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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리과정 예산, 돈 없어 편성 못 하나

중앙일보 2016.01.12 00:29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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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

‘나귀에 짐을 싣고 타나, 지고 타나’란 속담이 있다. 나귀 등에 짐도 싣고 자신도 타면 나귀가 무거울까 걱정이 되어 짐은 자신이 진 채 나귀를 탄 사람이 있다고 치자. 나귀가 덜 무거울까? 그럴 리 없다.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 대신 정부가 맡는다고 국민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누가 부담하든 국민이 낸 세금이기 때문이다. 누리과정 논란은 ‘중앙 대 지방’의 예산 다툼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걷어서, 혹은 빚을 내서 교육청에 건네주는 것이 답은 아니다. 그보다 국민이 낸 세금을 어떤 원칙과 우선순위로 쓸 것인지의 시각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올해 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여력은 지난해에 비해 개선된다. 교육청은 정부가 준 돈 70%(지방교육재정교부금, 이하 교부금), 시도가 준 돈 20%(법정전입금, 이하 전입금), 자체수입 10%로 살림을 꾸린다. 그런데 올해 국가가 교육청에 주는 교부금은 지난해보다 1조8000억원이 늘어난다. 시도 전입금도 1조원 이상 는다. 반면 학교신설 등 지출 소요는 준다. 더구나 학생 수는 2010년부터 2020년까지 4분의 1이 감소(734만 명 → 545만 명)하지만 국세의 20% 상당인 교부금은 2.6배로 증가(20조원 → 52조원)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교육청이 돈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으로는 늘어난 교부금을 그대로 받아 교육감들이 선호하는 사업에 우선 쓰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감들이 원하는 사업에 돈을 쓰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다만 법령에서 의무적으로 쓰도록 한 사업을 먼저 편성하고, 남은 돈으로 특색 있는 사업에 돈을 쓰는 것이 순서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누리과정을 의무지출경비로 정한 것도 이 순서에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누리과정은 학부모 입장에서나 교육에 대한 국가정책적 차원에서나 우선순위가 매우 높은 사업이다.

 당장 급한 불을 끄려면 정부가 도와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유치원 예산이 미편성된 서울·광주·전남 교육청의 유치원 재원은 교육청의 올해 예산중 예비비에 담겨 있다. 따라서 지자체 결정만 있으면 바로 집행이 가능하다. 어린이집 예산도 과소하게 잡혀 있는 순세계잉여금, 전입금을 제대로 반영하고, 과도하게 반영된 인건비·시설비를 조정한 뒤 정부가 마련한 3000억원의 예비비를 쓰면 편성 가능하다.

 누리과정 논란은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문제라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은 교육재정이 지방재정에 통합되어 운용되지만, 우리는 교육재정이 별도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벌써 2년째 똑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도입되어 2014년까지 아무 문제없이 편성되어 왔는데, 2014년에 교육감들이 바뀌면서 사달이 생겼다. 지켜보는 학부모들로선 안타깝고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교육감이 바뀌었다고 해서 약속을 뒤집어서는 안 된다. 남은 것은 교육감의 의지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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