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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거꾸로 읽는 사나이 손대면 판 바꾸는 ‘게임 체인저’

중앙선데이 2016.01.03 01:18 460호 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박용석 parkys@joongang.co.kr



박현주(58)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손대는 곳마다 판이 바뀐다. 그는 세상에서 만들어진 규칙으로 게임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최근엔 2조4000억원을 베팅해 대우증권 인수전의 최종 승자가 됐다. 그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대우증권 인수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1990년 32세이던 박 회장은 최연소 지점장(동원증권의 전신인 한신증권 중앙지점)이 되자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라는 지점훈(支店訓)을 내걸었다. 이곳은 박 회장이 지점장이 된 후 주식약정 1000억원을 넘어서며 전국 1위에 올랐다.



 



#1. 2013년 1월 말 미래에셋생명이 출시한 변액적립보험 ‘진심의 차이’가 보험업계를 발칵 뒤집었다. 업계 관행인 선취수수료 구조를 없앴기 때문이다. 변액보험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뗀 금액을 펀드에 적립해 운용실적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대부분 보험료의 10% 안팎을 초기사업비 명목으로 떼 갔다. 하지만 이 상품은 초기사업비를 최대 7년에 걸쳐 나눠서 떼고 다른 수수료도 삭감해 실제로 투자에 사용하는 비율을 높였다. 기존 상품은 6개월 내에 해지할 경우 환급률이 20.4%에 그쳤으나 ‘진심의 차이’는 9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입소문이 나면서 단일 상품 판매액이 3000억원을 넘어서며 이익을 냈다.



#2. 2008년 8월 초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전국 영업점 회의에서 “골프회원권이 고평가돼 투자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미래에셋은 보유 중인 골프회원권 대부분을 팔았다. 실제 회원권 가격은 2008년 정점을 찍고 하강 곡선을 그렸다. 여러 골프장이 수익 악화로 문을 닫던 2013년 박 회장은 반대로 강원도 홍천에 블루마운틴 골프장을 열었다. 퍼블릭 골프장이지만 주말 그린피가 29만원으로 가장 비싼 수준이다. 해발 765m 산속에 있어 경관이 뛰어나고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를 맡은 코스도 자랑거리다. 블루마운틴의 이두현 부장은 “이용객이 늘어나 (골프 시즌이면) 주말엔 3주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는 박 회장의 스타일을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외환위기 때 뮤추얼 펀드로 돌풍 박 회장의 투자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수의 입장에서 투자하라’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대세가 결코 승리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모두가 더 오른다고 할 때 주식을 팔고, 모두 내다 팔 때 사들였다. 그는 이미 한신증권에서 상품을 운용할 때부터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전체 증권사에서 수익률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증권맨이 하루에도 몇 번씩 주식을 샀다 팔았다 하는 초단기 매매에 몰두했다. 그는 철저한 종목 분석으로 가치주에 투자했다. 박 회장은 2007년에 낸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좋은 사업 파트너를 구하는 심정으로 장기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만든 기업 분석보고서도 주식자금을 모으는 데 한몫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워낙 분석이 예리하고 정확해 시장 전문가도 ‘노무라증권 보고서’라며 돌려 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원칙은 97년 최현만 동원증권 서초지점장(현 미래에셋생명 수석부회장) 등 8명의 ‘박현주 사단’과 창업할 때 빛을 발했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로 대기업이 줄줄이 무너지고, 코스피 지수는 300 선까지 급락했다. 국내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끊이지 않았다.



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우량주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최현만 수석부회장은 “박 회장은 국내 경제가 반드시 살아날 것으로 보고 한국 제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삼성전관(현 삼성SDI)을 사라고 주문했다”며 “그때 투자했던 주식은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도 대표적인 사례다. 업계에선 이 펀드(폐쇄형)가 일정 기간 돈을 찾을 수 없는 데다 외환위기 여파로 고객 반응이 신통치 않을 것으로 보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박 회장은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고객에게 믿음을 팔 수 있는 기회로 봤다. 98년 12월 삼성증권 창구를 통해 판매된 펀드는 2시간30분 만에 500억원 한도가 모두 팔려 나갔다. 운도 따랐다. 3개월 후 현대증권의 ‘바이코리아 펀드’가 공격적으로 돈을 끌어모으면서 박 회장이 사들인 종목도 주가가 크게 올랐다. 이 펀드는 1년 만에 10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바둑 복기하듯 원인 분석해 차기 대비 복기는 바둑 용어다. 박 회장은 자서전에서 “바둑에서 복기를 통해 실수를 점검하듯 실패 과정을 추적해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에셋 창립 이후 가장 큰 시련은 2007년 10월 출시한 인사이트 펀드다. 미래에셋이 적립식 펀드 붐을 이끌던 시기였다. 인사이트 펀드는 투자 지역과 자산을 정해 놓지 않고 고수익 자산이 발견되면 투자하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헤지펀드였다. 특히 해외 증시에 혜안을 가진 박 회장이 투자 대상을 찍어 주는 펀드로 알려지면서 돈이 몰렸다. 출시 두 달 만에 4조7000억원이 쌓였다.



이듬해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로 번지면서 열풍은 원성으로 바뀌었다. 1년 후 수익률이 반 토막(-51.33%) 났기 때문이다. 사태의 여파는 컸다. 회복이 지연되면서 투자자는 미래에셋에 등을 돌렸다. 2008년 70조원에 달했던 운용자산도 3년 만에 40조원대로 쪼그라들었다. 박 회장은 2011년 말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했다. 채권 투자는 물론 해외기업·부동산 같은 대체 투자에 적극 뛰어들었다. 과거 전체 운용자산의 70%에 달했던 주식형 비중은 현재 20%대로 줄었고, 채권·대체 투자 등에 골고루 분산돼 있다.



광주일고 수석 합격 날 부친의 부음 박 회장의 고향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이다. 자수성가한 농사꾼 집안의 2남2녀 중 셋째다.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가 광주제일고 합격통지서를 받던 날 부친이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그 충격으로 고등학교 시절 방황했다. 그때 모친이 “대학 가기 힘들면 고향에서 농사짓자”며 눈물짓는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광주제일고 동창인 김종영 전 매일경제TV 대표는 “또래와 달리 철이 일찍 들었다”고 박 회장의 학창 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차분하고 말수도 많지 않았지만 검정 안경테 뒤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처음 주식을 접한 것도 어머니 영향이 컸다. 대학 시절 돈 관리하는 법을 배우라는 뜻으로 어머니가 1년 학비와 생활비를 한꺼번에 보내 줬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주식 투자에 나섰다. 또 박 회장의 어머니는 내일 들어올 돈이 100만원이 있어도 ‘돈이 있다’는 얘기를 안 했다고 한다. 돈을 손에 쥐어야 진짜 자신의 돈이라고 여겼다. 박 회장은 “돈에 대한 이런 가르침이 고객의 돈을 관리하고 미래에셋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됐다”고 밝혔다. 박 회장 어머니는 지난해 3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미래에셋그룹 고위 관계자는 “박 회장 어머니께선 마을과 성당 등 주변에 전 재산을 기부하고 빈손으로 떠나셨다”며 “마을에서 공덕비를 세울 정도로 존경받는 분”이라고 말했다.



승부 걸 상황에도 무리 않는 ‘싱글’ 그는 잘 아는 분야만 투자한다. 어디에 꽂히면 파고들어 그 분야 전문가가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골프다. 현재 그는 싱글 골퍼다. 90년대 중반 골프에 입문했다. 미래에셋그룹 관계자는 “당시 박 회장은 잠도 거의 안 자고 하루 6시간씩 골프를 치다가 3개월 후 드러눕고 말았다”며 “알고 보니 갈비뼈에 금 간 줄도 모르고 연습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박 회장은 골프의 스윙 원리를 연구해 치는 스타일이다. 미래에셋 소속으로 지난해 LPGA투어 신인상을 받은 김세영 선수에게 조언을 해 줄 정도로 이론에 밝다고 한다. 고등학교 동창인 장인환 전 KTB자산운용 부회장도 “싱글이면 한번 승부를 걸 만한 상황에서도 무리하지 않는다”며 “실수 없이 정교하게 치기 때문에 꾸준하게 70대 타수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들려줬다.



정계 입문을 포기한 것도 ‘아는 길만 가는’ 그의 스타일에 따른 것이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이 박 회장에게 여러 차례 출마를 권유했다. 박 회장의 한 측근은 “동교동계 실세들로부터 전국구든 수도권이든 원하는 자리를 준다는 언질도 받았다”고 전했다. 끈질긴 구애에도 박 회장은 단호했다. 그는 “나는 금융인이고 기업인이라 정치는 모른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병철·정주영처럼 불가능한 꿈 꿔야” 지난해 12월 28일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인수협상자로 선정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 박 회장이 등장했다.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인 것은 7년 만이다. 이날 그는 눈빛을 반짝이며 거침없이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한국에서 삼성전자 같은 금융회사가 나오려면 고(故) 이병철·정주영 회장처럼 불가능한 꿈을 꾸어야 한다”며 “한국 금융산업과 자본시장 DNA를 바꿔 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우증권 인수로 박 회장은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그는 “자산 관리에 강점이 있는 미래에셋증권과 투자은행(IB) 역량이 뛰어난 대우증권을 결합해 글로벌 투자은행과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증권과 함께 인수할 산은자산운용에 대해서는 “헤지펀드를 강화할 계획으로 대표적인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공급하는 회사로 바꿔 보겠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다양한 투자처를 발굴해 국민이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노후 관련 전문 상품도 내놓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박 회장처럼 치고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산업이 일어날 수 있다”며 “그가 IB로 국내 자본시장을 흔들 플레이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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