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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에 선율 얹은 가곡 음반…“자꾸 듣다보면 20곡 메들리”

중앙일보 2015.12.30 02:48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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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음반을 낸 사람들. 앞줄 왼쪽부터 박성희·강기안씨, 작곡가 이종록씨, 뒷줄 왼쪽부터 시조시인 윤금초·유재영·이우걸·박기섭씨, 작곡가 오동일씨. [사진 한국시조시인협회]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지만 예전에 동네 대중목욕탕에는 뜨거운 탕 속에 몸을 담그고 시조창을 길게 늘여 뽑는 어르신들이 가끔 있었다. 시조가 과거 노래였음을 증거하는 흔적이다. 1930년대에는 시조가 가곡으로 탄생하기도 했다. 이은상의 시조를 가사 삼아 홍난파·김동진 등이 곡을 붙인 ‘성불사의 밤’ ‘금강에 살어리랏다’ ‘가고파’ 같은 명 가곡들이 이때 나왔다.

윤금초·이우걸 등 시조시인 4명
작곡·성악가에게 의뢰해 제작


 한동안 끊어진 시조와 노래의 직접 만남을 시도한 음반이 나왔다. 윤금초(74)·이우걸(69)·유재영(67)·박기섭(61), 네 시조시인이 의기투합해 제작한 가곡 CD ‘4인의 시가(詩歌) 20선’이다.

 네 명은 올초 주로 전·현직 음대교수들로 구성된 작곡가 모임인 ‘가곡동인’에 곡 제작을 의뢰했다. 각자 자신들의 시조집 두세 권씩을 건냈다. 그중 어떤 작품이라도 골라 가곡 가사로 삼도록 했다. 근 1년 간의 작업 끝에 최근 CD가 나왔다. 박씨의 시 ‘가인(歌人)’에 오동일(82) 전 강원대 음대 교수가 곡을 붙인 작품 등 모두 20곡을 담았다.

 28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의 한 일식집. 네 명의 시조시인과 오 교수, 같은 가곡동인 회원인 이종록(69) 전 전북대 음대 교수, 노래를 부른 네 명의 성악가 중 한 명인 메조소프라노 강기안(31)씨, 음반의 피아노 반주를 한 박성희(44)씨가 한자리에 모였다.

 오 교수가 “멋진 악상이 떠오를 때까지 시조집을 읽고 또 읽었다. 나중에는 외울 정도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반에 실린 서너 편의 시조를 실제로 막힘 없이 외워 보였다.

 박기섭 시인은 “과거 홍난파의 가곡만 생각하고 들어서인지 우리 음반이 처음엔 생경하게 들렸는데 자꾸 듣다 보니 20곡 전체가 메들리처럼 하나의 흐름이 느껴져 좋았다”고 덕담했다. 그러자 오 교수는 “2년 뒤에,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으면 한 장 더 내시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네 명 중 박기섭씨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박시교(68) 시인과 함께 1983년과 2012년 공동 시조집을 낸 적이 있다. 두 차례 모두 좀처럼 시조집을 내지 않는 문학과지성사 출판사에서다. 출판사에서부터 시조의 테두리를 벗어나려 했다는 얘기다. 이번엔 인접 장르, 음악과의 융합이다.

 이우걸 시인은 “시조집 말고 다른 방법으로 시조를 알리자는 취지다. 시조의 영향력을 확산하려는 몸부림으로 봐달라”고 했다. 유재영 시인은 “시조가 노래라는 고유 기능을 회복한 작업”이라고 의미 부여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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