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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떠다니는 기름창고 … 유조선이 동났다

중앙일보 2016.01.14 00:01 경제 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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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해운선사 오션탱커스(Ocean Tankers)는 지난해 10월 29만8000DWT(재화중량t수) 규모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인도받았다. 원유를 운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기업인 석유중개업체 힌레옹(興隆)그룹의 원유를 저장하기 위해서다.

정유사 등 차익 노리고 물량 비축
중고·폐선 활용해 저장시설로
초대형 유조선 발주도 100% 늘어


힌레옹그룹은 원유 저장 시설을 운영하는 업체지만 비축 원유시설이 한계에 다다르자 자회사를 통해 초대형 원유운반선 구입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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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시기 네덜란드의 원유 거래업체인 비톨(Vitol)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앞바다에 초대형 원유운반선인 프론트 아리아케(Front Ariake)를 띄우고 나이지리아산 원유를 저장하기 시작했다.

 원유 보유량이 비축 시설 용량을 넘어서면서 글로벌 석유중개업체들이 원유운반선을 비축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고 원유운반선에 원유를 실어 공해상에 띄워놓는 식이다. 이로 인해 중고 원유운반선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 국제 해운 및 조선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2014년 중고 VLCC 거래는 규모(2453DWT)나 건수(80건)에서 최근 10년래 최대였다.

 글로벌 석유중개업체나 정유사, 원자재 유통기업의 상당수는 이런 원유비축용 원유운반선을 한 척 이상 갖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PDVSA·페트로브라스·로열더치셸·글렌코어 등이 원유 저장 목적으로 캐리비안 해역에 초대형 원유운반선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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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비축량이 늘어나게 된 것은 국제 유가가 하락한 게 영향이 컸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유가는 2014년 6월 배럴당 106.91달러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하락해 13일 30달러선까지 떨어졌다. 유가가 하락하자 석유중개업체들은 2014년 중반 이후 원유 비축을 시작했다. 향후 유가가 상승했을 때 시세차익을 누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저유가가 예상보다 오래 계속됐다. 결국 저장 공간이 한계에 다다랐고 급기야 원유운반선까지 활용하게 됐다는 게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스의 분석이다. 원유운반선은 17만5000t~30만t의 원유를 저장할 수 있다. 반면 지상 원유탱크 용량은 8만t이 일반적이다. 원유운반선 하나가 2~4개 정도의 저장탱크를 대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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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의 중고 초대형 원유운반선 거래 급증은 이듬해 신규 초대형 원유운반선 발주의 증가로 이어졌다. 클락슨에 따르면 2015년 연간 초대형 원유운반선 발주 계약은 모두 66건으로 2014년 대비(33건) 100% 증가했다. 2008년 이후 7년래 최대 규모다. 초대형 원유운반선 시장이 ‘나홀로 호황’을 누린 셈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014년에는 원유 저장 시설로 사용하기 위해 폐유조선을 구입하거나 기존 중고 원유운반선을 저장용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운반용으로 사용할 초대형 원유운반선이 부족해지자 지난해 신규 선박 발주가 증가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해운선사 관계자는 “새로 건조된 원유운반선은 대부분 운반용으로 쓰이지만 힌레옹그룹처럼 비축용으로 사용하다 필요시 운반용으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초대형 원유운반선 호황이 조선 업계 불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다. 전재천 대신증권 연구원은 “초대형 원유운반선은 한 척 당 평균 1000억원 안팎이다. 조 단위에 달하는 국내 조선사 부실 규모를 고려하면 발주량 증가가 업체의 수지에 큰 영향을 주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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