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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영입 거론 자체가 불쾌” … 박승 “정치 안 한다”

중앙선데이 2016.01.03 01:15 460호 11면 지면보기

지난해 12월 24일 선거구 획정을 위해 국회의장실에서 만난 19대 국회 주역들. 그러나 이들은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해 1일 0시를 기해 국회의원 선거구가 사라지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했다. [중앙포토]



2016년 새해가 밝았지만 정치권에는 2015년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해를 넘긴 선거구 획정은 언제 통과될지 오리무중이고, 쟁점 법안 처리를 둘러싼 갈등까지 얽히며 국회의 기능은 마비됐다. ‘최악의 국회’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던 19대 국회에선 이제 “정쟁의 정치구도를 끊어 내는 게 19대 국회에선 어렵게 됐다. 20대 국회에서 정치개혁의 임무를 완수해 달라”(정의화 국회의장)는 ‘항복 선언’까지 나왔다.?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20대 총선을 겨냥한 여야 각 당의 신인 수혈작업은 인물난 때문에 여의치 않다고 한다.


공천 경쟁 뜨거운데 새 피 수혈 안 되는 정치권

자칫 19대 국회를 최악으로 내몰았던 이들이 다시 20대 국회를 장악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심을 등졌던 ‘그들만의 리그’가 20대에도 되풀이될지 모른다.



 



#1. “젊은 층이나 중도층이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지 않으면 수도권 선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씨 같은 분처럼 젊은 층이 열광할 수 있는 인물을 영입할 필요가 있다.”



 지난주 초 새누리당 내 총선 기획·홍보 관련 당직자들이 모인 회의석상에서 한 참석자가 이렇게 말했다. ‘영입 무풍지대’로 불릴 만큼 정치 신인 수혈이 전무하다시피 한 새누리당 내부의 위기감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이 자리에서 거론된 이가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58)씨다. 새누리당 내에는 수년 전부터 한씨를 영입 대상으로 거론해 온 이가 꽤 있다. 하지만 한씨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아직 새누리당에서 전화 한 번 받은 적이 없다”며 입을 뗀 그는 “내가 지금 바깥에서 구호활동을 열심히 하는 게 낫겠느냐, 아니면 정치를 하는 게 낫겠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한씨는 “지금 제 일이 너무 좋다. 그 일에 의지를 갖고 시간과 에너지, 열정을 쏟고 있는데 정치 같은 곳에 휩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어느 분야에서 헌신하는 사람이 정치인이 돼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난센스다. 정치권에서 이름이 거론되는 것조차 싫다”고 말했다.



 #2. “정치할 기회는 많았지만 한 번도 관여를 안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전화기를 통해 전해 오는 박승(80) 전 한국은행 총재의 입장도 단호했다. 문재인 대표는 호남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에 호남 출신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영입하려 한다. 박 전 총재는 거론되는 유력 후보들 중 한 사람이다. 박 전 총재는 그러나 중앙SUNDAY에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그런 책임을 담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정치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잘 이뤄졌다면 참여할 수 있었다는 의미인가’라고 묻자 그는 “그런 의미도 있다”고 했고, ‘지금의 정치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기 때문이냐’는 질문에도 “맞다”고 답했다. 그는 “여당은 너무 보수 쪽으로 흘러 기득권 계층의 보호에만 급급하고 야당은 경제 성장이나 사회질서 안정에는 소홀히 하는 듯한 모습이 보여 양쪽 모두 아쉽다”고 비판했다.



“괜찮은 사람은 너무 튕긴다” 하소연 안철수 의원이 신당의 깃발을 들어 올리며 20대 총선전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특히 둘로 쪼개진 야권에선 인재 영입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신당 출범을 앞둔 안 의원은 사무실에 상주하며 인재 영입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안 의원을 따르는 현역 의원들의 탈당이 호남을 넘어 수도권까지 확산되자 더불어민주당 문 대표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영입으로 맞불을 놨다. 하지만 표 전 교수에 대해서도 “문재인 표 영입 1호로는 감동이 없다”는 목소리가 제기되는 등 여야 각 당의 신인 영입작업엔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당 입장에선 구미가 안 당기고 괜찮은 사람은 너무 튕긴다”는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총무본부장의 하소연처럼 “사람을 영입하려 해도 너무 사람이 없다”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특히 한비야씨나 박승 전 총재가 정치 참여에 대한 거부감을 토로한 것처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 역시 각 당의 신인 수혈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치인이나 국회의원=명예로운 일’이라는 등식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30대 인재들 “내 성과 망칠까 걱정” 가장 마음이 급한 쪽은 안철수 의원 측이다. 이미 현역 의원이 많은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과 달리 총선에 출마시킬 훌륭한 인재를 대규모로 영입하는 게 발등의 불이기 때문이다. 안 의원은 신당 창당 방침을 밝히며 “우리 사회의 허리인 30대와 40대가 정치의 소비자가 아니라 이제 정치의 생산자이자 주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30대와 40대 전문가 그룹을 대거 영입해 기존 정당과 차별화하는 엔진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힌 셈이다. 하지만 그의 포부도 ‘인물난’이라는 현실의 벽을 피해 가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안 의원 측에선 “창당준비위원장조차 정해지지 않았고 후보 공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언하긴 이르지만 30~40대가 정치권에 느끼는 실망감이 워낙 커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신당에 오려 할지 걱정”(이태규 신당창당실무단장)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30대와 40대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치권 진출을 목표로 삼고 경력을 쌓다가도 결국 정치에 환멸을 느껴 “차라리 돈을 벌겠다”고 떠나는 이가 상당수다. 미국 최고의 경영대학원(MBA) 출신으로 정부부처의 고위직까지 지냈던 이모(46)씨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대선후보 경선전 때 이명박(MB) 후보 캠프의 공약 개발작업에 참여했다. 이후 MB 정부 내내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정치지망생이었지만 그의 다음 행선지는 정치권이 아닌 대기업이었다. 이씨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정치권에서 일하다 보니 왜 정치인들이 민심과 동떨어진 행동과 말을 하는지, 표에만 신경 쓸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정치는 내가 할 일이 아니다’는 게 내가 얻은 결론이었다”고 토로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청년 인재 발굴에 한창인 이동학 전 혁신위원도 “전도가 유망한 30대 전문가들에게 총선 출마와 입당을 설득하고 있지만 좀처럼 정치권에 발을 담그려 하지 않는다”며 “다른 분야에서 이룬 성과가 정치권 참여로 날아갈까, 또 ‘정치하려고 지금까지 열심히 했구나’라는 비아냥을 들을까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적과 동지로만 구분되는 지금의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주변 사람들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는 격이 된다”며 “열심히 살아왔던 과거의 삶이 한순간에 무시당하거나 적대시될 수 있기 때문에 정치권이 눈독을 들이는 인재들은 정치 참여를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과거 안 의원도 “많은 분이 제게 ‘정치에 들어가면 망가진다, 흙탕물을 뒤집어쓴다’고 정치 참여를 말렸다”고 말했다.  
전문가 줄고, 정치권·시민단체 출신만 늘어 정치권에선 “총선이 거듭될수록 국회의원과 국회의 수준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종종 제기된다. 특히 여야 공히 ‘잘된 공천의 전범(典範)’으로 꼽는 1996년 15대 총선 때와 비교하는 이가 많다. 당시에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공천의 키를 쥐고 있었다. 현 여권에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비롯, 김기춘·김무성·김문수·맹형규·안상수·원유철·이완구·이재오·정의화·홍준표·황우여 등이, 야권에선 김근태·김한길·신기남·정동영·정세균·추미애·천정배 등이 처음 발탁돼 국회에 진출했다.(여야 모두 가나다순) 당시엔 정치 신인들이었지만 이후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거물들이 됐다.



 당시 YS를 도와 인재 발굴을 주도했던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DJ나 YS에게는 사람을 데려온 뒤 크게 활용할 수 있는 정치적인 힘이 있었기에 과감한 영입이 가능했다”며 “일단 정치에 입문하면 DJ나 YS의 덕을 볼 수 있으니 움직인 사람이 많았다. 그것이 바로 비전이고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MB 정부 청와대에서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다양한 직업군에서 천하의 인재를 끌어모아야 정치가 살고 국민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신념을 DJ와 YS는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과감한 공천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반면 19대 국회에 대해선 ‘자기 진영 사람들에 대한 공천 몰아주기’ ‘국회의원의 면면으로 볼 때 역대 최악의 공천’이라는 혹평이 끊이지 않는다. 15대 총선과 19대 총선 첫 당선자들을 출신 직업별로 비교하면 정치권의 인재 영입 루트 변화를 알 수 있다. <그래픽 참조>



 중앙SUNDAY가 분석한 결과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당료 등 정치권 내부 출신(30명→54명)과 노동·사회·시민단체 출신(13명→20명)의 비중은 크게 늘었지만 관료나 법조계, 특히 경제계 출신 인사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현재 각 당 대표들은 인재를 영입할 경우에도 특정 지역구 공천을 보장할 수 없다”며 “자기 분야에서 높은 신망과 인지도를 쌓은 정치 신인들로선 ‘경선 참여’라는 모험을 해야 하니 출마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총선을 노크하는 이들은 오랫동안 정치판에서 뒹굴며 출마의 문을 두드려 온 정치권 내부 인사들이 다수를 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새누리당에 대해선 “겉으론 ‘널리 인재를 구하겠다’면서도 실질적으론 인재 영입의 문을 사실상 걸어 잠가 놓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새누리당의 인재영입위원회는 권오을 전 위원장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지난해 12월 1일 직을 내려놓은 이후 한 달 넘게 공석이며 관련 작업은 올스톱됐다. 이와 관련, 당내에선 “현역 의원이 많이 당선되면 비박계 우위의 당내 권력지형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내심 이를 바라는 김무성 대표의 의향 때문에 인재 영입작업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불만이 친박계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철재·추인영 기자?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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