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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작동 시작한 무능 공직자 퇴출제

중앙일보 2016.01.05 00:24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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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부처의 실·국장급에 해당하는 고위 공무원은 전국적으로 1510명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52세. 부처 내의 치열한 경쟁과 검증 과정을 거쳐야 고위 공무원에 오른다. 장·차관을 제외하면 직업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책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이다. 1인당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의 예산 집행을 결정한다.

 그간 부처를 출입하면서 고위 공무원을 여럿 만나봤다. 개인적으론 대체로 능력이 뛰어나고 업무에 대한 열정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20대에 행정고시(현재의 5급 공채)에 붙어 ‘신분 보장’ 우산 속에서 경력을 쌓고 ‘연공서열’의 관행 속에 고위 공무원이 된 소수였다. 아무래도 이들의 관심은 국민보다 장·차관의 심기였던 것 같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인 정책을 하루아침에 접으면서도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비위 사실이 감사에 적발되지 않는 한 정책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이 때문에 낮은 평가를 받지도 않았다.

 그 원인 중 하나는 공직사회 내 여과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데 있다. 고위 공무원은 매년 5단계 등급의 성과평가를 받는다.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두 차례 받으면 직권면직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최하위 등급을 받는 이는 거의 없었다. 부처 내의 온정주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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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2006년 고위 공무원 제도가 도입된 뒤 직권면직된 고위 공무원은 한 명도 없다. 인사혁신처가 지난해 10월 “고위 공무원의 책임을 강하게 묻겠다”며 제도개선책을 낸 이유다. 대규모 예산을 낭비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거나 업무 조정 능력이 부족한 고위 공무원은 반드시 ‘매우 미흡’ 등급을 받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이런 분위기가 알려지자 지난해 연말 성과가 낮은 고위 공무원 두 명이 자진해 옷을 벗었다. 퇴출 시스템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위 공무원은 영향력 못지않게 책임이 막중한 자리다. 스스로 자신을 연마하며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면 국민을 위해 공직을 떠나는 게 맞다. 정부 부처의 한 고위 공무원도 인사혁신처의 제도개선안에 “솔직히 반갑지는 않다. 하지만 꼭 필요한 제도다. 고위 공무원일수록 제대로 일하라는 메시지로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민간인 출신인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공직을 시작하거나 준비하는 이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공무원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공무원을 하고 싶은 사람이 공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이 아닌 소명으로서 공무원의 길을 걸을 사람이 아니면 공직을 떠나라는 의미다. 고위 공무원에게 더욱 더 맞는 얘기다.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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