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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대호' 대역 곽진석…한국의 앤디 서키스처럼

중앙일보 2016.01.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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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의 엔드 크레디트엔 ‘범 곽진석’이란 정체 모를 역할명이 나온다. 영화엔 출연하지 않지만 늘 현장을 지켰던 호랑이 대역의 곽진석(34)이다. 박민정PD는 “대호는 인물과 교감하는, 감정을 가진 생명체이기 때문에 단순히 인형만 놓고 촬영하는 것은 우리 영화와 맞지 않았다. 배우들의 감정을 끌어낼 모션 액터가 필요했고, 우리는 첫 번째로 곽진석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서울 액션스쿨 스턴트맨 출신인 그는 탄탄한 체력은 물론 몸으로 드라마를 만드는데 능해 대호를 맡기에 최적의 배우였다.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2008, 정병길 감독)에 출연해 주목받은 그는 수많은 영화에 무술팀과 단역 배우로 출연하며 경력을 쌓았다. 엄밀히 말하면 '대호'에서 곽진석의 역할은 모션 액터는 아니다. 마커를 온몸에 달고 움직임을 데이터화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CG작업은 그의 몸을 지우고 호랑이를 얹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곽진석의 목소리로 촬영 뒷이야기를 들었다.

“‘대호’의 주인공이야. 그런데 얼굴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아. 괜찮겠니?” 어느 날, 평소 잘 알던 박민정PD가 조심스럽게 묻더라고요. 저는 무조건 ‘콜’이었어요. 이미 포수대 중 한 명으로 캐스팅돼 있었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조건 대호였어요. 제가 상업 영화의 주인공을 해보려면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잖아요. 대호를 맡으면 주인공의 범주 안에서 연기해 볼 수 있겠구나. 한 영화의 처음부터 끝을 경험할 수 있겠구나. 최민식 선배님과 연기할 수 있는데 얼굴이 안 나오는 게 대수겠어요.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제작진의 배려로 포수대 역할까지 1인 2역을 할 수 있었어요.

출연이 결정되고 나서 일단 뒷산을 뛰기 시작했어요. 4족 보행 동물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머리가 아팠거든요. 온라인 게임 캐릭터를 모션 액터로 연기한 경험은 많았어요. 용ㆍ좀비ㆍ로봇ㆍ여성 캐릭터 등 안 해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호랑이는 처음이더군요. 결국 4족 보행은 포기하고 무릎을 굽혀 호랑이 키 높이에 맞추기로 했어요. 고양이과 동물들이 앞발을 주로 사용해서 손의 움직임도 연구했죠. 장소 헌팅을 쫓아다니면서 제가 뛰어다닐 현장을 살펴봤어요. 그리고 틈틈히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의상을 찾았죠. 타이즈만 입자니 추울 것 같아서 위 아래 같은 파란색의 보드 복을 골랐어요. 체력 단련도 열심히 했어요. 현장에서 절대 지치면 안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제 역할은 현장 스태프에게 대호의 존재를 믿게 만드는 거였으니까요.

대호는 고독한 동물이예요. 어미, 처, 새끼를 잃었잖아요. 산에서 제일 강한 자로서의 고독도 있죠. 대호에 몰입하려고 현장에서 거의 말 없이 지냈어요. 차림새도 이상한데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면 스태프들이 제 존재를 안 믿을 것 같더라고요. 리허설할 때는 ‘으르렁’ 소리도 냈어요. 포수들에게 대호의 위압감을 체감토록 해주고 싶었거든요. 사실 액션보다는 감정 연기가 힘들었어요. 동굴 속에서 죽은 새끼를 핥고 나서 밖으로 나와 포효하는 장면이 기억나네요. 호랑이 혀를 실리콘 주걱으로 대신했는데 순간적으로 몰입은 했지만 스태프들이 어떻게 봤을지 반신반의했든요. 감정이 깨질까봐 모니터도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모개 촬영감독님이 “진석아, 너 진짜 같더라. 연기 정말 좋더라”라고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어요.

저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골룸을 연기했던 앤디 서키스처럼 모션 액터로서 전문 영역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앞으로 한국 영화도 장르가 다양해지면 더 많은 모션 액터가 필요할테니까요. 일단은 다시 단역 배우의 자리로 돌아가야겠죠. 다음 역할은 ‘아수라’(김성수 감독)에서 황정민 선배의 수행원 역할이에요. 저는 욕심을 경계하는 편이에요. 자기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면 언제든 기회는 올 거라고 생각해요.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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