 아우성이다. 가맹점 입장에서 보면 해마다 수익을 내는 카드사의 성토가 괜한 앓는 소리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카드업계도 할 말은 있다. “절절포(절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규제 완화)라면서요. 시장자율을 모토로 금융개혁을 한다면서요. 그런데 정치권 민원에 휘둘려서 시장원칙을 거스르면 어쩌자는 겁니까. 규제가 일관성이 있어야지요.” 1년 전 금융당국에 ‘절절포’를 외쳤던 임종룡 당시 농협금융지주 회장. 이제 업계가 금융위원장인 그에게 절절포를 되묻고 있다.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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