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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0권, 밥 한 덩이의 희망가… 노숙인 11인의 소지품

중앙일보 2015.12.30 19:18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 사이로 때 묻고 낡은 배낭을 메고 광장 한켠을 떠도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선물을 받지도 주지도 못하는, 활기찬 크리스마스 이브와는 동떨어진 분위기의 노숙인들이었다. 

서울시 내 노숙인 보호시설에 있는 인원은 3327명이다. 이들 외에 거리 노숙인만 371명이다.

노숙인들의 낡은 배낭속엔 어떤 물건이 들어 있을까. 노숙인 11명의 동의를 얻어 각자의 가방안을 들여다봤다.  2016년 새해의 희망도 물었다.


◇ 노숙인 박인수(68)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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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노숙 중이다.

그 전에는 야채와 과일 가게를 했다. 카세트 테이프 장사도 했다.
옆집이 시끄러워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폭력배의 집이었다. 그들이 내 일상생활을 망쳤고, 그때부터 노숙을 시작했다.

가진 짐 가운데 가장 소중한 건 책. 그 중에서도 성경책이다. 책을 좋아해서 한 권씩 모았다. 종묘 앞 길거리에서 1000~2000원 하는 책들을 사모았다.

2016년에는 일을 하고 싶다. 부지런히 일해서 여기 있는 노숙자들을 돕고 싶다.



◇ 노숙인 박병연(55)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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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째 노숙 중이다.

이전에는 구두 만드는 일을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갈 곳이 없어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여기 있으면 혼자라도 마음이 편해서 좋다.

가진 짐 가운데 특별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없다.

2016년엔 일을 하고 싶다. 구두 만드는 일을 다시 하고 싶다.



◇ 노숙인 서용호(59)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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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노숙인이다.

그 전에는 일용직 노동을 전전했다.

(가장 소중한 짐은?) …



◇ 노숙인 박봉근(66)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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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사업에 실패한 뒤 길거리로 나왔다.

가진 것 가운데 제일 소중한 건 양말과 속옷이다.



◇ 노숙인 김용길(62)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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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째 노숙 생활 중이다.

전에는 일용직 노동을 했다.

(가장 소중한 짐을 묻는 말에 그는 눈물을 흘릴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 노숙인 엄근섭(82)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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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일용직 노동을 하며 돈을 번다.

가장 소중한 물건은 안전화와 목장갑이다. 이것마저 없으면 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나이가 많다고 공사장에서 잘 쓰려고 하질 않는다.

돈을 모아서 조그만 단칸방이라도 얻고 싶다. 아직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 노숙인 김동규(61)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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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째 노숙 생활 중이다.

그 전에는 지하철을 돌며 장사를 했다.

짐 중에서는 침낭이 가장 소중하다. 이게 없으면 겨울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다.



◇ 노숙인 이상화(52)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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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은 14년째 하고 있다.

대를 이어  내려오던 가업을 물려받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약과 내복이 가장 소중하다. 대부분의 노숙자들이 통풍을 앓고 있다. 약은 필수다.



◇ 노숙인 지경학(44)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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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길거리 생활 중이다.

그 전에는 의류업을 했다.

그래서인지 옷이 가장 소중하다. 내가 예전에는 옷을 팔았는데 지금은 이 옷 하나만 가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2016년. 사업 재기를 노려보고 싶다.



◇ 노숙인 박진언(65)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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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노숙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길거리에서 생활용품을 팔기도 하고 일용직 노동도 했다.

가장 소중한 짐은 침낭이다. 겨울에는 춥기 때문에 잠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침낭은 봉사단체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나눠줬다.

2016년이라고 딱히 다를 게 있을까.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할지 모르겠지만 안정적인 주거지,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 노숙인 정경인(59)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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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을 한 지는 30년 째다.

30년 전인 서른 살 무렵,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노숙을 시작했다. 그 때 정신을 차렸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짐이 쓰레기 뿐인데?)
겨울에 노숙하려면 종이 쓰레기를 모아 둬야 한다. 잘 때 안거나 밑에 깔고 자면 그나마 추위를 덜 탈 수 있다.

손에 선물을 들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저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해서 저렇게 다니겠지… 그런 생각에.



박병현 기자, 강지민ㆍ김지아 인턴기자 park.b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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