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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보는 한국] 크리스마스 즐겁게 잘 보내셨습니까

중앙일보 2015.12.31 01:26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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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즈대 명예 선임연구원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 다음으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비율이 높은 나라다. 개신교 신자 비율은 최고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한다. 크리스마스의 뿌리는 그리스도교가 탄생하기 전의 이교도 풍습이다. 초대 교회는 이교도들의 동지(冬至)를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만들었다.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한국에서건 영국에서건 우리는 이때부터 깊은 겨울을 넘기며 봄을 기다린다.
 

종교적으로 민감해진 미국선
‘메리 크리스마스’가 금기어
부끄러운 훼불 사건에도 불구
한국은 종교 간 평화의 모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뿐 아니라 그 다음날인 복싱데이(Boxing Day), 정확하게는 성 스테파노 축일도 공휴일이다. 새해 첫날도 휴일이기 때문에 아예 크리스마스부터 1월 1일까지 쉬는 회사도 많다.

 크리스마스는 엄청나게 큰 상업 이벤트가 됐다. 한 번은 일본 도쿄의 대형 상점에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엉덩이를 흔드는 것을 봤다. 세계인들이 크리스마스의 여러 상징들을 공유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안녕하지 않다. 우리는 민감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일부 미국인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면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어떻게 감히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지?’ ‘내게 자기 신앙을 강요하는 건가’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근래에 미국인들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서로 ‘연말연시 즐겁게 보내세요(Happy holidays!)’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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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측면에서 슬프고도 어리석은 일이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은 남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당연히 미국 헌법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 하지만 세속화 때문에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믿었던여러 나라에서 ‘그리스도교 지우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나친 일이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것은 강요가 아니라 나눔이다. 유대교, 이슬람, 혹은 힌두교를 믿는 친구들이 내게 즐거운 ‘하누카’ ‘이드 알 피트르’ ‘디왈리’를 기원하면 나는 참 기쁘다(부처님오신날의 기쁨 또한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다. 슬프게도 이곳 영국에는 불교 신자가 극소수다). 내 친구들은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을 나와 함께 나누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선의에 감사하며 나 또한 그들과 기쁨을 나누려고 노력한다.

 신앙의 다양성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다. 또 좋은 일이다. 구원이나 지혜에 도달하는 올바른 길이 단 하나라는 생각은 불합리하다. 마음을 겸허하게 하면 우리는 서로 배울 게 많다.

 모든 사람이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자유주의와 관용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소위 이슬람국가(IS)다. 도대체 신앙에 따라 행동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신(神)이 살인하고, 고문하고, 남을 노예로 만들고, 강간하라고 명령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이 사악한 디스토피아가 전 세계에서 추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 독버섯 같은 믿음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뭘까. 정말 터무니없다.

 무기와 자금이 풍부한 IS는 심각한 위협이지만 IS 말고도 문제가 많다. 일종의 암울한 변증법 앞에서 우리는 무력감을 느낀다. 행동은 반작용을 부른다. 미국에서 모든 무슬림을 추방할 기세인 도널드 트럼프가 요란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어떻게 이 어릿광대가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선두주자일까.

 대부분의 종교는 평화와 사랑을 가르친다. 하지만 종교가 증오를 전파하고 갈등을 배양한다는 사실은 비극적 패러독스다. IS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진짜 이슬람을 믿는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무슬림을 모욕하는 주장이다. 불행히도 이런 파시스트적 성향은 다른 종교에서도 부상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인도, 그리고 불교를 믿는 미얀마까지 맹목적인 국수주의자들이 증오를 전파하며 소수 종교를 핍박하고 있다.

 이런 암울한 세계에서 한국은 평온한 오아시스다. 한국은 희망의 횃불이다. 모두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한국에는 아주 많은 종교가 있지만 대체로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가톨릭이 처음 들어왔을 때 신자들은 끔찍한 박해를 받았다. 유교적 질서의 붕괴를 조선 정부가 우려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불교 신자들이 장로교 신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기도 했다. 또 일부 극소수 개신교 극단주의자들은 사찰에 침입해 훼불을 일삼고 있다. 그들은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례는 예외적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의 종교적인 관용은 박수 받을 만하다.

 종교가 있건 없건 독자 여러분이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셨기를 바란다. 또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한다. 땅에 평화가 오게 하는 것, 모두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신앙이 전달하는 메시지다. 하지만 이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슬프게도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2015년은 평화나 호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2016년은 다르게 되도록 우리 모두 더 노력하고 더 희망하자.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즈대 명예 선임연구원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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