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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굿바이 로맨스'

중앙일보 2015.12.3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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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면 이런 질문을 간혹 받곤 한다. 좀 색다른 크리스마스 영화를 추천해 줄 수 있을까요? 고민해 보지만 역시나 구관이 명관이다. 아이들과 함께 보기엔 ‘나홀로 집에’(1990,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보다 더 재밌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있을까 싶고, 어른이 보기엔 ‘러브 액츄얼리’(2003, 리처드 커티스 감독)를 능가할 작품이 없다. 적어도 아직까진 말이다.

연말연시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장르 중 하나가 바로 로맨스다. 옆구리가 시리다라는 시쳇말에 자동 인형처럼 고개가 끄덕여진다. 겨울엔 정말이지 누군가의 체온이 고맙고, 반갑고, 그립다. 각종 행사에 인사말과 덕담이 오가는 이때, 어쩐지 세상이 사랑에 빠져라, 빠져라 주문을 외워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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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하면 추운 겨울이 생각나는 이유도 이 때문일까. 가령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나갔던 두 남녀가 우연히 하나의 선물을 고르면서 시작되는 ‘세렌디피티’(2001, 피터 첼솜 감독)처럼 개연성이 희박한 낭만이 어디선가 마구 발생할 것 같은 기대감 말이다. 로맨스야말로 개연성이 가장 희박한 서사가 아닐까. 말하자면 자기 관리에 쏟아 부을 돈도, 시간도, 체력도 부족한 신데렐라가 마술적 그루밍을 거쳐 왕자를 만나고, 급기야 아내로 간택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태연히 일어나니 말이다.

현실성으로 따져보자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온수 시설도 미비했을 중세에 하녀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던 신데렐라의 손은 주부 습진과 동상으로 엉망이었을 게 뻔하다. 피부와 머릿결, 심지어 영양 상태는 어땠을까. 만약 아날학파식의 사실성으로 분석하고 아리스토텔레스식의 개연성으로 분석한다면 남아날 동화는 없다. 어차피 그건 사랑이라는 낭만에 기대어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을 증폭한 환상 아니던가.

사랑 이야기에는 관대함이 필요하다.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 말이다. ‘세렌디피티’에서 우연히 마주친 바로 그 여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책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결혼 직전에 발견하는 일과 같은 기적. 비록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쪼개진 못해도 사랑이라는 기적 안에서 그 정도의 우연은 가능한 것 아닐까.

그런데 이 땅에선 로맨스의 주요 수요자층인 20~30대에게 관대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N포 세대’라는 호명 아래 연애는 포기해야 할 사치 품목 1위로 등재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말도 안 되는 낭만적 사랑을 그리는 로맨스는 자꾸 현실의 논리에 밀려날 수밖에 없다. 궁여지책으로 로맨스가 현실을 탐구한다. 그럴수록 재미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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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하룻밤’(12월 3일 개봉, 하기호 감독)은 올해 겨울 개봉한, 거의 유일한 한국 로맨스영화다. 제목은 ‘극적’이지만 주인공들은 내내 전혀 극적이지 않은 현실에 시달린다. 임시 기간제 교사에게 연애는 사치라고 외치는 남자, 나이가 곧 재산이라며 중매 시장에 나서는 여자에게 로맨스는 낭비다. 안다, 그게 현실이라는 것을. 하지만 ‘귀여운 여인’(1990, 게리 마샬 감독)처럼 거리의 여자가 백만장자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현실적이라 좋아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 현실성 가운데서 낭만은 사라지고 뻔한 거짓말의 위안도 증발한다. 사랑의 환상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낭만적 기대도 함께 휘발된다. 오히려 영화야말로 현실의 알리바이 아니었던가. 환상적 복수는 허용되지만 낭만적 로맨스는 허구에서도 허락되지 않는 세상. 지독히도 현실적인 연애가 너무도 팍팍하게 느껴지는 한겨울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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