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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 이어져 번영한 앙코르 왕국 엘니뇨 습격에 농업 망가져 붕괴

중앙선데이 2016.01.03 01:24 460호 14면 지면보기

캄보디아에 있는 대표적 앙코르 문화 유적인 앙코르와트.



“예전의 그리스 땅은 비옥했다.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만큼 식량도 풍족했다. 나무가 많았고 토양이 두터워 땅은 빗물을 저장했다. 적당한 비, 풍부한 샘물과 강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기름진 땅은 떠내려가고 앙상한 땅덩어리만 남았다.”


문명까지 삼킨 엘니뇨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대화편』 중 ‘크리티아스’에서 한탄하는 말이다.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가 그리스를 황폐화했다는 그의 말은 기가 막힌 선견지명이다.



그렇다면 정말 기후변화가 문명의 흥망에 영향을 줄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에서 기후변화, 환경 훼손, 인구 증가 등이 문명을 붕괴시킨다고 말했다. 엘즈워스 헌팅턴은 “기후가 건조해지자 경제적 곤궁, 기근, 무질서가 그리스를 휩쓸었다. 로마가 무너진 것도 서기 3세기 초반에 조성된 열악한 기후 조건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에서 가장 큰 피해를 가져오는 엘니뇨도 문명에 영향을 줄까? 답은 ‘그렇다’이다. 역사를 보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영향을 줬다. 동남아시아에 세워진 가장 찬란한 문명이 앙코르와트다. 먼저 앙코르왕국을 살펴보자. 왕국이 위치한 동남아시아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다. 앙코르왕국의 전성기는 900년에서 1200년까지다. 이때는 지구온난기와 우기가 겹치면서 벼농사는 매년 풍작이었다. 풍부한 농산물은 앙코르왕국을 떠받치는 하늘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16세기 말에 앙코르왕국은 붕괴됐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기후학자들은 벼농사의 쇠퇴가 결정적이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되면서 벼농사가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남아 지역에 가뭄이 발생하는 경우는 엘니뇨가 닥쳤을 때다. 엘니뇨 때는 몬순이 발달하지 못하고 고기압이 발달한다. 비가 내리지 않고 극심한 가뭄이 발생한다. 이때 수시로 발생한 엘니뇨는 식량 생산을 격감시켰다. 환경 파괴와 겹쳐지면서 결국 앙코르와트 문명은 열대우림에 잠들고 만다.



“1876년부터 1879년까지 무려 4년 동안 계절풍이 불지 않았다. 엘니뇨 때문이었다. 그 여파로 인도에서 1030만 명이, 중국에서 2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에서 엘니뇨로 인한 재앙을 이렇게 서술했다. 19세기 말까지 강력한 엘니뇨가 세 차례나 전 세계를 강타했다. 대기근은 남아프리카에도 잔인하게 몰려왔다. 비가 내리지 않자 초지가 사라지면서 가축들이 먼저 죽었다.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면서 노약자들도 쓰러져 갔다. 당시 남아프리카 원주민인 줄루족은 지배국이었던 영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영국은 잔인하게 거절했다. 줄루족은 살기 위해 1878년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줄루 문명은 영국의 토벌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남아프리카 위쪽에 위치한 나미비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 지역을 지배하던 나라는 독일이었다. 엘니뇨는 동부 아프리카에도 심각한 가뭄을 가져왔다. 대기근이 들자 나미비아의 독일인들은 원주민인 헤레로족을 그들의 거주지에서 쫓아냈다. 생존을 위해 헤레로족은 1904년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들은 독일군에 의해 거의 몰살됐다. 엘니뇨가 헤레로 문명을 사라지게 한 원인이 된 것이다.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의 카나크족도 엘니뇨와 제국주의의 희생자다. 지배자였던 프랑스는 엘니뇨로 대가뭄이 들자 원주민 땅을 빼앗았다. 1878년 카나크족은 대기근을 견디다 못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프랑스의 신무기에 당할 방법이 없었다. 카나크족이 거의 몰살되면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문명이 사라졌다. 남미 페루 지역에 있던 치무 문명도 엘니뇨 때문에 멸망했다. 미국의 고고학자 미카엘은 엘니뇨에 수반된 엄청난 비가 치무 문명을 붕괴시켰다고 말한다. 일부 기후학자는 마야와 잉카 문명 멸망에도 엘니뇨가 영향을 줬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엘니뇨는 현대 문명에도 영향을 줄까? 미국 국방부는 미래예측보고서에서 ‘그렇다’고 말한다. 더 심해지는 기후변화와 엘니뇨 등으로 몇몇 국가는 금세기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엘니뇨 등의 이상기후는 우리에게도 미래의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격심한 기후변화에서도 성공적으로 생존한 이누이트와 티코피아 문명도 있으니 말이다. 기후변화와 엘니뇨에 지혜롭게 대응한다면 위기는 오히려 기회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반기성 케이웨더예보센터장·조선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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