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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현대판 연금술사’, 시장과 소통하라

중앙일보 2015.12.30 01:49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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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국제경제팀장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는 연간 여덟 차례 열린다. 이렇게 정해진 건 1981년부터다. 당시 미국은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시달렸다. 79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는 ‘인플레 파이터’였다. 바로 금리를 끌어올렸다. 이듬해에는 기준금리가 20%를 찍기도 했다.

금통위, 연간 여덟 차례 회의 횟수는 중요하지 않아
시장과 호흡하고 투명하게 소통하는 능력이 관건


 FOMC 회의가 열릴 때마다 시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만 해도 FOMC 회의 횟수는 뒤죽박죽이었다. 규정상 연 4회 이상 개최해야 하지만 많을 때는 19차례나 연 적도 있었다. 시장은 출렁이는데 언제 회의가 열릴지 모르는 혼란만 가중됐다. FOMC가 꺼낸 고육책이 회의의 정례화였다. 연 8회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분기에 두 차례 소집되는 FOMC 회의는 꽤 합리적이다. 주요 경제분석 기관은 매분기 초(1, 4, 7, 10월)에 경제 전망을 발표한다. 이 전망을 기준금리 결정 때 참고하면 나름 일관성 있는 통화정책을 유지할 수 있다. 매월 발표되는 생산·고용·물가 같은 변동성 큰 경제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통화정책을 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캐나다, 러시아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Fed 방식을 속속 따랐다. 내년부터는 일본과 영국(9월 이후)이 따를 예정이다. 한국은행도 현재 매월 여는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 회의를 2017년부터 연 8회로 줄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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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걸 연금술에 비유하기도 한다. 연금술은 납이나 구리 같은 금속으로 금이나 은을 만들려 했던 전근대적 과학기술이다.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잘 펴면 국민에게 부(富)를 안겨줄 수 있다는 걸 비유한 말이다.

 기준금리는 은행 간 하루짜리 초단기 자금 거래에 적용된다. 이게 단기·장기 시장금리 등으로 파급돼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주식을 사든, 대출을 받든 우선 고려해야 할 게 금리 동향이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이렇게 막중하기 때문에 시장과의 소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겠다는 신호를 보내다 갑자기 정반대로 가면 시장은 패닉에 빠진다. 금리 인하에 맞춰 투자를 해두었던 시장 참여자들은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정확한 정보를 주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앙은행 혼자 튀면 경제는 결딴날 수 있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은 올 초부터 금리 인상 신호를 보냈다. 실천은 12월에 했지만 시장은 옐런의 말과 행동이 따로 놀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Fed 이사 7명과 지역 연준 총재 12명은 틈날 때마다 인터뷰나 강연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FOMC 멤버 중 골수 매파(물가 안정 우선)인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준 총재는 올해 내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일관된 신호를 보냈다. 비둘기파(경제 성장 우선)를 대표하는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준 총재조차 9월 말에 “올해 중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둘기파도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신호였다.

 지난 16일 Fed가 7년간의 제로금리 시대를 접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자 시장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차분했다. 미리 충분히 소통한 결과다.

 한국의 FOMC인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7명이다. 한은 총재와 부총재가 당연직이고 나머지 다섯 명은 은행연합회, 상공회의소 등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들은 말이 없다. 오로지 금통위 의장인 한은 총재만 입을 연다. 시장이 의장의 입만 쳐다보는 이유다.

 그런데 의장이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2012년 7월 김중수 총재가 이끄는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평상시 김 총재의 발언은 동결 신호였다. 김 총재는 6월에 기준금리를 묶은 뒤 “토론 과정에서 금리를 올릴지, 내릴지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5월에도 그는 이 스탠스였다. 두 달 사이 경제지표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김 총재의 발언을 잘못 읽었는지, 아니면 김 총재가 신호를 잘못 주었는지 논란이 컸다. 한 증권사는 ‘양치기 소년의 결말’이라는 보고서를 내 한국은행을 거짓말쟁이로 묘사했다.

 한국은행 총재들은 재임 중 48회 정도 기준금리를 결정한다(4년 임기 기준). 이 중 시장과 소통이 부족해 엇박자를 낸 비율이 12.5~22.5%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총재의 말이 100% 정확할 수는 없다. 다른 금통위원의 발언으로 총재 입에서 헛나간 말을 메우면 된다. 금통위원들이 강연이나 인터뷰를 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입을 닫고 침묵을 지키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풍토는 잘못됐다

 금통위가 2017년부터 기준금리 결정 회의 횟수를 Fed처럼 줄인다고 하자 무소신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회의를 몇 번 할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시장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능력이다. 연금술사들은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금을 만들려는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과 기술이 화학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판 연금술사인 금통위원들이 입을 연다고 황금이 쏟아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쌓여야 통화정책의 투명성과 예측성이 높아지는 법이다.

글=김종윤 국제경제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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