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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나는 벌, 멕시코 목각 새 … 그들의 옷엔 따스함이 있다

중앙선데이 2016.01.17 00:09 462호 8면 지면보기
여기 두 남자가 있다. 겨울이면 펑펑 눈이 내려 사방이 스키장이 되고, 여름이면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가 짙은 푸르름을 자랑하는 곳, 노르웨이 북부 발데르스 지역에 동화 같은 집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바로 노르웨이 출신 아르네 네르요르데(Arne Nerjordetㆍ53)와?스웨덴 출신 카를로스 사크리손(Carlos Zachrisonㆍ46)이 그 주인공이다.

아틀리에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카를로스 사크리손(왼쪽)과 아르네 네르요르데. 두 사람의 모습을 본따 만든 손뜨개 인형은 머리카락부터 스웨터 무늬까지 꼭 닮았다. 아르네는 세테스달 전통 패턴을 변형한 스웨터를, 카를로스는 핀란드의 오래된 엽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스웨터를 입고 있다.



‘아르네 앤 카를로스’를 단순히 니트 디자이너 듀오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들은 패턴을 디자인하고 직접 뜨개질도 하지만 그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완제품을 판매하는 대신 직접 손을 움직여 만드는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도안과 실로 구성된 키트를 구성하고, 그 안에 자연에서 배운 이치와 전통에서 건진 지혜를 담아낸다. 자연친화적이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킨포크 스타일의 북유럽 버전이랄까.


북유럽 니트 디자이너 듀오 ‘아르네 앤 카를로스’

유럽과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아르네 앤 카를로스 스타일이 이제 한국에도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킨포크 매거진의 국내 번역과 발행을 담당하고 있는 출판사 책읽는수요일은 감성 실용의 트렌드를 감지하고 아예 6권의 시리즈를 기획했다. 지난달 1권 ‘노르웨지안 손뜨개’를 시작으로 손뜨개 인형ㆍ크리스마스 볼ㆍ손뜨개 룸슈즈 등이 차례로 출간되고 있다.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e메일로 아르네 앤 카를로스를 만났다. 인터뷰는 대외 협력 담당인 카를로스와 이루어졌다.



 



인형들의 삶도 사람들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원을 가꿀 때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티 타임을 즐길 때는 한층 예쁘게 꾸며 입는다. 새 신발은 언제나 환영이다. 노르웨이의 겨울이니 스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살던 두 사람이 만난 건 1999년 1월이었다. 작업을 위해 노르웨이를 찾았던 카를로스는 디자인 업계 파티에서 아르네를 처음 만났다. 사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작업을 준비 중이었다. 디자인 스쿨에서 패턴 디자인을 가르치던 아르네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갈 예정이었고, 카를로스 역시 중국 베이징의 이케아로 옮겨갈 참이었다. “실은 둘 다 유럽을 떠나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제안받은 자리를 거절하고 우리만의 회사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죠.”



일단 마음을 먹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들은 그해 여름 발데르스 지역에 버려진 기차역을 찾아냈다. 톤사센 역은 기차가 쉬어가던 간이역으로 98년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카를로스는 “4채의 집과 작업실을 만들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며 “오슬로 같은 대도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저렴한 가격도 한 몫 했다”고 말했다. 헐값에 공간을 사들인 이들은 목수를 불러 아틀리에를 설계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은 모두 만들었어요. 노르웨이 사람들은 보통 1층에서 생활하고 2층은 옷방과 침실로 사용하죠. 하지만 아르네는 증조 할머니의 다락방에서 종종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다락도 필요했어요. 무엇보다 우리는 정원을 만들길 원했습니다. 기차 플랫폼은 온통 잿빛으로 우중충했거든요. 이를 녹음이 우거지고 꽃들이 만발한 정원으로 만든다면 작업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죠. 2001년에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는데 이제 절반 정도 디자인이 끝난 것 같아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셈이죠.”



어릴 적부터 뜨개질 배워 … 긴 겨울 보내기에 적합 그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패턴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정원을 날아다니는 벌의 색깔을 그대로 옮긴 스웨터나 멕시코 오악사카에서 봤던 목각 새에서 영향을 받아 무늬를 재해석하고 있는 모습이 뿜어내는 따스함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큰 남자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뜨개질을 하고 있는 모습은 여전히 조금 낯설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남자들이 뜨개질을 많이 하진 않죠. 하지만 취미로 뜨개질을 하는 것과 니트 디자인을 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에요. 우리도 2002년 처음 브랜드를 런칭했을 땐 니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했어요. 하지만 어떤 쇼에 가도 니트가 최고의 찬사를 받았고, 우리 스스로도 니트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5년 만에 방향을 선회해 니트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한층 여유가 생긴 이들은 본격적으로 니트를 파고들었다. 증조 할머니부터 4대가 함께 살았던 아르네는 아주 어릴 적부터 뜨개질을 시작했다. 카를로스 역시 정치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10살 무렵부터 뜨개질을 배웠다. 추운 날씨와 기나긴 겨울도 뜨개질을 하기엔 매우 적합한 환경이었다. 노르웨이 슬로TV에선 12시간 짜리 뜨개질 프로그램을 연속 방영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지구 북쪽에 사는 우리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더욱 특별해요. 따뜻한 난로 옆에 앉아 어둡고 추운 겨울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죠. 그리고 의외로 가축을 돌보는 일과도 어울린답니다. 실제로 ‘황야의 양치기’ 등 미술 작품을 보면 목동들이 뜨개질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어요.”



카를로스는 “스칸디나비아 민속 예술에 관심이 아주 많다”고 했다. 이는 이들이 작업하는 방식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우리는 새로운 디자인을 하려면 오랜 전통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녹아든 문화와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통 패턴을 발견하면 그걸 분해해서 요소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다시 재배치하는 식의 과정으로 작업을 합니다. 실제로 뜨개질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새 디자인을 완성하는 과정이 훨씬 더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것 같아요.”



이를테면 노르웨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XO패턴을 살펴보자. 열두 사제 중 한 명인 안드레는 감히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죽을 수 없다며 십자가를 돌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X형태의 십자가로 패턴화됐고, O는 생명의 바퀴인 태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를 활용한 것이 전통적인 세테스달 라이스 스웨터라면, 이들은 패턴 사이의 간격을 늘리고 바탕과 배색 색상을 뒤집은 뒤 과거 사진 속에서 발견한 하트 무늬를 결합하는 식이다.



“아르네는 훌륭한 리서처이자 베스트 니터예요. 아이디어를 내고 패턴을 만들기 시작하는 건 그의 몫이죠. 저는 주로 나중에 합류해요. 그가 세부적인 패턴을 만들 때 저는 그것을 관찰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편집하죠. 마치 제가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것처럼요.”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아르네 앤 카를로스에겐 룸 슈즈가 필수품이다. 코바늘로 뜬 꽃으로 장식한 룸 슈즈는 어쩐지 봄날을 앞당겨 줄 것 같다. 핀마르크 지역 사미족의 모카신을 응용한 폼폼 장식은 한층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정원의 토끼와 당근도, 파리의 호텔에서 만난 실내 장식도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는 멋진 소재가 된다.



“우리의 도안과 다른 작품 보는 것도 즐거워” 2010년 그들에게 또 한 번의 변화가 찾아왔다. 2008년 꼼 데 가르송과 컬래버레이션한 크리스마스 에디션이 유럽과 일본 전역에서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지만 이들의 생각은 다른 곳을 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급격한 기후 변화 등을 보면서 우리가 속한 패션업계가 현재 상황과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너무 ‘유행에 뒤떨어졌다(out of fashion)’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번 입고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보다는 보다 가치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졌거든요.”



그들 말대로 사람들은 점점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세상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진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완성할 수 있는 일로 눈을 돌렸고, 직접 손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는 일을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도안을 만들고 그것을 나누는 방법을 택했다. 책 뿐만 아니라 유튜브 채널이나 워크숍 등을 통해 팬들과 소통한다.



“물론 지금도 레지아(REGIA) 사에서 아르네 앤 카를로스 라인을 판매하고 있긴 해요. 하지만 이미 완성된 양말을 사는 것과 실을 사서 직접 만드는 건 다르잖아요. 우리의 도안을 보고 똑같이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응용한 전혀 다른 작품들이 탄생하는 걸 보는 것 또한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이러한 변천사가 담긴 이들의 책은 아르네 앤 카를로스의 삶을 거울처럼 비춰낸다. 그들이 처음 뜨개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작품으로 탄생했는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실제로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일까. 아르네는 ‘니트 앤 크로쉐 정원’ 편을, 카를로스는 ‘손뜨개 인형’ 편을 꼽았다. “우리 모두 아이 같은 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특히 우리 두 사람이 가진 장난꾸러기 같은 면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마음속에 있는 아이를 불러내 책을 만드는 내내 즐겁게 놀 수 있었고, 인형 옷은 만드는 시간도 짧아 실제 옷을 만들기 전에 테스트해보기에도 좋은 방법이에요.”



사실 슬로우 라이프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 역시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에도 미국 출장을 준비 중이었고 새로운 책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부활절 달걀’ 편과 ‘나만의 아이디어를 만드는 법’ 역시 한국 출판을 준비 중이다.



“우리는 이곳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낯선 장소에 가면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느끼죠. 그럴 땐 집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는 소품들을 챙겨가요. 호텔방에 도착해 가장 좋아하는 룸슈즈로 갈아신고 스토퍼로 바람을 막으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거든요.”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삶의 여백을 만드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만 뻗으면 움켜쥘 수 있는 것들 말고 수고롭지만 작은 노력들을 꾸준히 행한다면 뜻밖의 즐거움이 문득 찾아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카를로스는 한국 방문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지난해 메르스 때문에 행사가 10월로 연기되는 바람에 초청받았던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하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어요. 올해는 꼭 서울에서 한국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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