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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르포] 기업하기 가장 좋다는 영월·남원 … 공무원 마인드가 달랐다

중앙일보 2016.01.12 00:01 경제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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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도시의 비결은 뭘까. 본지의 현장 취재에 따르면 “기업이 들어와야 지역이 살고 일자리도 생긴다”는 인식을 갖고 행정 서비스 개선을 주도한 단체장이 이끌었다. 기업인 눈높이에 맞춰 규제를 확 뜯어 고친 공무원들의 열정도 숨어 있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 규제 지도’에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 1위에 오른 전북 남원시(경제활동 친화성 부문)와 강원도 영월군(규제 지도 기업체감도 부문) 이야기다.

오전 8시40분 민원 심사

규제 개혁 기업체감도 1위 영월
한 달이던 공장 인허가 열흘에 OK
담당자가 서류 들고가 현장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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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군청 인허가 담당 공무원들이 지난달 29일 오전 8시40분 복합민원실무종합심의를 하고 있다. [영월=박진호 기자]


“보통 한 달은 걸리는 공장 인허가 절차가 열흘 만에 해결됐어요. 서류는 공무원이 직접 들고 공장에 찾아왔죠.”

강원도 영월군에서 생석회를 생산하는 대성지엠텍 황보규(44) 시설기획 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12월 16일 군청에 2만3755㎡ 공장 용지를 3만9597㎡로 증설하는 내용의 인허가 서류를 접수했다. 법적 처리기한은 올해 1월 15일. 하지만 군은 13일만인 지난달 28일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 담당공무원은 14㎞ 떨어진 공장을 직접 찾아와 서류를 전달했다. 황 차장은 “다른 시·도에선 처리기한을 꽉 채워 서류가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영월군은 기업인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으로 영월군은 대한상의의 ‘규제 지도 기업체감도’ 평가 부문에서 전국 1위에 올랐다. 현지 기업인들은 공무원 오전업무시작 20분 전에 열리는 영월군의 ‘복합민원 실무종합심의’를 비결로 꼽았다.

최근 심의가 열리는 시간에 기자가 영월군청 3층 소회의실을 찾아가봤다. 11명의 인허가 담당자들이 서류뭉치를 들고 앉아 있었다. 진행을 맡은 권순매 종합민원담당이 “오늘 심의안건은 7건입니다. 법 조항을 참조해 심의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담당자들은 ‘일괄협의조서’에 자신의 의견을 막힘 없이 적었다. 김종완 규제개혁담당은 “모두 어제 접수된 사안인데 접수 당일 오후 5시에 담당자들에게 보내졌고 오늘 아침 회의에 들어올 때는 이미 법률 검토를 마친 상태”라고 말했다. 책상 서랍에 묵히는 것이 아니라 하룻 밤새 행정절차에 진척이 있었다는 얘기다.

원스톱으로 민원이 처리되니 웬만한 서류 절차는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2014년과 지난해 공장등록과 공장등록 변경을 신청한 신성포장이 그랬다. 두 번 모두 3일 만에 인허가 절차를 마쳤다. 김병덕(42) 신성포장 대표는 “3일 만에 처리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복합민원 종합심의는 3선인 박선규(59) 영월군수가 당선 첫해인 2006년 처음 구축한 시스템이다. 30년간 산림환경·문화관광과장 등 각종 인허가 부서를 거친 박 군수는 민원 처리기간 문제로 직원과 민원인이 얼굴을 붉히는 사례를 자주 접했다.

도입 초기에는 출근 시간이 20분 이상 빨라져 직원들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영월군 공무원들은 당연한 업무로 여긴다. 중소기업 지원도 확대했다. 군은 2014년 12월 ‘영월군지역경제활성화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전면 개정했다. 제조업 융자규모를 2억원에서 5억원으로 늘렸다. 불필요한 등록규제 22건도 폐지·완화했다. 박 군수는 “빠른 업무처리와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기업 유치의 핵심”이라며 “민원 처리가 빨라지면 행정 신뢰도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민원처리기간을 단축한 공무원에게는 ‘민원 마일리지’제도 등을 통해 20만~50만원의 포상금도 준다. 현재 영월엔 110개의 공장이 있다. 이중 50여개는 2006년 12월 이후 유치했다.

영월=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간부 50명이 기업지원 전담

경제활동 친화성 1위 남원
“감옥갈 일 빼곤 모두 서비스”
공장설립할 땐 심사 3회로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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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대경산업을 방문한 이환주(왼쪽 첫째) 남원시장 등이 우드칩과 톱밥을 들어 보이고 있다. [남원=프리랜서 장정필]


8일 전북 남원시 금지면 창산리에 자리한 대경산업 생산 현장. 참나무·소나무 원목들이 마당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길이 2~3m의 원목이 나무 껍질을 벗기는 박피기와 대형 커터(절단기)를 통과하자 우드칩과 톱밥이 쏟아져 나왔다. 우드칩은 전주·울산의 제지공장으로 실려가 펄프 재료로 사용된다.

 하루 20~30t씩 쏟아지는 톱밥은 몇 개월 전만 해도 환경폐기물로 분류돼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환경청과 지자체가 3~4개월마다 단속과 검사를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부터 친환경 유기질 비료의 원료로 탈바꿈해 t당 5만원씩에 팔린다. ‘애물단지’가 재활용 고소득 ‘효자품목’으로 바뀐 것은 공무원들의 노력 덕분이다. “재활용 톱밥을 폐기물로 취급해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접한 남원시청 직원들이 관련 법규를 뒤적이고 머리를 쥐어 짠 끝에 톱밥을 폐기물이 아닌 새로운 사업 품목으로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대경산업 신정용 사장은 “폐기물 단속에서 해방되고 짭짤한 수입까지 생겼다”며 밝게 웃었다.

 대한상의가 최근 발표한 ‘경제활동 친화성’ 조사에서 남원시는 전국 228개 지자체 중 1위에 올랐다. 2014년 같은 조사에서 꼴찌 수준인 180위였으나 1년 만에 대약진했다.

 전국에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꼽힌 배경에는 최고경영자(CEO)마인드를 가진 단체장과 열정적인 공무원들이 있었다.

 1년 만의 반전 드라마의 중심에는 2011년 취임한 이환주(55) 시장이 있다. 그는 전북도 전략산업국장·새만금경제청 개발본부장 등을 지낸 경제통이다. 이 시장은 “한때 20만 명 가까이 되던 인구가 8만5000여 명으로 쪼그라든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유치와 장기 유지가 필수적”이라는 판단 아래 친기업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남원은 ‘오지’였다. 항구에서 멀고 수도권과도 먼 농촌 내륙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공무원이 법을 어겨)감옥 갈 일을 뺀 모든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규제는 기업인의 눈높이에 맞게 확 풀자”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매주 목요일엔 국·과장 30여 명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기업 민원을 하나하나 점검해 해결방안을 찾았다. 투자 얘기가 들리면 곧바로 달려가 시장이 직접 브리핑했다. 50여 명의 간부들은 기업 1~2곳씩을 맡아 ‘후견인’으로 나섰다.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 문제점이 발견되면 책임지고 처리했다. 지난 한해에만 250여 건의 규제를 고쳤다. 횟수에 제한이 없던 공장설립 심사는 3회로 제한했다. 인·허가 기간도 34일에서 20일로 단축했다. 주민들이 기업관련 민원을 제기하면 공무원들이 해결사로 나섰다.

 이 같은 노력에 끝에 한 화장품 업체는 다른 곳에 공장 부지를 매입하고도 남원으로 왔다. 하이솔화장품 박이경 대표는 “시청 직원들이 업무를 내일처럼 처리해줘 다른 지자체 구애를 뿌리치고 남원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골프장을 운영하는 레저업체는 1000억원대 관광위락시설 투자를 진행 중이다. 

남원=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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