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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아내는 리모컨을 던지고, 아들은 방에서 안 나와요

중앙일보 2016.01.05 02:45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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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수시 낙방에 살벌해진 가족

Q
(‘또 연속극이냐’ 말 실수한 남편) 40대 후반 기혼남입니다. 아내와 사이가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최근 아들이 대입 수시에 떨어지고 아내의 실망이 큽니다. 친구가 입시 컨설턴트라 상의도 할 겸 술 한잔하고 돌아오니 아내 혼자 연속극을 보고 있더군요. 입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니 아내는 지금 연속극을 보고 있으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그깟 연속극 때문에 대화를 미루는 아내의 행태가 못마땅해서 약간 언성을 높이려는 순간 아내가 버럭 화를 내며 리모컨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아내의 행동에 당황해서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텔레비전을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생겼습니다. 이런 아내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해야 할까요.

A (잠시 거리를 둬 보라는 윤 교수) 서로 공감하며 행복하게 살던 부부에게 사소한 일로 인한 분노 반응이 크게 일어난 상황입니다. 부부가 공감하면 행복합니다. 그런데 행복해야 공감도 잘 유지됩니다. 누군가와의 공감은 내 마음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차 있어야 원활하게 작동합니다. 오늘 사연처럼 가족 안에 큰 스트레스 요인이 발생했을 때는 가족 구성원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속상한 일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돼 뇌가 지쳐버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녀가 입시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 속상함의 정도가 큽니다. 따라서 부부의 마음이 동시에 지치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평소에는 그냥 넘어가는 자극에도 강한 분노 반응이 치솟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다 다르죠. 오늘 사연의 남편은 적극적으로 친구와 술 한잔하며 풀었습니다. 이에 비해 아내는 현실에서 도피해 드라마에 심취함으로써 잠시나마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다시 고통스러운 현실로 자신을 꺼내려고 하니 분노 반응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남편도 억울합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으니까요.

각자 스트레스 풀 시간이 필요해

마음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이타적인 경향이 줄고 이기적인 모습이 나타납니다. 마음이 이타적이라는 것은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내 에너지를 보내 주어 상대방의 지친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주는 것이죠. 이기적이 됐다는 것은 내 마음이 스트레스로 지쳐, 자동적으로 외부로 나가는 에너지를 차단하고 외부의 에너지를 받으려는 상태로 전환된 것입니다. 공감 능력도 일시적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부부 중 한 명만 스트레스를 받을 땐 나머지 한 명의 공감 능력 덕분에 큰 부부 싸움까지 이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 입시처럼 부부가 모두 스트레스 상황일 때는 마음이 둘 다 이기적인 상태로 전환돼 있어 사소한 자극에도 큰 부부 싸움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스트레스 상황에 빠져 있을 때는 일주일 정도 자기 방식대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연처럼 술을 마시고 TV를 보는 두 사람의 행동은 모두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상대방의 다른 스타일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부 싸움이 격하게 일어났다 해도 그걸 너무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에게 화풀이를 한 거니까요. 부정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대신 화풀이를 한다는 건 그 사람을 믿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화풀이는 곧 상대방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바뀝니다. 울분을 토하고 나니 공감 능력이 다시 활성화하는 것이죠. 싸움 후 부부가 다시 대화를 시작할 땐 열띤 토론보다 외식이나 영화 관람을 하면서 뇌를 그냥 편하게 충전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Q (방에 처박혀 있는 아들은 어쩌나) 아내도 아내지만 아들이 더 걱정입니다. 수시에 다 낙방을 하니 좌절감 탓인지 방에서 안 나오고 엄마가 없을 때 나왔다가 먹을 것만 챙기고 들어갑니다. 너무 풀어서 키운 탓인지 본인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제 맘도 너무 안 좋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A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윤 교수) 대학 입시 스트레스로 실망하고 좌절하는 부모와 자녀들이 많습니다.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입시 제도가 마음 의학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큽니다. 시험 당일 최고의 성적이 나오길 바라지만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고 오는 시험 스트레스가 불안을 만들어 평소 모의고사 때보다 실수를 더 많이 하기 쉽습니다. 확률적으로도 시험 성적은 평균을 기준으로 여러 조건에 의해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사람이란 최고치를 목표로 삼고 기대하게 돼 있습니다. 즉 모의고사 최고 성적 이상을 기대하기에 현실의 자기 성적에 만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오늘 사연의 수험생, 실망감이 얼마나 클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방으로 들어가버린 것은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심리적 회피 반응입니다. 심리적 회피 반응 자체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누구나 괴로울 때 이불 뒤집어쓰고 멍하게 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제 환자 중에 3년 동안 방에만 있던 여학생도 있습니다. 젊음은 강한 좌절감을 느끼게 되지만 동시에 회복력이 잠재돼 있어서 지금 그 학생은 학교생활 잘하고 있습니다.

 일단은 ‘내 아들이 쉬고 있구나’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아들이나 본인을 탓할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힘들 때 다 그렇게 숨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한두 달 이상 간다면 스트레스로 마음의 감기가 살짝 온 것일 수 있으니 마음 전문가를 만나 볼 것을 권합니다.

회피 행동 보이면 일단은 지켜봐야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냥 집에만 있고 싶다면 내 마음에 심리적 회피 반응이 찾아오지 않았나 의심해 봐야 합니다. 크게 속상한 일 때문에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찾아오는 회피도 있지만, 특별한 문제 없이 생활을 잘하고 있는데도 이런 심리적 회피 반응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너무 열심히 일해 뇌가 지쳐버리면 말이죠.

 ‘소시지 빵’ 같은 남편이란 말을 최근에 들었는데요. 사회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남편이 주말에는 집에서는 이불을 몸에 돌돌 말고 소파에 종일 누워있기만 하는 것을 빗댄 이야기라고 하네요.

 하루 이틀 소시지 빵 놀이하는 것, 나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현실에서 나를 분리해 쉼을 주는 것이죠. 그러나 이 회피 행동이 굳어 버리면 삶의 질이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쉰다는 것은 단순히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닌 뇌를 즐겁게 해주는 능동적인 작업이기 때문인데요. 뇌가 지쳐서 나타나는 회피 행동이지만 이것이 장기화하면 마음의 에너지기 더 고갈되어 삶의 내용이 건조해지고 행복감이 줄어들게 됩니다.

 수능 시험 후 좌절감으로 방으로 숨어 버린 아들, 이유 있는 회피 반응입니다. 일단은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방에만 있다고 속상한 마음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마음이 행동을 만들지만 행동이 마음을 바꾸게도 합니다. 아들이 평소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좋은 말로 잘 유도해 보세요. 부모와 함께이든, 친구와 함께이든 다 좋습니다. 싫다고 저항하겠지만 그래도 억지로 하다 보면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되면서 마음에 따뜻한 에너지가 차오르게 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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