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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북핵 대책회의에 차관보 보낸 기재부

중앙일보 2016.01.12 00:28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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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 경제부문

북한은 6일 오전 4차 핵 실험을 했습니다. 그날 경제부처의 움직임은 ‘긴박’보다는 ‘허둥’에 가까웠습니다. 핵 실험의 징후인 인공지진이 감지된 시각은 오전 10시30분. 이후 경제부처 간 작은 소동이 일었습니다. 핵 실험 같은 안보 위기가 발생하면서 바로 ‘긴급 경제·금융 상황 점검회의’를 엽니다. 시장과 국외 투자자를 겨냥해 경제부처의 통일된 메시지를 처음 공표하는 자리이기도 하죠.

 보통 이런 회의는 기획재정부에서 주관합니다. 장관 겸 부총리로 낙점된 유일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청문회를 앞둔 후보자 신분이었습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경제계 신년 인사회 일정이 잡혀있는데다 ‘곧 떠날’ 위치이기도 했습니다. 주형환 1차관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내정돼 청문회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정은보 기재부 차관보에게 회의 총괄을 맡기려 했더니 직급이 문제였습니다. 다른 부처·기관에서 차관급 인사가 참여하는 회의를 차관보가 주재하는 게 맞냐는 반론이 일었죠. 결국 차관급인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습니다. 번쩍이는 카메라 조명 속에 정 부위원장은 “이번 핵 실험도 그간의 ‘학습 효과’에 비춰볼 때 주식·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란 발표문을 읽어 내려갑니다.

 북한의 핵 실험은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1차 핵 실험 직후 첫 ‘긴급 경제상황점검회의’는 국무총리가 주재했습니다. 재정경제부 장관, 산업자원부 장관, 금융감독위원장에 한국은행 총재, 청와대 경제수석까지 참석했습니다. 2·3차 핵 실험 때는 경제부총리가 오전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시장에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4차 핵 실험 땐 달랐습니다. 사전 잡혀있던 일정을 못 미뤄서, 청문회 준비로, 곧 떠날 장관이라서. 다들 사정이 있었다지만 핵 실험에 대한 기재부의 대응은 어느 때보다도 느긋해 보였습니다. 학습 효과를 가장 여실히 보여준 건 시장도, 국민도 아닌 기재부였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조현숙 경제부문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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