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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식당 12곳 거친 현장파…‘프랑스식 이자카야’ 성공, 수란 만드는 법 특허까지 내

중앙일보 2016.01.04 01:18 종합 2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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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

‘훌륭한 사람이 많은데 왜 나를…?’ 정두원 ‘볼라레’(서울 서초구 서래마을) 셰프가 나를 추천했다는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본지 지난해 12월 14일자 22면 셰프릴레이 6회> 내가 바라는 건 그저 내가 즐겁게 요리할 수 있는 가게다. 화려하고 유명하기보다 사람들이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찾고 또 찾는.

 2009년 연남동에 ‘이노시시’라는 이름으로 첫 가게를 열었을 때부터 그랬다. 손님이 늘어 2호점을 열고, 나아가 예약제로 운영하는 ‘이타치’까지 가게 셋을 운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연남동에 찾아오시던 분들이 지금도 압구정 ‘이치에’의 단골이시다. 언젠가 ‘이타치’ 스타일로 작은 규모의 예약제 ‘갓포’(고급 요리인 가이세키와 선술집 요리인 이자카야의 중간 성격) 식당을 다시 열고 싶다.

셰프릴레이 ⑦ 김건이 이유석에게


 처음 일식을 만난 순간이 떠오른다. 군대 제대 후 신라호텔 외식업부에서 일하면서 일식당에 심부름을 갔을 때였다. 네모난 그릇에 담긴 생선회가 눈부시게 고왔다. 생선 색깔이 그렇게 곱고 다양한지 미처 몰랐다. 흰색(광어)·빨간색(방어)·주황색(연어)뿐인 줄 알았는데, 성게는 샛노랗고 고등어는 말 그대로 ‘등 푸른 생선’이었다.

 그때만 해도 횟집과 일식당의 차이가 없어서 한국화된 일식 일색이었다. 일본 시골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이자카야를 한국에서 제대로 구현하면 대박 날 것 같았다. 스물일곱 살, 은행에서 빌린 3000만원으로 첫 식당을 열 수 있었던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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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석 셰프의 ‘보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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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석 셰프

 5년 전 나처럼 무일푼으로 시작해 ‘미식가들의 사랑방’을 일군 이가 ‘루이쌍끄’(서울 강남구 신사동) 이유석 셰프다. 이 셰프는 프랑스식 이자카야라 할 비스트로 펍(bistro pub)을 유행시킨 첫 주자나 다름없다. 사실 오너셰프 레스토랑이라도 첫술에 ‘맛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 많진 않다. 그런데 ‘루이쌍끄’엔 처음부터 반했다. 심야 데이트를 할 때 여자친구가 “맛있다”며 먼저 가자고 권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시그너처(대표) 메뉴라 할 ‘보케리아’는 이 셰프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에서 파는 거리음식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이 셰프는 프랑스 3년, 스페인 1년 등 4년간 유럽 식당 12곳에서 스타주(견습)를 거친 현장파다. 보케리아에 들어가는 수란(계란을 물속에 풀어놓은 상태에서 익힌 반숙)도 그의 호기심과 끈기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날계란을 1차 저온 열처리를 통해 90% 익힌 상태로 만든 뒤 서빙 직전에 끓는 물에 데쳐서 내놓는다. 젤리 같이 말랑말랑한 식감이 말 그대로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느낌이다. 지난해 9월 특허(‘수란의 제조 방법 및 이를 이용한 수란 요리’)까지 받았다 한다.

 이 셰프를 따라서 강남 일대에 여러 비스트로 펍이 문을 열어 부흥기를 맞았다. ‘루이쌍끄’와 ‘이치에’는 그런 점에서 닮았다. 먼저 가는 길은 두렵기도 하지만 흥분된다. 그래서 설렌다, 오늘도.

  정리·사진=강혜란 기자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 인연과 철학, 셰프가 주목하는 또 다른 셰프를 통해 맛집 릴레이를 이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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