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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배우려 연습공 30만 개… 불같은 뚝심의 승부사

중앙선데이 2016.01.17 01:18 462호 10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박용석 parkys@joongang.co.kr



병신년(丙申年) 새해에 경제계 최고 화제의 인물은 단연 임성기(76) 한미약품 회장이다.?


‘1100억원 통 큰 성과 공유’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한미사이언스 주식 약 90만 주를 임직원 2800여 명에게 무상 증여했기 때문이다.?임 회장이 소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의 4.3%, 한미사이언스 전체 발행 주식의 1.6%에 해당하는 물량이다.?금액으로는 1100억원대에 달한다.



잇따른 기술 수출 낭보가 ‘통 큰 성과 공유’의 배경이 됐다.?한미약품은 지난해 7개의 신약 개발기술을 글로벌 제약기업인 사노피-아벤티스·얀센·베링거인겔하임 등에 수출했다.?총 8조원 규모의 계약이 체결됐다는 소식에 주가는 8배로 뛰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 성과가 제약업계 전반에 큰 자극이 되고 있다”며?“임 회장의 뚝심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셈”이라고 평했다.

1960년대 서울 종로에 문을 연 임성기약국 모습(왼쪽)과 당시 신문 광고.





“높은 목표를 달성하려면 간절한 바람이 잠재의식에까지 미칠 정도로 곧고 강해야 한다. 주위의 시선에 우왕좌왕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싶다면, 하고자 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길을 가겠다고 굳게 다짐하라. 그리고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어라. 그런 간절함이 없다면 처음부터 꿈도 꾸지 마라.”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의 저서 ?왜 일하는가?의 한 대목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교세라와 KDDI의 설립자로 일본인들에게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선 육종학자 고(故) 우장춘 박사의 사위로도 유명하다. 임 회장은 평소 존경하는 인물로 이나모리 회장을 꼽으며 “그의 철학을 닮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원들에게 이나모리의 저서를 선물하고 독후감을 써 오라고 할 정도다.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은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임 회장은 평소 “제대로 된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뿐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도 “불가능하다”고 외쳤던 그 꿈은 결국 현실로 바뀌고 있다.   ‘회장님’보다 ‘약사’라는 자부심 강해 회사 안팎에서 ‘회장님’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는 ‘약사’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외부 강연에서 본인을 “약국을 하다 제약을 한 임성기 약사”라고 소개할 정도다. 중앙대 약대 졸업 후 1966년 서울 종로에 임성기약국을 차렸다. 28세의 나이였다. 약국 상호에 자신의 이름을 넣은 것은 ‘이름 석 자에 흠이 안 가도록 손님에게 정성을 다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막상 약국을 열긴 했지만 돈이 없어서 많은 약을 구비하기는 어려웠다. 약사인 친구에게 빈 약갑을 빌려 진열장을 채웠다. 임 회장은 “손님이 ‘저 약을 달라’며 빈 갑을 가리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며 “약국 상호, 가운 착용, 명찰 패용 세 가지가 약사 임성기와 임성기약국을 특별하게 기억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약사가 흰 가운을 입고 명찰을 다는 것이 일반화됐다.



그의 약국은 당시로는 드물게 성병 치료제를 취급하며 명성을 얻었다. ‘임질 매독 임성기약국(전화 764-5511)’이라는 도발적인 내용의 광고 전단은 그의 이름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항간에는 그가 약국을 알리기 위해 개명을 했다는 잘못된 소문이 나기도 했다. 임 회장은 “월남전이 한창이던 때 현지로 약을 보낼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약국 운영으로 종잣돈을 마련한 그는 73년 임성기제약을 세웠다. 좋은 약을 직접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에서였다. 그해 동료 약사들이 합류하자 임성기제약은 상호를 한미약품으로 바꿨다. 신약 개발의 꿈은 이렇게 시작됐다.



임 회장은 자신을 “모험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모험심이 창조와 도전을 낳았다”고 회고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그에 대해 “젊은 사람보다 더 앞서가는 혁신적인 사람”이라며 “최초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 차별화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베이트 영업 포기하고 R&D에 투자 1897년 동화약품에서 시작된 국내 제약업계의 역사에서 창립 42년의 한미약품은 젊은 기업에 속한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창업 후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확대해 2000년대에는 5위권 제약사로 뛰어올랐다. 설립 초기엔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특허가 끝난 오리지널 의약품을 복제한 제네릭을 판매하며 몸집을 키웠다. 국내 대부분의 제약사가 복제 의약품을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영업력 이외에 차별화 요소는 없었다.



약국을 직접 경험해 본 임 회장의 영업전략은 탁월했다. 한미약품의 약을 사용하는 약사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고 영업사원들에게 무제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했다. 2000년 의약분업이 시행되자 영업사원 수를 다른 회사보다 5배 더 늘리며 동네 병원까지 영업하도록 했다. 당시에는 고가였던 휴대전화를 나눠 준 것과 현지 퇴근을 제도화한 것은 업계 최초였다.



이런 영업 중심 전략은 정부가 2009년부터 규제를 강화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 결과 2010년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임 회장이 리베이트 근절에 나서자 당시 의약계에서는 “한미약품이 앞장서 의사도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 실시(2010년 11월)를 추진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한미약품은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실시하는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CP) 평가에서 최고 등급인 AA를 받았다. 제약업계에서는 대웅제약에 이어 두 번째다. 2007년 CP를 처음 도입한 한미약품은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제도를 운용해 지난해에는 A등급으로 올라섰다.



리베이트 파동을 겪으며 임 회장은 영업 대신 연구개발(R&D)에 더욱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이미 99년에 “기술 개발에 매달리지 않으면 기업의 생존도 바랄 수 없다”며 “국내가 아니라 국제 수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개발에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던 그다. 2014년 국내 상장 제약사들은 매출의 평균 8.3%를 R&D에 투자했지만 한미약품은 20% 이상을 쏟아부었다. 전용관 KT&G 생명과학 대표는 임 회장을 한마디로 ‘불같은 성격’이라고 정의하며 “기초 없이 무모하게 뛰어들면 화를 입겠지만 그의 지식에 불같은 성격이 더해져 추진력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승위해 바둑기사의 개인과외 받기도 국산 개량 신약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에소메졸’ 출시 과정은 그의 승부사적 기질을 보여 준다. 오리지널 제조사(아스트라제네카)가 제기한 특허소송에 휘말려 시장 진출까지 2년을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대형 제약사와의 소송전이 쉽지는 않았지만 임 회장은 ‘기술이 확실한 만큼 승산이 있다’는 생각으로 버티자고 했다”며 “이때의 경험은 결국 소중한 자산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뚝심과 집념을 보여 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미약품 전직 임원은 “임 회장이 첫 골프 라운딩을 위해 3년 동안 매일 연습장을 다니며 연습공을 30만 개 쳤다”고 전했다. 평소 바둑을 즐겨 하는 그가 한 지역 바둑대회에서 예선 탈락하자 이듬해 다시 그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설욕을 위해 유명 바둑기사의 개인 과외를 받으며 1년간 절치부심했다고 전해진다.



한미약품은 서울대 의대 관현악단 출신 의사들이 만든 메디칼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후원하고 있다. 클래식 애호가인 가족들의 뜻이 반영됐다는 주변의 설명이다. 아들과 딸이 모두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은 미국 보스턴칼리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97년 버클리음대에서 재즈 작곡 석사 과정을 밟았다. 회사 관계자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음악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회사에 들어오라는 것이 임 회장의 뜻이었다”고 전했다. 장녀이자 셋째인 임주현 상무 역시 이런 뜻에 따라 보스턴대 음악과 졸업 후 한미약품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에도 관심이 크다. 임 회장은 2003년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사진예술을 지원하는 한미문화예술재단을 설립했으며 사옥 내에 한미사진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임 회장은 지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7시30분에 업무별 임원회의를 주도한다. 매일 부서별로 돌아가며 임원과 실무 팀장급으로부터 직접 업무현황을 보고 받는다. 중국 시장에 관심이 많아 베이징한미약품에 한 달에 한 번씩 직접 방문한다. 그는 글로벌 제약업체 가운데서도 중국에 진출한 곳이 드물었던 96년, 최초의 한·중 합작 제약기업인 베이징한미약품을 설립했다. 영어공부도 꾸준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출 협상 내용을 통역없이 알아들을 정도다.



인재 등용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보수적인 한국 제약업체 분위기와 달리 유독 여성 임원이 많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남성 직원 1인 평균 연봉은 4400만원, 여성은 3700만원으로 타사에 비해 남녀간 격차가 적다. 실리를 중요시하는 성격도 눈에 띈다. 직원 식비로 외부에 돈을 쓰느니 아예 좋은 식당을 차리자며 만든 것이 회사 지하 1층에 위치한 중식당 ‘어양’이다. 고급 음식점이지만 직원들은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할 수 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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