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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차별 없는 복지 vs 맞춤형 복지

중앙일보 2016.01.20 00:02 Week& 6면 지면보기
누리과정 예산 갈등으로 본 복지 논쟁

보육 대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만 3~5세 무상보육 과정인 누리과정 예산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중앙정부와 17개 시도 교육청, 지방의회 사이에 벌어진 예산 떠넘기기 싸움에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본다. 예산 갈등은 ‘복지’에 대한 더 근원적인 논쟁으로 옮겨간다.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선택적으로 복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선별적 복지’와 차별 없는 ‘보편적 복지’가 팽팽하게 맞선다.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교과서와 언론, 각종 자료를 통해 ‘무상복지’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알아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0.4%를 기록했다. 조사 대상 28개국 중 꼴찌다. OECD 평균(21.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사회복지지출 증가 속도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13.1%(OECD 회원국 평균 2~8%)로 가장 빠르다. 보건·복지·노동 분야 정부 예산은 2009년 75조원에서 올해 123조원으로 70% 가까이 증가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초 내놓은 ‘2060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올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0%를 넘어서고, 2060년엔 62.4%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성장률 하락 등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면 최고 158.4%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왔다.

늘어나는 복지 지출에 대비해 치밀하고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이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이념 논쟁으로 치닫는 ‘무상복지’ 논란을 끝내고 냉정하면서 합리적인 복지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선별’이냐 ‘보편’이냐 양자택일식 극단적인 복지 논쟁이 아닌 향후 경제 성장과 정부 예산 수준에 맞는 합리적인 복지 정책 논쟁으로 논쟁 축을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육 대란’ 이해를 돕는 시사 키워드

●무상보육=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2012년부터 시작된 영·유아 보육비 지원 복지 정책. 과거엔 소득 수준에 따라 보육비 또는 양육 수당이 차등 지급됐으나 2012년부터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일정액을 지원받도록 바뀌었다. 만 0~2세 영아 무상보육과 만 3~5세 유아 무상보육으로 나뉜다.

●누리과정=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는 만 3~5세를 대상으로 한 공통 교육과정. 2012년 만 5세를 시작으로 이듬해 만 3~4세까지 확대됐다. 어린이집·유치원 구분 없이 월 29만원(국공립은 월 11만원)을 소득과 관계없이 지원받는다. 올해 누리과정에 필요한 전국 예산은 약 4조원에 이른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각 시도 교육청이 중앙정부로부터 받는 예산 지원금. 각 시도 교육청 1년 예산의 약 70%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 30%는 지방세와 전년도 이월금이다. 각 시도 교육청은 교육청 예산 중 대부분이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경직성 비용이기 때문에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 교육청이 부담하기엔 무리가 따른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공약 사항인 만큼 중앙정부가 예산을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다.

●포퓰리즘(populism)=비현실적인 선심성 정책 등 대중적인 인기에만 영합하는 정치 행태. 일각에선 무상급식·무상보육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 재연…보수·진보의 갈등
누리과정을 둘러싼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처음 도입된 이후 매해 중앙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은 예산 갈등을 빚어왔다. 교육감들은 중앙정부가 지방 교육청에 지원하는 지방교육재정부담금(교부금)이 부족해 무상보육 예산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누리과정 논란은 겉으로는 예산 갈등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지금 누리과정 갈등과 묘하게 오버랩 되는 장면이 있다. 바로 2010년 불거진 무상급식 논쟁이다. 당시 진보진영은 ‘차별 없는 따뜻한 밥 한 끼’를 슬로건으로 내걸며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반대로 보수진영은 무상복지 무임승차론과 도덕적 해이, 재정 파탄을 근거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반대했다.

당시 상황이 현재 누리과정 갈등에서 진보·보수가 서로 입장을 바꿔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지난 5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담화문 발언엔 이런 정치권의 정략적 이해관계가 잘 드러난다. 최 장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인 2012년부터 누리과정을 문제없이 편성해 오다가 2014년 6월 교육감 선거 이후 (지방 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서울·경기 교육감 등 13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시점을 꼭 짚어 언급했다.

언론은 누리과정 갈등의 책임이 정치권 모두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애초 정부와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빠져 예산 문제를 촘촘히 따져보지 않은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귀를 닫고 여야는 서로 책임을 미루며 총선에 미칠 유불리만 저울질한다.”(중앙일보 2015년 12월 25일 ‘누리과정 예산 갈등, 정부와 정치권이 결자해지하라’)

양극화 해소냐, 정책의 효율성이냐
무상급식·무상보육 등 무상복지 논란 속엔 복지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차가 존재한다. 무상복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쪽은 ‘보편적 복지’를 강조한다.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보편적 복지’가 양극화 해소에 더 효과적이고,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로 경기를 부양시키는 효과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지만 늘어나는 예산을 감당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조세 부담이 증가하고 정책 운용이 비효율적으로 흘러갔을 때 정부의 재정 파탄을 불러올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선별적 복지’는 ‘보편적 복지’의 단점을 보완한다. 복지 혜택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분야와 사람에게 집중해 정책 효율성을 높인다. 소득 수준이 낮은 국민에게 높은 복지 혜택을 주고, 반대로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에겐 낮은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선별적 복지’의 입장에선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이 무상급식·무상보육 같은 혜택을 받으면 복지 무임승차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복지를 바라보는 두 관점은 사회 갈등의 원인 또한 다르게 본다. ‘선별적 복지’는 자유와 경쟁을 통해 사회 전체의 효용이 증가한다고 본다. 보수주의·자유주의 입장이다. 이는 기능론의 관점을 담고 있다. 고등학교 금성출판사 『사회·문화』 교과서는 “기능론에서는 사회에 기여하는 정도, 즉 기능적 중요도에 따라 합당한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고 각 지위에 따른 역할 수행 능력에 따라 자원이 차별적으로 분배된다고 파악한다”고 설명한다. 기능론의 입장에선 능력에 따른 차별적 보상은 경쟁을 유발하는 동기가 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반대는 갈등론이다. 교과서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사회적 유지와 존속을 위해 모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보수나 대우를 차등 분배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높은 지위와 많은 보수가 주어지는 직업을 갖기 위한 기회도 개인의 자질과 노력보다는 부모의 소득이나 학력 등 가정 배경에 따라 제한받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한다.

재원 마련 위한 증세 필요성 제기돼
양극화 심화와 급격한 저출산·고령화 사회 진입은 사회 안전망을 뒤흔든다. 세계경제협력개발(OECD)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로 OECD 34개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2014년 기준으로 0.302를 기록했는데, 이는 OECD 국가 중 17번째로 중간 정도 수준이다.

언론은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고 안전망 구축을 위해 복지 제도의 확충은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식한다. “불평등한 분배는 교육 기회를 제약해 인적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세대 간 계층 유동성을 제약하며 사회적 갈등 구조를 초래해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중앙일보 2015년 2월 11일 ‘[논쟁] 재정 안정인가, 복지 확대인가’)

하지만 늘어나는 복지에 필요한 재원 마련은 현실적인 문제다. 한국의 조세 부담률은 18%로 스웨덴(50%)과 같은 복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상황이다. 올해 정부 총 예산 386조4000억원 중 123조4000억원(31.9%)이 보건·복지·노동 등 복지 분야 예산이다.

언론은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이 세상에 ‘공짜 복지’는 없다. 국민들은 적게 벌든 많이 벌든 그에 비례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또한 고용 없는 경제성장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으로 자본가들이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만큼 이들의 부담이 뒤따라야 한다. 국민이 감당할 수 없는 복지나 사회 성과가 낮은 복지는 계층 갈등을 야기하고 지속 가능성을 떨어트린다.”(중앙일보 2015년 4월 1일 ‘감당 못할 복지는 계층 갈등만 일으켜’)

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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