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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의 앞뒷면 같은 아동학대·과잉보호

중앙선데이 2016.01.17 01:18 462호 2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12세 소녀가 3년간 학교도 못가고 친아버지와 그의 동거녀에 의해 굶주림과 폭행을 당하다 탈출한 사건이 있었다. 몇 년 전 28세 청년이 28개월된 아들을 방치하고 게임만 하다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일도 있었다. 이어 부천에서는 11세 소녀가 어머니와 지하방에서 6t이나 되는 쓰레기 더미속에서 살다 주민자치센터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아동학대 발생 건수는 2014년 1만 27건으로 2010년에 비해 77.2%나 늘었다.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81%나 됐다.


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사실 사회 전반적인 추세를 보면 아동학대보다는 아이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과잉보호가 문제다. 아이 주변을 맴돌며 보호하는 ‘헬리콥터맘’부터 아이 앞길의 방해물을 먼저 해결해주는 것을 비유한 ‘잔디깎기맘’등은 과잉보호를 비판한 신조어들이다. 강남지역에는 ‘만든 아이’라는 말이 있다. 열심히 사교육을 시키고, 스펙을 만들어 대학에 보낸 아이를 의미한다. 이들은 대학은 잘 갔지만 스트레스와 격해진 경쟁에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몸만 어른이나 마음은 여전히 아이인 성인들이 등장해 취직 후 부서 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부모가 대신 항의하는 세상이 됐다.



이 두 현상은 사실 동전의 앞뒷면이고 본질은 같다. 부모가 아이를 독립적 개체가 아닌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동학대는 ‘내 것을 내가 마음대로 하는데 왜 사회가 나서는가’라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사회가 아동을 보호하고 친권을 박탈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상식이라 여겨진 것은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사회가 각박해지고, 나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들어지게 되자 생존을 위한 노력의 범위가 좁아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최소한의 단위가 ‘가족’에서 ‘나’로 좁혀지면서 나는 굶어도 아이는 먹이고 입혀야한다는 본능적 돌봄행동의 의무조차 버거운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몇 개의 특이한 사건이 아니라 커다란 경향의 끝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른 한 극단은 과잉보호다. 부모들은 자신의 개인의 만족과 성취를 위해, 또 안락한 노후를 위한 노력으로 원하는 방식대로 키우려는 일종의 ‘아이육성 롤플레잉 게임’에 참여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유식하게 말해 자아의 확장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소유물의 일종으로 보기에 벌어진 일이다. ‘다 너 좋으라고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나 좋기 위해 하는 일’이다.



지금 세상은 아이를 두고 두 개의 극단을 향해 뻗어나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한쪽은 아이를 낳았을 뿐 내버려두거나 자기 감정의 분풀이 대상으로 삼는 것, 다른 한 쪽은 소망 충족을 위한 대상으로 롤플레이 게임의 캐릭터로 삼는 것이다. ‘에이, 나는 이 정도는 아니야’라고 손사래를 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거의 모든 부모는 양 끝단 사이의 어디쯤에 놓여있다. 언제든지 한쪽으로 확 쏠릴 위험이 있다. 부모가 항상 자신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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