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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젊은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중앙일보 2016.01.12 01:13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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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지난 주말 무한도전은 신구세대 예능인들이 모여 예능총회를 벌였다. 

가장 돋보인 건 최고참 이경규였다. 

거침없는 호통으로 좌중을 휘젓고 새해에는 방송 스무 개쯤 출연하며 마지막을 불사르고 싶다는 야망을 토로했다. 

그 다음으로 말 많이 한 고참인 김구라는 새해 예능 최고 유망주는 바로 이경규라며 선배에게 경의를 표했다. 

김영철·윤정수 등 그 다음 군번들은 고참들 장광설 사이를 비집고 한두 마디 던졌다가 깨지는 역할을 반복했다. 광희·박나래 등 막내들은 방청객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과연 20대 예능인들이 재능이 부족해 못 웃기는 걸까? 

대선배가 입을 열면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후배가 용기 내어 한마디 하면 아무도 받아주지 않고 구박하는 분위기에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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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랬던 건 아니다. 1991년 데뷔한 신동엽은 데뷔와 동시에 전에 볼 수 없던 엉뚱한 말장난 개그로 기존 개그를 모두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92년 데뷔한 서태지는 평론가들의 혹평을 비웃듯 가요계 판 자체를 바꿔버렸다. 

두 사람 모두 스무 살이었다.  지금 스무 살의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K팝스타’에서 중년 남성 제작자들 앞에 벌서듯 서서 죽어라 노래를 부르고 애교를 부리고는 덜덜 떨며 야단을 맞고 있다. 

TV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인가? 

이해진·김택진·이재웅 등 젊은 창업자 신화는 맥이 끊긴 지 오래고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절대왕권을 놓지 않는 노회장님들 몽니가 더 익숙하지 않나? 

정치면에 몇십 년째 실리는 좌장, 원로분들 사진을 보다 캐나다 신임 총리 및 그의 내각 사진을 보면 눈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 분 없으신가? 

혹시 한국은 신흥국의 에너지를 이미 잃어버린 노인들의 나라가 된 것은 아닐까.

젊은이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려면 구색 맞추기로 자리 한두 개 주는 것으론 안 된다. 게임의 규칙이 달라져야 한다. 

예능총회에서 병풍 노릇 하던 박나래는 인터넷 1인 방송 포맷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펄펄 날아다녔다. 

선거에 모바일 투표가 도입된다면 정치인들은 어디 세배 드리러 다니던 열정으로 청년실업 대책을 앞다퉈 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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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처럼 부자 될 기회가 공정하게 보장되는 시장이라면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장에만 줄을 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20대의 광희는 비 쫄딱 맞고 종일 굶으며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는 처절한 절박함이라도 보여야 겨우 무한도전의 끝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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