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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공든 탑’ 균열 … 시민도 시향도 피해자

중앙선데이 2016.01.03 01:36 460호 2면 지면보기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예술의전당에서 ‘정명훈의 합창, 또 하나의 환희’ 무대를 마지막으로 서울시향 예술감독에서 사퇴한 정명훈 전 감독이 예술의 전당을 떠나고 있다. [뉴시스]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던 정명훈(63)씨가 지난해 12월 31일 프랑스로 출국했다. 정 전 감독은 30일 송년 무대를 끝으로 예술감독직을 그만뒀다. 예정돼 있던 공연의 지휘를 맡지 않기로 해 서울시향의 국내 및 해외 공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뉴스 분석] 서울시향 사태, 무엇을 남겼나

 서울시향은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공연 예매자들에 대한 환불 문제와 후임감독 선임 문제를 논의한다는 계획이나 정 감독의 사퇴가 불러온 후폭풍을 수습하는 게 만만치 않아 보인다.



 결국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퇴진’으로 막을 내린 1년여의 공방을 두고 일각에선 “승자는 언론이고 패자는 클래식 애호가”란 자조 섞인 말도 나돌고 있다. 음악 외적인 문제로 인해 음악을 잃어버리게 된 데 대한 허탈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정 전 감독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 특히 새로운 논란거리로 떠오른 정 전 감독 부인의 음해 개입 의혹에 대한 말끔한 해명 없이 출국해버린 데 대해선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서울시향 사태를 되돌아보며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발단은 2014년 12월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박현정(54) 당시 대표의 폭언과 성추행, 인사 전횡을 문제 삼아 퇴진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정 전 감독 측은 직원들의 인권유린을, 박 전 대표 측은 정 전 감독의 지휘료와 가족 항공료 특혜 문제를 폭로하며 공방이 거칠어졌다.



 지난해 8월 박 전 대표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경찰에 의해 무혐의 처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박 전 대표를 고소한 서울시향 직원 10명은 명예훼손 피의자로 입장이 바뀌었다. 정 전 감독의 부인 구모씨가 허위사실 유포를 지시했다는 의혹으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입건(12월 21일)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정 전 감독의 재계약이 보류됐다. 재계약 여부에 관계없이 2016년 일정을 소화하겠다던 정 전 감독은 29일 돌연 사퇴 의사를 밝히고 31일 오후 부인이 있는 프랑스로 출국했다.



 1948년 창단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정명훈은 각별한 인연이 있다. 60년 일곱 살의 정명훈이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다. 서울시향은 8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를 대표했으나 90년대 이후 연주력 면에서 KBS교향악단이나 부천필 등에 크게 밀렸다. 일단 입단하면 61세까지 보장된 정년까지 실력에 관계없이 호봉제로 급여가 인상됐다. 그런데도 단원들은 외부 레슨을 하느라 연습을 게을리했고 이러한 서울시향을 유지하는 데 연간 50억원의 세금이 쓰였다. 정기연주회의 평균 유료 관객은 500명을 넘지 못했다. 수입은 1억~2억원에 불과했다.



 서울시향에 수술 메스를 댄 건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서울시장 시절인 2005년 예술고문에 정 전 감독을 영입했다. 정명훈은 2006년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로 새로운 서울시향의 출범을 알렸다. 이후 브람스 교향곡 전곡 연주에 이어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치러내며 깊은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악장인 스베틀린 루세브와 트럼피터 알렉상드르 바티, 팀파니의 아드리앵 페뤼숑 등 실력 있는 단원들이 정명훈을 보고 서울시향으로 왔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티켓 값과 높아진 연주 실력 덕분에 38.9%이던 유료 객석 점유율은 10년 만인 지난해 92.8%로 껑충 뛰었다. 남북 음악교류에도 공을 들여 2011년 평양에서 북한국립교향악단과 은하수 관현악단을 지휘했다. 2012년에는 파리에서 라디오프랑스필과 은하수 관현악단의 합동연주회를 이뤄냈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아시아 오케스트라 최초로 독일 음반사인 도이체그라모폰과 10장의 음반 발매 계약을 맺었다. 10번째 음반인 브람스 교향곡 4번과 4개의 소품 Op.119(피아노 정명훈)은 오는 8월 발매된다. 1월 16일과 17일에는 말러 교향곡 6번을 녹음해 11번째 음반을 낼 예정이었다.



 정명훈에 대한 지지는 이 같은 높은 예술적 성취에 기반했다. 그러나 부인의 허위 음해 개입 의혹 등 개인적·윤리적 문제로 10년 공적이 얼룩지고 있다. 정 감독은 29일 서울시향 단원과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 발생하고 있는 일들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용인되는 수준을 훨씬 넘는 박해”라며 “결국에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적었다.



 정 전 감독 못지않게 이런 상황을 보는 서울시민과 클래식 애호가들의 심경도 착잡하다. 정 전 감독은 세계 정상급 음악가다. 하지만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을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진실 논란을 매듭짓는 데 공인다운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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