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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얼굴없는 천사'…16년째 같은 장소에 뭉칫돈

중앙일보 2015.12.30 12:27
매년 성탄절 무렵 나타나는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올해 16년째다. 천사는 매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소에 뭉칫 돈을 놓고 갈 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30일 오전 9시50분 전주시 덕진구 노송동 주민센터에 전화가 걸려왔다. 40~50대로 추정되는 남성은 “가로등 숲에 박스가 있으니 가져 가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달려나간 직원들은 주민센터 옆 ‘천사 기부 쉼터’의 나무 밑에서 A4용지 박스를 발견했다. 상자 안에는 5만원 묶음(100장) 10개와 34만여 원이 든 돼지저금통이 들어 있었다.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써 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글씨가 적힌 용지도 함께 발견됐다.

주민센터 직원 조정순씨는 “해마다 이맘때쯤 나타나는 천사가 연말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어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도 꼭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며 “천사의 나눔 바이러스가 사회 전체로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12월 29일 주민센터 근처에 세워둔 승합차 뒤에 놓인 A4용지 박스에서 5030만여 원이 나왔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2000년 4월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주민센터에 58만4000원이 든 저금통을 놓고 가면서 시작됐다. 이후 매년 성탄절과 연말을 전후해 한 해도 빠짐없이 노송동 주민센터 앞 공중전화 부스나 화단 등에 거액의 성금을 놓고 갔다.

2009년에는 ‘어머니께서도 안 쓰시고 아끼시며 모은 돈이랍니다. 어머님의 유지를 받들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여졌으면 합니다’라는 쪽지와 함께 8026만원을 기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천사가 기부한 성금은 3억9800만원에 달한다. 성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소년·소녀 가장이나 홀로 사는 노인들을 돕는데 쓰이고 있다. 전주시는 주민센터 주변에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 사람입니다’라는 글귀를 새긴 기념비를 세웠다. 인근 도로에는 ‘얼굴 없는 천사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전주=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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