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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m 줄서던 노량진 컵밥, 자리 옮겼더니 매출 반토막

중앙일보 2016.01.12 01:54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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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정오가 지나도 문을 열지 않은 서울 노량진 컵밥거리의 한 점포(오른쪽). 지난해 1월 수십 명이 차례를 기다리던 컵밥거리의 모습(왼쪽)은 이제 볼 수 없다. 컵밥 상인들은 “지난해 10월 자리를 옮긴 뒤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하소연한다. [임현동 기자], [중앙포토]


“매출이 예전의 20% 수준입니다. 옆 가게도 50% 밖에 안 된다고….” 컵밥을 담아주던 하모(52)씨는 말끝을 흐렸다. 11일 낮 12시, 서울 노량진1동 119안전센터 건너편 인도에 줄지어 있는 ‘컵밥거리’는 한산했다. 작은 컨테이너박스로 만들어진 점포 28곳 중 11곳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을 연 가게 중에는 손님 없이 주인만 서 있는 곳이 많았다. “예전에는 오전 10시 이전에 문을 다 열었어요. 어떤 곳은 새벽 6시 반부터 장사를 했고요. 그런데 이젠 오전에 나와봐야 장사가 안 되니까….” 노량진에서 컵밥 장사를 한 지 5년째라는 김모(39)씨는 “장사를 계속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학원가에서 멀어져 손님 발길 뚝
노점 28곳 중 11곳은 문도 안 열어
학생들 “가까운 편의점 많이 이용”
동작구청은 활성화 방안 모색 중


노량진 컵밥거리는 한 때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수십m의 줄을 서는 것으로 유명했다. 3000~4000원대의 저렴한 가격,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양, 다양한 종류의 볶음밥을 골라 먹는 재미로 인기를 누렸다. 중국·일본 관광객까지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하지만 이날 컵밥거리의 풍경은 썰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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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처럼 바뀐 것은 지난해 10월 말에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부터다. 원래 컵밥거리는 지하철 1·9호선 노량진역 1번 출구 인근 맥도널드를 중심으로 ‘T’자 형으로 밀집해 있었다. 경단기경찰학원 1관, 박문기남부고시학원 등 대형학원들이 밀집한 구역으로 거대 타원형을 이루는 학원가의 중심지역이었다. 하지만 현재 컵밥거리는 타원형의 오른쪽 구석 자리다. 주요 학원가와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주요 고객인 노량진 고시생들의 발길이 끊기고 있다.

최형기(28)씨는 “예전에는 도보로 2분 거리라서 휴식시간에도 잠깐 나가서 먹고 왔는데, 지금은 왕복 15분이 넘게 걸려서 잘 가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김현경(23·여)씨도 “오늘처럼 날씨가 추우면 학원에서 가까운 맥도널드나 편의점을 이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역 명물이었던 컵밥 노점이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은 주변 식당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가게 주인들은 세금 내지않고 장사하는 이들에게 손님을 빼앗긴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컵밥거리 이동이 이뤄진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주변 식당에서는 “매출이 늘지 않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매출이 오히려 줄었다는 음식점도 적지 않다. 한 점포 주인은 “컵밥거리 풍경 구경하러 오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져 유동인구 자체가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마중물 효과’로 이를 설명했다. 마중물은 펌프질을 할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붓는 물이다. 서 교수는 "컵밥 노점상들이 수천여 명의 노량진 고시생들의 밥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컵밥은 손님들을 불러오는 마중물 역할을 해왔는데 이게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인하대 경제학과 강병구 교수도 "기존 상가와 컵밥이 대체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컵밥 거리를 옮기기 전에 기존 상권을 같은 구역에서 공생시키는 방안을 더 찾아봤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서울 동작구청 관계자는 “컵밥거리의 매출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활성화 방안을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글=유성운 기자, 김해정(부산대 불어불문4) 인턴기자 pirate@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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