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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고 5500억 날려도 무죄?” 검찰 2인자, 법원 작심 비판

중앙일보 2016.01.12 02:18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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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자원 개발’ 비리로 구속 기소됐던 강영원(65)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난 지 사흘 만에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법원의 무죄 판결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검찰 내 ‘2인자’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이 법원 판결에 반발해 직접 비판하고 나선 건 매우 이례적이다.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 무죄 받자
3일 뒤 공개 석상에서 이례적 반발
“판결 부당성 다툴 것” 항소 직접 밝혀
대통령 부패 척결 의지 영향 분석도
법원 “검찰 법정 밖 왈가왈부 말길”

 이 지검장은 11일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강 전 사장은 나랏돈 5500억원의 손실을 입혔다. (그런데도 법원은) 무리한 기소이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공중으로 날아간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은 누가 책임지느냐. 단호하게 항소해 판결의 부당성을 다툴 것”이라며 법원을 강하게 비난했다.

 강 전 사장은 2009년 캐나다 석유개발회사 하베스트 인수 과정에서 자회사인 정유회사 날(NARL)을 인수해 석유공사에 5500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배임)로 지난해 7월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 김동아)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날의 인수는 정책적인 판단으로 볼 수 있고 날의 자산가치가 인수대금보다 질적으로 낮았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손실도 인수 후 유가 하락 등의 외부 사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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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검장은 이런 법원 판단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강 전 사장이 ▶부실한 경영 평가를 만회하려는 사적인 동기로 ▶자체 평가와 검증 절차도 없이 3일 만에 계약을 체결했으며 ▶손해 발생을 충분히 인식하고도 정유회사를 졸속 인수해 천문학적인 손실을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간담회는 30분 전쯤 기자들에게 공지될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검찰 관계자는 “주말 동안 판결문 분석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이 직접 기자간담회를 하기로 전날 결정됐고 대검찰청에도 보고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는 방송사 카메라 촬영과 녹음까지 허용됐다. 또 통상 검찰이 법원 판결에 불만이 있을 경우 차장급이나 부장급 간부가 비공식 간담회 등을 통해 입장을 밝혀 왔던 것과도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이 지검장의 직접 발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부패 척결을 강조해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부패 요인을 선제적으로 감시·경고하는 인프라를 구축해 예산 낭비와 비리 소지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대형 국책사업을 비롯해 정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 나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강 전 사장에 대한 무죄 판결은 이 같은 기조에 큰 타격을 준 셈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자원 개발 비리를 대대적으로 수사했지만 공기업 사장들만 일부 사법 처리하는 선에 그쳐 부실 수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원 개발 비리와 관련된 법원의 첫 판결에서 무죄가 나오자 검찰이 다급하게 움직였다는 분석이 많다. 검찰 관계자는 “강 전 사장 수사는 자원 개발 비리의 상징적 사건이고 (무죄 판결을) 검찰 내부에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이 경영인들의 배임 혐의에 대해 잇따라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분위기에 맞서 검찰이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법원은 최근 들어 경영상이나 정책적 판단으로 보일 경우 처벌 수위를 낮추고 있다. 지난해 9월 이석채 전 KT 회장, 같은 해 10월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 지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경영 판단을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하기 시작하면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며 검찰 수사를 통한 사후 통제를 질식시키는 결과가 된다”고 반박했다. 이에 법원 관계자는 "이 지검장이 주장한 내용은 법정 안인 항소심에서 다툴 내용이기 때문에 법정 밖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복현·장혁진 기자 sphjtb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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