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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차이잉원 총통이 왔다” 국민당 텃밭 대만 북부도 술렁

중앙일보 2016.01.14 03:00 종합 2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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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총통 선거를 사흘 앞둔 13일 민진당 후보인 차이잉원 주석(유세차에 탄 여성)이 집권 국민당의 텃밭인 먀오리에서 막바지 유세를 펼쳤다. [사진 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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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오른쪽)과 함께한 예영준 특파원(왼쪽).

“촤잉문 총통이 왔습니다.” 인구 10만의 소도시 먀오리(苗栗)가 13일 이른 아침부터 술렁였다. ‘촤잉문’은 대만 총통선거에 출마한 민진당 주석 차이잉원(蔡英文)의 이름을 중국어 방언의 일종인 객가(客家)어로 발음한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이미 총통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지지자들은 그에게 “쭝퉁 하오(總統好, 총통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예영준 특파원, 민진당 동행 취재
승리 굳어지자 “기권 마세요” 당부
명품 논란 의식한 듯 점퍼에 청바지
불안 자극 우려 양안정책 언급 꺼려

 텃밭 남부에서 바람몰이를 하며 수도 타이베이(臺北)를 향해 북상 중인 차이 후보는 이날 국민당 표밭인 북부 공략에 나섰다. 기자는 민진당의 특별허락을 얻어 차이 후보를 밀착 취재했다.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던 후보 측이 질문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막판에 동행취재를 허락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를 건네자 차이 주석은 반가운 표정으로 “10여 년 전 한국에 가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차이 후보는 이날 도교 사원에 공물을 바치고 승리를 기원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그가 이곳을 북부 공략의 시발점으로 고른 것은 객가인의 밀집지역이기 때문이다. 차이 후보 역시 객가 혈통이다. 대만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객가인은 중국 황허(黃河) 일대에 거주하다 송(宋)대 이후 중국 남부로 이주한 뒤 지금까지 고유 언어와 독특한 풍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객가의 딸이 총통이 되게 해달라. 객가문화를 대만의 자랑이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객가 후예로 커피점을 운영하는 쉬셴밍(徐賢銘·59)은 “이곳은 민진당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곳인데 차이 후보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연단에 오른 차이는 우세한 판세를 의식한 듯 “기권 없이 투표권을 행사하자. 그게 대만을 바꾼다”고 강조했다. 20대 청년 쑨궈양(孫國洋)은 연단에 올라 “캐나다에서 투표를 위해 귀국했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에는 대학생들이 기차표·버스표를 확대한 팻말을 들고 연단에 올라 차이 후보와 일일이 악수했다. 반드시 고향에 가서 투표를 하자는 캠페인이었다.

표준 중국어와 객가어를 섞은 차이 후보의 연설엔 여유가 보였다. 그는 자신과 함께 연단에 선 입법위원(국회의원)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는 청중에게 “나도 후보자란 사실을 잊지 말라”며 웃음을 보였다.

 가까이서 본 차이 후보는 부유한 집안 출신에 미국·영국 유학 경험의 엘리트란 느낌 대신 소탈한 인상을 주었다. 화법은 과도한 감정 표출 없이 간결했다. 복장은 초록색 점퍼에 청바지 차림으로 수수했다. 한 관계자는 “몇 달 전 명품 목도리를 매고 유세에 나섰다가 구설에 오른 뒤 조심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연설을 끝낸 차이는 유세차량에 올랐다. 거리를 휩쓴다는 뜻의 ‘싸오제(掃街)’라 불리는 대만 특유의 카퍼레이드식 유세를 위해서였다.

연도를 메운 인파 속에서 회사원 차림의 한 남성이 V자를 그린 손모양이 달린 막대기를 건넸다. 건물 옥상에서 공사를 하던 근로자들도, 근무 중 유세를 보러 나온 흰 가운 차림의 간호사도 열렬히 차이 후보에게 손을 흔들었다.

뒤이어 차이 후보는 북상을 계속해 신주(新竹)와 타오위안(桃園), 신베이(新北)에서 유세전을 펼쳤다. 특히 신베이는 경쟁자인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가 현직 시장으로 있는 국민당 아성이지만 차이 후보에게 보내는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8년 만의 정권 교체가 확실시되는 이번 선거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화권 첫 여성 지도자가 탄생하는 데다 대만 독립 지향이 강한 민진당이 집권하면 양안 관계에 변화가 예상되고 중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긴장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이 후보는 유세 과정에서 자신의 양안 정책에 대한 언급을 꺼렸다. 유권자들의 안정 희구심리를 자극하지 않는 표 단속 전략이라고 선거운동 관계자는 설명했다.

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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