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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받아들이세요 그게 진짜 노후준비

중앙일보 2016.01.12 01:49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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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논현동 여러가지문제연구소에서 만난 심리학자 김정운은 외로움의 역설을 이야기했다. “외로움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외로움에 익숙해질 때 외롭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평균 수명 100세 시대 준비라며 다들 연금 얘기만 해요. 정말 연금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해질까요?” 지난 6일 서울 논현동 ‘여러가지문제연구소’에서 만난 김정운(54) 소장은 “외로움 회피 강박에서 벗어나는 게 진짜 노후준비”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2년 나이 쉰이 되던 해, 12년 간 교수로 일한 명지대에 사표를 냈다. 이후 일본에 혼자 머물며 고독한 시간의 효용을 깨달았고, 그 경험담을 모아 최근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21세기북스)를 펴냈다. 고독과 외로움. 한때 ‘휴(休)테크 성공학’을 주창하며 여가 전도사로 활약했던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새 화두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출간
혼자면 루저? 고독 저항 사회
사회적 관계 없을 땐 불안해 쩔쩔
바쁨과 성공 동일시하면 착각
정말 하고 싶은 것 찾아보세요


- 왜 외로워야 하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외로워야 자기 성찰이 가능하고, 성찰을 통해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해야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소통도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외로운 사람을 ‘루저’ 취급하는 고독 저항 사회다. 사회적 관계 속에 들어가야 안심을 하고, 스케줄이 비면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그는 “평균 수명이 짧을 땐 괜찮았다. 바쁘게 살다 일찍 죽으면 됐다”고 했다. “하지만 ‘호모 헌드레드’ 시대엔 누구도 노년의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외로움을 삶의 본질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개인, 사회, 모두에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게 그의 경고다.

- 어떤 부작용인가.
“한국 사회를 망가뜨리는 이분법적 사고는 고독하면 안 된다는 강박 에서 출발했다. 외로운 개인들이 외로움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적을 만든다. 적을 만들면 내 편이 생긴다고 생각하고, 분노·적개심으로 고독감·상실감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고독을 피하려다 분노 과잉 시대가 됐다. 40∼50대 남성들이 늙어 분노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거다. 비극은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 해결책은 뭔가.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바쁨과 성공을 동일시하는 착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라. 외로워야 나에게 중요한 관계가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2012년 일본으로 떠나기 전, 그는 정말 바쁘게 살았다. 대학교수라는 본업에 베스트셀러 저자, 인기 강사, 방송 패널 등 일이 넘쳤다. 그는 당시의 삶을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고 우울했다. 남이 천천히 생각하거나 느리게 말하면 짜증내며 말을 끊었다. 조교나 학생들의 느린 일 처리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약속 시간에는 수시로 지각했고, 바쁘다며 항상 먼저 나왔다”고 돌아봤다. 그러던 어느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에게 “왜 그렇게 피크에 올라가려고 그래? 피크에 올라가면 내려올 것밖에 없는데…”란 말을 들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두 달 만에 안식년을 받아 일본 교토로 갔고, 서너 달 뒤 학교에 사표를 냈다.

- 일본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뭘 얻었나.
“스스로를 성찰할 시간이 생겼다. 내가 가장 하기 싫은 일이 ‘강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표를 냈다. 또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알게 됐다.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2년제 전문대인 교토사가예술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 지난해 3월 졸업했다.”

그는 수명 100세 시대 해법으로 ‘공부’를 제안했다. “주체적인 삶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며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느냐’다”란 말도 덧붙였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년의 호구지책이 해결이 안 돼 다른 계획을 못 세운다고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안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 외 영역에도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치는 다양하다.”

그는 오는 3월 4년여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완전 귀국한다. 그 후에는 전남 여수에서 살 계획이다. “서울에 있으면 또 바빠질 것 같아서”가 연고 없는 여수로 떠나는 이유다. 그는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에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며 살 생각을 하니 설렌다”고 했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정운=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심리학자다. 2000∼2012년 명지대에 재직하며 국내 최초로 여가학 석사과정인 여가정보학과를 개설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에디톨로지』 등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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