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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할머니 분노부터 풀어드리고 실질적 지원해야

중앙일보 2015.12.30 03:34 종합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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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임성남 1차관과 조태열 2차관이 29일 오후 서울 연남동 정대협 쉼터와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을 각각 방문했다. 두 차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만나 한·일 외교장관의 위안부 협상 내용을 설명했다. 조 차관(오른쪽)이 면담에 앞서 할머니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광주=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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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수
사회부문 기자

지난 28일 오전 10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 합의를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앞두고 찾아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은 조용했다.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46명 중에서 10명이 거주하는 곳이다. 오후 1시쯤 나눔의집 사무국 직원이 할머니들이 생활하는 거실에서 외부인을 내보내고 출입문을 잠갔다. 이어 거실 밖으로 직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머니, 오늘은 기자들 많이 오니까 다른 말씀 하시면 절대로 안 돼요. 그냥 법적 배상과 공개 사과만 말씀하시면 됩니다”는 내용이었다.

[위안부 협상 타결 이후] 여론
합의문 발표 지켜본 피해자들
“공식사죄하고 배상할 일을 …”
정부 협상 결과에 큰 불만 표시
“차라리 중국 간다” “산 사람 지원”
할머니들의 목소리 새겨들어야


 처음엔 이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잠시 갸우뚱했다. 그러나 오후 1시쯤 기자가 직접 만난 유희남(87) 할머니는 “내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2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내 인생을 이렇게 망가뜨렸는데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할머니의 말씀 취지는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배상을 하라는 당당한 요구였다. 오후 3시30분 한·일 외교장관의 합의문이 TV로 발표될 때 거실에는 거동이 가능한 6명의 할머니만 나왔다. 합의 내용에 대한 소감을 묻는 현장 인터뷰에는 유희남·강일출(87)·이옥선(88·부산 출생) 할머니 등 3명이 응했다.

 맨 먼저 마이크를 잡은 유희남 할머니는 “(합의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정부에서 올해 말까지 해결해 준다며 고생했는데 정부에서 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때 옆에 있던 사무국 직원이 유 할머니께 “법적 배상이 아니라 인도적 차원의 공동기금이에요”라고 말하자 유 할머니는 갑자기 “우리가 그들(일본)로부터 의료 지원을 왜 받나, 신세 질 필요 없다. 우리 정부에서 다 해준다. 어떤 할머니도 기금 조성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옆에 있던 강일출 할머니는 “차라리 중국으로 가겠다. 중국에서는 집이라도 줬는데. 이게 뭐냐 ”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포항에서 본지 기자를 만난 박필근(88) 할머니도 “재단을 하든 뭘 하든 그걸로는 되는 게 없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9일 할머니들을 설득하기 위해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서울 마포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를,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은 나눔의집을 각각 방문했다. 나눔의집에서 김군자 할머니는 조 차관에게 “피해자는 우린데 어떻게 정부가 함부로 합의하느냐”고 항의했다. 이틀간 할머니들이 쏟아낸 솔직한 목소리를 정부는 충실히 수렴해야 한다. 차관으로 설득이 안 되면 윤병세 장관이, 장관으로도 안 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할머니들의 이해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할머니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글=임명수 사회부문 기자lim.myoungsoo@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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