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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어린아이를 보라, 미소 짓고 있는

중앙선데이 2016.01.17 00:39 462호 14면 지면보기

‘키다리 아저씨’ 영화 포스터



상처 극복의 첫걸음, 내면아이에게 말 걸기“한때 우리 자신이었던 어린아이는 일생 동안 우리 내면에서 살고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여울의 심리학으로 읽는 문학: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

지난 회에서 소개했던 심리학 개념 ‘내면아이(inner child)’에 대해, 내가 워낙 반신반의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내 안에 내면아이가 정말 있기는 있나 싶어 그 아이를 시험 삼아 한 번 불러 보았다. “정말 너란 애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네 존재를 믿을 수가 없는 걸까?”



이렇게 말을 걸어 보았더니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네가 그렇게 나를 무시하니까 내가 안 보이는 거야. 난 항상 네 곁에 있었어.” 더럭 겁이 나기도 했고, 한편으론 그 아이가 반갑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안의 어린아이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때로는 투정부리기 좋아하는 그 아이를 야단치기도 하고, 때로는 지칠 줄도 모르고 사랑받기만을 맹렬히 원하는 그 아이를 다독이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면서.



마거릿 폴의 『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에도 나처럼 내면아이를 무시하던 로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직장 스트레스로 초주검이 되어 있었던 로라는 어느 날 심리상담을 받고 ‘내면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이렇게 말한다. “만약 네가 정말 내 안에 있다면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 그랬더니 그녀 안에서 누군가가 절규하는 것이 아닌가. “제발 도와줘!” 로라는 그때부터 자신의 내면아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너 혼자 이 모든 것을 다 해낼 필요는 없다고. 너 혼자 그 모든 짐을 감당할 필요는 없다고.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고.



우리는 이렇게 각자의 내면아이에게 말을 걸어 줄 필요가 있다. 내면아이와 성인아이의 유대감(inner bonding) 형성이야말로 자기 안의 오랜 상처를 극복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가 너무 쑥스럽고 어색하다면, 내면아이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책이나 영화를 접해 보는 것도 좋다. 나에게 내면아이를 일깨운 최고의 책은 『키다리 아저씨』였다. 이 이야기는 내게 일종의 죄책감어린 쾌락(guilty pleasure)을 선물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탄식했다. 왜 난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까지 키다리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미 다 자랐지만, 충분히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또 다른 키다리 아저씨의 조건 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이 욕심꾸러기야말로 내 안의 내면아이다. 하지만 『키다리 아저씨』는 나의 내면아이를 위로하고 성숙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사실 알고 보면 내게도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다, 내가 그 존재를 무시했을 뿐. 소설 속 키다리 아저씨처럼 학비를 대준 것은 아니지만 나의 숨은 재능을 진심으로 알아봐 주고 “넌 굳이 칭찬할 필요조차 없어, 그 자체로 눈부시니까!”라고 격려해 준 사람이 있었다.

연극 ‘키다리 아저씨’



내 안의 숨은 빛 찾아낸 그들이 ‘키다리 아저씨’누구에게도 사랑받은 적 없는 고아소녀 주디가 처음으로 키다리 아저씨에게 느낀 감정은 고마움이나 애정보다는 놀라움 아니었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칭찬을 받을 수 있다니! 누군가 내 재능을 멀리서도 알아봐 준다는 것. 내겐 재능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가까이 온 마음을 다해 들여다봐야만 간신히 보일까 말까 하는, 내 안의 여린 빛을 누군가 멀리서도 알아본 것이다. 내 안의 숨은 빛을 찾아낸 모든 사람들이 내게는 키다리 아저씨였던 것이다.



아직 10대 소녀였지만 고아원에서는 나이가 제일 많아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대리부모 역할을 도맡던 주디는 겉으로는 애늙은이였지만 속으로는 항상 사랑에 목마른 여린 소녀였다. 키다리 아저씨가 주디의 글쓰기 실력에 탄복한 계기는 바로 ‘우울한 수요일’이라는 제목의 작문 때문이었다. 주디는 매월 첫째 수요일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느라 학교에 결석해야 했는데, 그런 상황에 대한 솔직한 비판과 풍자, 유머러스한 묘사가 키다리 아저씨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고아원 원장은 이 글을 매우 싫어했지만, 키다리 아저씨의 눈에는 어른들의 무관심에 방치된 고아 소녀의 꾸밈없는 마음이 투명하게 드러난 보석 같은 글쓰기였다. 바로 이때 남몰래 고아원 아이들을 돕고 있었던 키다리 아저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역이 바로 주디의 ‘내면아이’였던 셈이다. ‘난 한 번도 사랑받은 적이 없어,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를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을 품은 내면아이, 그 아이가 키다리 아저씨의 가슴을 움직였던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와 주디의 소통법은 매우 독특하다. 누군가를 훌륭한 작가로 키우고 싶다면 꼭 한 번 따라해 볼 만한 교육 방법이기도 하다. 키다리 아저씨는 주디의 학비와 용돈을 대 주는 대신, 딱 하나 조건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한 달에 한 번씩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저씨는 답장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까지.



사랑받지 못한 내면아이를 훌륭히 키우는 방법아저씨는 본명도 나이도, 그리고 직업은 물론 얼굴까지, 완전히 베일에 싸인 상태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한 사람에게, 절대로 형식적이지 않게,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주디는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고 싶어 온갖 잔꾀를 짜내 보지만 그럴수록 아저씨의 정체는 더욱 미궁에 빠진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수신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훌륭한 편지를 쓸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테다. 주디는 그렇게 자기 안에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내면아이를 훌륭한 성인아이로 키워낼 수 있었다.



키다리 아저씨의 조건 없는 사랑이 주디에게 준 것은 나도 언젠가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내면의 깊은 확신이었다. 주디는 잡지사에 원고를 보내 “이 원고는 출간할 수 없습니다”라는 거절 편지를 받기도 하지만, 그런 아픔은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례였다. 키다리 아저씨는 섣불리 칭찬과 응원을 남발하는 호들갑스러운 답장을 보내는 대신 주디가 혼자서 상처를 고백하고, 곱씹어 보고,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치유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 준다. 물론 가끔씩 변화무쌍한 둔갑술을 구사하며 주디의 주변에 나타나기도 했다가 사라지는 ‘저비 도련님’의 역할에도 충실하면서 말이다. 그는 장학금만 보내 주고 나 몰라라 하는 사무적인 자선사업가가 아니라 주디의 인생 깊숙이 직접 발을 디뎌 비로소 주디에게 ‘첫 번째 가족’이 되어 준다.



언젠가 잘해낼 수 있을 거야, 지금은 힘들지만 잘할 날이 올 거라는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심리학에서는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한다. 바로 이 자기충족적인 예언이 바로, 구호물품으로 조달된 헌옷을 입고 자라며 “절대로 이런 마음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을 거야”라고 믿던 주디를 변화시킨다. 자신처럼 힘들게 자라고 있는 고아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재료로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로 말이다.



어릴 때는 상상했다. 내게도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면 나도 좀 더 힘을 내서 이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 텐데. 20대에는 간절히 기도했다. 이 세상 모든 외로운 주디들에게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기도한다. 이제 바로 내가 누군가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될 차례구나. 내 안의 내면아이는 오히려 성인이 된 나에게 용기를 북돋운다. 넌 반드시 해낼 거야. 어느새 훌쩍 자라 씩씩해진 나의 내면아이는 나를 바지런히 채찍질한다. 비록 키다리 아저씨처럼 부자는 아니지만, 키다리 아저씨처럼 다리가 기다란 남자는 아니지만, 나의 글과 삶이 누군가에게 키다리 아저씨처럼 크고 깊고 뜨거운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를. ●



 



 



정여울 ?작가, 문학평론가. 문학과 삶, 여행과 감성에 관한 글을?쓴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그때 알았더라면?좋았을 것들』『헤세로 가는 길』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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