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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역 야간조명으로 망친 들깨 농사 보상해야"

중앙일보 2015.12.30 12:00
경기 김포시의 A씨는 들깨와 콩을 재배하고 있다. 그런데 2014년에 수확량이 예년보다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들깨는 85%, 콩은 19%나 수확량이 줄었다. A는 밭에서 짧게는 15m 거리인 철도역 야간조명 때문이라고 여겼다. 한국철도시설공단과 한국철도공사에 400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환경분쟁조정위, '빛공해 농작물 피해' 첫 인정
"소임이 기준 이내라도 가축 피해 배상하라" 결정도

A는 분쟁을 조정해달라고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중앙조정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중앙조정위는 "인공조명이 농작물 생육 및 수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인정된다. 한국철도시설공단 등은 A에게 77만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중앙조정위 임문수 국장은 "위원회에서 빛공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에 대해 배상을 결정한 첫 사례다. 앞으로 가로등 등 인공조명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김씨 사건은 중앙조정위가 올해 처리한 환경분쟁 사건 232건 중 하나다. 중앙조정위는 이 사건처럼 피해 원인이나 피해 부문이 새로운 사례 5건을 선정해 30일 언론에 소개했다.

이중엔 관상어가 공사장 소음·진동으로 피해를 입은 사례도 포함됐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관상어를 사육·판매하는 B씨는 "인근 지하철 공사장 발파작업에서 발생한 소음·진동 때문에 관상어가 폐사하고 상품가치가 하락했다"며 건설업체에 2억여 원의 피해배상을 요구했다. 중앙조정위는 "어류피해 인과관계 검토 수준보다 높은 수준의 소음이 59일간 지속돼 신청인이 발파공사로 피해를 입었을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B가 지하철공사 착공 이후에 관상어판매점을 개업한 점을 고려해 건설업체에겐 피해액의 50%인 2827만원을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양어장·낚시터의 어류가 아닌 관상어에 대해 소음·진동 피해를 중앙조정위가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매연이 방출되는 참숯공장
충남 예산에서 양봉장을 하는 C씨는 인근 참숯공장에서 나온 연기로 인한 피해에 대해 3565만원을 배상받을 수 있다는 결정을 받았다. 중앙조정위는 "참숯공장에 집진시설이 있긴 하나 꿀벌 피해 저감에 기여하지 못했고, 참숯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목초액과 분진이 꿀벌에 피해를 준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정했다. 공사장 소음·진동이 아니라 공장 연기로 인한 양봉장 피해를 인정 받은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특정대기유해물질'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인정한 사례도 올해 처음 나왔다.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D씨 등 9명은 인근 주물공장의 대기 오염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공장을 운영한 회사에 배상을 요구했다. 중앙조정위는 "해당 공장은 대기배출시설 설치신고를 하지 않아 김포시에 의해 고발됐고, 특정대기오염유해물질인 크롬이 검출돼 사업장 폐쇄명령이 내려졌음을 고려할 때 정신적 피해의 개연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정대기유해물질이란 사람이나 동식물이 저농도에서도 장기적으로 섭취하거나 노출됐을 때 건강이나 생육에 위해를 입을 수 있어 대기 배출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정부가 인정한 물질이다.

카드뮴·시안화수소·납·크롬 등 35종이 지정돼 있다. 소음 규제 기준치를 지켰더라도 실제 피해가 발생했다면 원인 제공자가 배상해야 한다는 결정도 나왔다.

애견훈련학교
E씨는 울산시 울주군에서 애견훈련학교를 운영 중이다. 그는 인근 복선전철 터널공사장에서 발생한 소음 때문에 애견이 죽거나 유산·사산하는 피해를 당했다. 공사업체에 1억3000여 만원 배상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사장과 애견훈력학교의 최단 거리는 465m였다. 공사로 인한 최대 소음도는 62dB로 가축피해 인과관계 검토기준(70dB)보다 낮았다. 하지만 중앙조정위는 "개의 청각은 사람의 16배로 소음·진동에 민감하며, 신청인이 제출한 동영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해의 개연성이 인정된다"며 공사업체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중앙조정위가 올해 처리한 232건을 피해 원인별로 살펴보면 소음·진동피해가 174건(84.8%)으로 가장 많았다. 일조는 12건(6%), 대기오염은 10건(5%) 등이었다. 중앙조정위 남광희 위원장은 “빛공해로 인한 피해배상이 올해 최초로 이뤄진 만큼 앞으로 사업자들은 빛공해 등 새로운 오염원에 대해 충분한 피해방지대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분쟁조정제도=환경분쟁 피해자가 원인 제공자에게서 적절한 배상을 받지 못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피해 배상액 1억원을 기준으로 1억원 이하는 지방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1억원을 넘으면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한다. 원인 제공자가 국가·지방자치단체이거나 피해 원인이 빛공해 등 생소한 분야인 경우에도 중앙조정위에서 신청을 받는다.

신청 수수료는 피해배상 요구액이 1억원인 경우 25만5000원이다. 조정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신청인(보통은 피해자)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피신청인(원인 제공자)은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60일 이내에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정 결과가 확정된다. 피신청인이 조정 결과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신청인은 조정 결과를 근거로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다.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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