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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목요일부터 주말 행사, 15% 상품권 … 불문율 깨는 백화점

중앙일보 2016.01.14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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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희령
경제부문 기자

퀴즈 1. A 백화점 식당가에 점심을 먹으러 왔는데 ‘원피스 60% 할인 행사’ 광고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 행사 언제부터 해요?” 무슨 요일부터일까.

 퀴즈 2. B 백화점에서 이번 주말 남성복을 사면 상품권을 주는 사은행사를 한다. 60만원 하는 정장을 행사장에서 마련했다. 상품권은 얼마치를 받을 수 있을까.

 정답은 1번은 금요일, 2번은 3만원이다. 주말 전날인 금요일부터 대형 행사를 시작하고, 구매 금액 단위별로 5%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증정하는 것이 ‘한국 백화점의 룰’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 오랜 관행이 깨지고 있다. 저성장 공포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앞으로 모든 대형 행사를 목요일에 시작하겠다고 13일 발표했다. 1969년 개점 이후 처음으로 행사 시작일을 ‘금요일→목요일’로 전환한 것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정착하면서 주말에 백화점을 찾는 대신 교외로 나들이 가는 가정이 늘면서 주말 매출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사보다 하루라도 먼저 행사를 해야만 매출을 늘릴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렸다. 당장 이번 설 행사부터 21일 목요일에 시작한다.

 지난 2~3일 롯데백화점에서 남성복 60만원 어치를 산 소비자는 9만원어치 상품권을 받았다. 무려 15%로 평소 상품권 행사의 3배다. 사상 최초였다. 고객이 몰려들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40%가 늘었다.

윤성환(45) 롯데백화점 수석바이어는 “살아남기 위한 고육 지책이었다”며 “지난달 ‘따뜻한 겨울’ 때문에 남성복 재고가 쌓여서 협력업체의 부담이 너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익을 일부 포기한 것이다.

롯데뿐 아니다. 현대·신세계백화점도 이례적으로 평소의 두 배인 구매금액의 10%를 상품권으로 증정했다. ‘남자는 날씨가 실제로 추워져야 옷을 산다’는 경험치에 따라 ‘반짝 추위’ 때 얼른 재고를 팔기 위해서다.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의 지난해 성장률은 0~1% 수준이다. 특히 지난달에는 3.8%가 감소했다. 새해부터 백화점이 스스로의 틀을 파괴하고 나선 건 ‘백화점의 시대’가 끝났다는 절박감에서다.

 사실 그 동안 백화점은 비교적 쉽게 돈을 벌어왔다. 직접적인 위험 부담 없이 입점 업체에게 받은 수수료 수입만으로도 장사가 됐다. 그러나 좋던 시절은 끝났다.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온갖 유통경로를 다 검색해 최저가로 물건을 산다.

해외 직접 구매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수입 브랜드의 가격 거품도 드러났다. 게다가 경기가 좋지 않다. 똑똑한 소비자가 지갑까지 얇아졌는데 백화점을 찾을 리 없다. 쌓인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수시로 70~80% 할인 행사를 열지만, 똑똑한 소비자는 특가 상품만 골라서 사간다. 너무 잦은 세일에 소비자들의 의심만 짙어진다.

백화점 할인 행사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원래 비싼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데 잦은 세일은 ‘원래 비싼 물건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서비스나 판매방식에서 환골탈태 수준의 획기적인 발상 전환을 하지 않으면 백화점이란 유통 경로는 갈수록 외면 받을 것이다. 백화점은 더 달라져야 한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구희령 경제부문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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