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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개선 불씨 살리려면 인내심 갖고 국민 설득해야

중앙선데이 2016.01.03 01:18 460호 10면 지면보기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두 주먹을 꼭 쥐고 있다. 최정동 기자

1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 참가자들이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2 위안부 협상 결과에 항의하는 일본인들이 지난해 12월 29일 도쿄 총리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일본 우익들은 이번 협상이 굴욕적이라며 총리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고, 한국의 야당과 시민단체도 굴욕협상이라거나 무효화하고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일 시민단체 서로가 굴욕적이라고 주장하는 사상 초유의 협상이다. 그만큼 서로에게 치열한 협상이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의하면 위안부 합의에 대해 ‘잘못했다’는 의견이 50.7%, ‘잘했다’는 평가가 43.2%다. 언제나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대일 협상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팽팽한 결과다.


[전문가 분석] 위안부협상 의미와 평가

양국 정부는 왜 이 시점에 위안부 협상을 서둘렀을까. 위안부 문제는 2012년 8월 말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재점화된 이후 한·일 양국의 가장 큰 갈등 현안이었다. 한·일 관계가 경색된 이유는 2012년 말 출범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에 있었지만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인식이 어긋난 대표적인 예였다. 아베 내각은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정하면서 고노(河野) 담화를 재검증하기까지 했다. 2014년 4월부터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장급 협의를 12차례나 열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지난해 11월 2일 개최된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2015년이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이란 의미 있는 해임을 유념하면서 “가능한 한 조기에 위안부 문제 타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12월 28일의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 발표는 ‘연내 타결’이라는 양국 정상의 합의를 실천함으로써 경색된 한·일 관계의 물꼬를 트려는 시도였다. 이번 합의는 지난해 12월 24일 아베 총리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에게 한국에 가서 협상을 마무리하고 오라고 전격 지시함으로써 급진전됐다. 위안부 문제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일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지도자들의 공감대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외상이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에 들어가기 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한·일 관계 정상화 바라는 공감대 작동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시간적 제약이 협상을 서두르는 또 다른 요인이 됐다. 2012년 8월 당시 80분이 살아 계셨던 위안부 피해자는 2015년 12월 현재 46분이 생존해 3년 반도 안 되는 기간에 34분이나 돌아가셨다. 이분들의 평균 나이는 89세다. 2015년에만 9분이 돌아가셔서 위안부 문제 해결은 촌각을 다투는 시간과의 싸움이 됐다. 더 이상 미룬다면 남아 계신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존기간 중에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위안부 협상을 서두른 가장 큰 이유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압력에 떠밀려 한·일 양국 지도자가 협상에 임했다는 ‘외부 압력설’을 제기한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미국의 압력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협상 결과를 내놓았다는 시각은 침소봉대된 것이다. 미국은 위안부 문제와 같은 정치외교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양자 간 이슈에 직접적인 개입을 줄곧 회피해 왔으며, 협상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양국 관계가 개선되는 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전개에 유리한 만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한·일 양국이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 줄 것을 종용하고 대화를 촉진한 것은 사실이다. 협상의 내용과 과정의 전개, 결과는 한·일 양국 지도자들의 책임이었다.



‘미국 압력에 의한 합의’ 주장은 침소봉대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협상의 핵심적 합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핵심 내용은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의 관여’를 명백히 하고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군의 관여’를 명백히 하는 동시에 책임의 주체가 ‘일본 정부’임을 명확히 했다.



둘째, 아베 총리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 것이다. 이는 일본 정부의 대표 자격으로 사죄와 반성을 한다는 것으로 ‘공식 사죄’에 해당한다.



셋째,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관 거출한다는 점이다. 아시아여성기금 운용 당시 민간 기금에 정부 예산을 보태 일본 정부 책임을 ‘물타기’해 실패한 예를 참고해 일본 정부 예산만으로 10억 엔(약 97억원)을 출연하기로 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취임 전부터 군의 관여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을 계속 부정해 왔고, 역대 일본 정부들은 책임의 주체를 모호하게 남겨 뒀으며, 결과적으로 인도적 책임만을 인정하면서 위로금만을 주려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실질적으로 진전된 결과를 내놓은 것은 틀림없다.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사죄와 반성을 하고, 일본 정부의 예산만으로 지원 조치를 함으로써 ‘법적 책임’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 법적 책임을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현실적 한계 내에서 최대치에 접근한 협상을 했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과장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일본은 협상의 핵심적 내용에 대해 한국에 양보하면서도 자신들의 외교에 부담이 되는 이슈들을 집요하게 관철시켰다.



일본은 이번 협상으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했다. 일본 측은 자국 내 우익들이 한국은 늘 ‘골포스트를 옮긴다’고 비판하는 것을 잠재우기 위해 이번 협상이 최종적이고 더 이상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 대한 불신의 산물이었다. 협상 결과를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 실행이 필수불가결하다. 만약 일본이 표명한 조치들에 대해 불만과 반대의 소리를 높이는 일본 정치세력이 있다면 약속된 조치를 착실히 이행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또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이행한다는 전제 아래 일본 정부와 함께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호’ 비난과 비판을 자제할 것도 약속했다. 비난 자제는 ‘상호주의’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일방적으로 한국만이 족쇄에 걸렸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관련 단체와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일본 언론의 일부에서는 소녀상 이전을 확약했다거나 소녀상 이전이 10억 엔 거출의 전제조건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들이 나돌고 있으나 이는 낭설에 불과하다. 위안부 분들에 대한 조치가 원만하게 진행될 경우 한국 정부도 소녀상 이전이 가능한지를 관련 단체와 협의해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지 이전을 확약한 것은 아니다.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뜨거운 감자다. 여론도 갈려 있고 정치권도 갈린다. 반일감정이 팽배한 한국에서도 혐한감정이 확산된 일본에서도 정치적 공격 재료로 삼기 쉬운 이슈다. 그래서 쉽게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다. 일본 내에서의 비판은 주로 핵심 내용에 대한 것이고, 한국 내에서의 비판은 관련 조치들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서로가 얻은 것은 당연시하고, 상대에게 건네준 부분만 비판하는 자기중심성이 엿보인다.



“골포스트를 움직인다”는 비판 빌미 안 줘야협상 결과가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 간의 치열한 협상 결과를 뒤집자는 논리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재협상을 하자고 하면 ‘약속한 뒤 늘 골포스트를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일본 우익들에게 비판의 빌미만 제공할 뿐이다. 협상 무효를 주장하는 이들이 새로운 협상에 나선다고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전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요원해진다.



앞으로 위안부 협상을 둘러싼 논란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여당 대표자들이 보다 큰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 협상이 현 상황에서 최선이었다면 인내심을 갖고 국민에게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위안부들에게 감성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진심 어린 언행을 보여 따뜻하게 끌어안아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용기와 투쟁이 없었다면 일본과의 협상도 물거품이었을 것임을 인정하고 현 상황에서 이것이 최선의 협상 결과였음을 겸허한 마음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한국에 설립되는 재단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위안부 분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물론 가족과 관련 단체들의 활동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지원단체들이 장차 국제사회에서 전시 여성 피해자들의 보호 활동에 적극 나설 수 있는 명분과 물적 기반을 제공해 국제 비정부기구(NGO)로서 활동을 확보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야당이 주장하는 국민 모금도 국제 인권 보편화를 위한 재원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일본이 이번 협상에서 약속한 사항들을 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종용하면서도 일본 일부 세력의 일탈적인 언행에 대해서는 금도 있는 비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애정 있는 비판은 광기 어린 비난보다 훨씬 강하다.



무엇보다도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위안부 문제를 이제는 넘어서야 할 때이며 이번 협상은 이를 위한 단초를 제공했고, 한·일이 협력할 때 얻을 수 있는 상호 이익이 크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 공유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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