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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시각각] 대통령 이름을 불렀던 중수부

중앙일보 2016.01.09 01:08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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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논설위원

트로트 가수 이애란이 ‘백세시대’로 25년의 무명 생활을 떨쳐내고 일어서는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요양원·양로원·장터를 돌아다녔던 과거와 백혈병과 싸우는 동생을 돌보는 모습은 극적인 요소를 더해준다.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로 이뤄진 가사에는 중독성이 있다. 30여 년 전 송대관의 ‘쨍하고 해 뜰 날’이 ‘짠!’하고 뜬 것과 오버랩된다. 서민들이 자신의 아픔이나 바람이 녹아 있는 노랫말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시대상으로 볼 수 있다. “~~라고 전해라”를 개사하거나 인용한 말들 속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식 화법을 은근히 비꼴 수 있다는 점도 대중의 인기를 얻는 요소일 것이다.

 이틀 전 있었던 검찰 인사를 놓고 ‘박근혜 정부 뒤끝 작렬이라고 전해라’는 패러디가 나오고 있다. 이번 인사 대상자는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가 아닌 부장·차장 검사급이다. 그런데도 뒷말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현 정부 출범 초기 국정원 댓글 사건을 담당했던 윤석열 검사에 대한 인사가 불을 댕겼다. 논란의 취지는 윤 검사가 상대적으로 한직인 대구고검에서 대전고검으로 수평이동을 한 것은 보복 인사라는 것이다. 특수 수사를 주로 했던 윤 검사는 혼외자 파문으로 물러났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호흡이 잘 맞았다. 그는 채 전 총장 퇴임 이후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축소 지시’를 주장했다.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총리로 영전한 것을 고려할 때 이번 인사가 이 정부의 속 좁음을 보여줬다는 여론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검찰 출신 원로 법조인들의 생각은 포인트가 조금 다르다. 윤 검사에 대한 인사를 계기로 지금까지 특수 수사의 관행과 검찰 내 파벌 등에 대한 점검을 지적한다. 마침 김수남 검찰총장이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을 새로 만들면서 대검 중수부 부활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다. 대검 중수부에 대한 검찰 안팎의 부정적 인식은 왜 생겨났을까.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초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11층 특별조사실.

 “한나라당 당직자를 통해 돈을 전달한 사실이 있습니다.”

 “어이 ○○○씨, 노무현이에게 준 돈을 불란 말이야. 말을 못 알아 들어. 한나라당은 이제 됐어….”

 당시 대검 중수부는 노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 자금 수수액보다 10분의 1이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겠다”는 발언에 따른 것이다.

 수사팀의 신문 과정에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존칭은 없었다. 그냥 ‘노무현이’였다. 대검 중수부가 나라를 움직이고 있었고 자신들의 손에 정권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검찰 특별 수사의 상징이었던 대검 중수부의 권세는 최고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사팀 차출 기준은 저돌적인 돌파력이었다. 우격 다짐식 수사라는 비판도 있었다. 윤 검사도 당시 수사팀에 합류해 노 대통령의 측근들을 조사했다.

 이후 검찰 내에선 ‘특수부 마피아’가 생겨났다. 중수부 출신 중 대선 자금 수사팀 검사들이 핵심을 이뤘다. 5년 뒤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면서 대검 중수부도 비극적 결론을 맞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시 중수부의 태도는 상당히 오만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윤 검사의 항명성 파동과 이에 따른 법무부의 인사 조치는 양면성을 갖는다. ‘소신 검사’라는 외형 뒤에 중수부 출신이라는 지나친 자긍심이 인식의 한 편에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이 아닌 조직에 대한 일방적 충성도 위험한 발상이다. 독일 출신의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의 조직 생활에서 습관화된 행동이 자칫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정의에 대한 검사들의 선의가 파벌이나 조직 이기주의로 빛을 바랠까 봐 하는 소리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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