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정은, 이례적 ‘남조선 당국’ 지칭 … 회담 재개될지 주목

중앙선데이 2016.01.03 01:21 460호 7면 지면보기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1일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노동신문]



지난 1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선중앙TV를 통해 발표한 2016년 신년사에 대한 언론의 해석은 주로 남북관계와 통일에 맞춰져 있다. 특히 국내외 전문가들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누구와도 마주 앉아 통일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원고지 61장 분량에 이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11장 정도에 불과하다. 5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김정은 신년사로 본 향후 남북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와 통일 중심의 신년사 해석이 언론을 장식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8·25 합의 이후 석 달 반 만에 겨우 성사된 차관급 당국회담이 끝난 지 불과 3주밖에 되지 않았다. 후속회담에 대한 강한 기대감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둘째, 김정은의 신년사가 나오기 직전 박근혜 대통령이 힘주어 언급한 주제 역시 평화통일이었다. 지난해 12월 31일 미리 발표된 신년사와 1월 1일 신년 조찬에선 모두 평화통일이 화두였다. 1일 아침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박 대통령은 방명록에 ‘평화통일을 이루는 2016년을 기원한다’라고까지 썼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언급을 당장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섣부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신년사에서 ‘최고위급(정상)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던 김정은의 ‘통 큰 제안’은 1년 만에 증발되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지난해 신년 연설에서 김정은은 ‘제도(흡수)통일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를 말했다. 그러나 올해 신년연설에서 그는 ‘제도(흡수)통일을 추구하면서 불신과 대결을 격화시켰다’는 ‘판단’을 내세워 남한을 공격했다.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 직후 우리 정부는 “남북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화답했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이뤄내 평화통일 시대를 앞당길 것인가에 대한 ‘의지’ 표명은 유보했다. 이렇게 ‘당위’와 ‘판단’, 그리고 ‘사실’과 ‘의지’가 만들어내는 비극적인 길항관계는 2016년 1월의 남북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항로를 찾는 작업은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고 우리 정부가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남북관계가 암초에 부딪 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항로를 찾으면서 또 한 해를 흘려보내지 말라는 법은 없다.



 2016년 신년사만을 놓고 볼 때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박근혜 정부와의 당국회담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해볼 수 있는 키워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신년사에 나타난 대남 호칭이다. 김정은은 신년연설에서 시종일관 ‘남조선 당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이 1946년 이래 60년 동안 신년사에서 사용한 남한에 대한 호칭은 무려 33가지에 이른다. 괴뢰통치배, 군사파쇼, 남조선 괴뢰도당, 남조선 보수집권세력 등등 ‘조악함의 다양성’ 차원에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서울대 박종희·박은정·조동준 교수가 신년사 69건에 사용된 어휘들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다.



 올해 신년사에 사용된 ‘남조선 당국’이라는 호칭은 33가지의 호칭 중에서 가장 중립적이고 우호적인 쪽에 속한다. 이런 호칭이 등장했던 시기는 4·19 혁명 직후와 냉전 직후 노태우 정부 시기 등 극히 일부에 국한된다.



 이처럼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를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분석하다 보면 그들이 표방하는 정책과 노선의 줄기가 보인다. 그러나 신년사 텍스트만을 가지고 북한의 대내외 전략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켰던 2010년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을 다시 꺼내 읽는 심경은 착잡하다. 북한은 천안함 공격 석 달 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어김없이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의 화해협력을 강조했다.



 야당과 비판적 언론이 존재하지 않는 정치적 시스템에서 정부가 펴내는 1차 문헌의 공신력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공식적 문헌 바깥에 존재하는 정치적 현상을 몇 개의 ‘코드’를 통해 읽어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과거 소련 국가권력 내부에서 권력 부침과 고위 당 관료의 서열 변동 등을 해석하기 위해 동원했던 크렘린학(Kremlinology)이 대표적이다.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씨학(Kimnology)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북한 관련 자료의 독해와 검토는 분석(analyze)보다는 해독(decipher)에 가깝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들여다보고 있는 외부 관찰자들이 신년사에 매달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년사가 곧 김정은의 교시로서 국가운영의 밑그림인 동시에 신년사를 대신할 그 어떤 문헌도 그만큼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연구자들은 물론 정책 담당자들에게도 신년사를 포함한 북한 문헌의 독해는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선전선동 문구로 가득 차 있는 데다 1인 숭배와 찬양을 위한 상투적 수식어가 반복되는 글을 읽는 것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김정은이 해마다 반복되는 ‘신년사 정치’에 변화를 주면 어떨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새해 아침에 해보게 되는 것은 이런 스트레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이 김정은 체제 들어 개방정책을 표방하고 대외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변화를 모색하는 것을 보면 마냥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도 싶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북한이 보여온 일련의 대외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변화는 이른바 구애공세(charm offensive)를 위한 전술적 변화에 불과하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잦은 언론 노출을 통해 ‘정상적’인 지도자상을 심고자 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제 구시대적 신년사 정치도 한번쯤 재고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북한이 김정은 시대 5년차를 맞아 대외관계를 정상화하고자 한다면 자국의 외교정책을 국내외 언론에 설명하는 공보업무부터 정상화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처럼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은 어떤가. 아니면 노동당 7차 당 대회에 즈음한 김정은의 내외신 기자회견은 어떨까.



 



 



성기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