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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낡은 관성에 도전하는 호남정치

중앙일보 2015.12.30 01:43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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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용
전남대 연구교수

선거는 정당의 관성에 힘을 가하는 주기적 계기다. 그 힘이 크게 작용하면 정당은 많이 변할 것이고, 작게 작용하면 별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많이 변한다고 선거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칙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호남민심은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으로 개명)의 낡고 무기력한 정당정치의 관성을 타파하려는 호남인들의 집단적 힘의 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 비록 야당에 국한된 것이지만 호남민심은 야당의 변화와 전환을 이끄는 힘의 원천이었다.
 

안철수 신당에 요동치는 호남민심
천정배 신당과 정의당 타격 입어
야권 분열에 대한 우려도 낮아져
호남 경쟁 전국으로 퍼지길 기대


 최근 호남민심이 심상치 않게 된 직접적 원인은 새정치연합이 제공했다. 하지만 안철수의 신당 창당도 한몫하고 있다.

 초기의 여론은 다분히 문재인 개인에 대한 비토가 강했다. 천정배 등의 신당 창당 선언이 있었지만 그들이 대안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호남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안철수의 신당 창당 선언으로 이제 호남인들에게 대안이 생겼다. 최근 호남 여론이 문재인에 대한 비토 수준을 넘어 새정치연합에 대한 비토로 점차 확산되는 이유다. 리얼미터가 지난 24일 발표한 정당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전주 대비 0.4%포인트 하락한 37.8%, 새정치연합은 3.8%포인트 하락한 21.9%, 안철수 신당은 3.2%포인트 상승한 19.5%, 정의당 6.1%, 천정배 신당 1.1%로 집계됐다. 호남 지역에 한정해 보면 새누리당은 11.9%, 새정치연합 31.7%, 안철수 신당 33.4%, 정의당 6.7%, 천정배 신당 2.6%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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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의 신당 창당으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정치세력은 정의당과 천정배 신당이다. 정의당의 경우 안철수 신당의 등장으로 제3당의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진보 통합 이후 정의당은 호남 지역에서 한때 11%의 지지도를 기록할 정도로 강세였는데 안철수 신당의 등장으로 상황이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정의당은 천정배 신당만큼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한때 새정치연합을 대체한다는 목표로 창당을 준비하던 천정배 신당은 안철수의 창당 선언과 함께 1%대의 정당지지도에 그치고 있고, 호남에서도 2%대 지지도에 머물고 있다. 그러자 천정배는 “안철수의 독자 신당 추진이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줄 수 있다”며 견제구를 날렸다. 그러나 천정배의 주장은 ‘이중 잣대’에 불과하거나 ‘천기누설’일 수 있다. 자신의 신당은 새누리당에 어부지리가 아니고 안철수 신당만 그렇다고 본다는 점에서 이중 잣대다. 자신의 신당은 호남권 내에서도 2%대의 낮은 지지도를 기록할 만큼 파괴력이 약하지만 안철수 신당은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줄 정도로 파괴적이라는 천기를 누설하고 말았다. 광주의 벽도 넘지 못한 천정배 신당의 앞날은 매우 암울해졌다.

 현재까지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에 대한 호남인들의 인식은 ‘무관’과 ‘우려’가 팽팽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 상황도 호남과 비슷한 것 같다. 그렇지만 안철수 신당은 전 연령대에서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호남 이외 지역에서도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는 최근 흐름을 감안한다면 일여다야 구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 즉 야권분열에 대한 우려 여론이 호남에서 위세를 부릴 가능성은 지금보다 낮아질 공산이 크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다야 구도는 필패라거나 통합하면 승리한다는 관념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다야 구도로 치러진 13대 총선과 15대 총선에서 야권은 승리했다. 특히 15대 총선은 민주당을 탈당한 김대중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함으로써 ‘1여 3야’ 구도로 치러졌지만 국민회의는 79석을 얻어 원내 제1 야당이 됐다. 급기야 이듬해인 1997년 정권교체까지 이뤄냈다.

 반면 지난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은 야권연대, 후보단일화로 통합을 이뤘지만 야권이 승리하지 못했다. 수차례 야당의 선거 패배가 가르쳐준 교훈은 경쟁구도의 단순화가 승리의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야권의 관건은 새누리당과 싸워 이길 실력과 확장성이지 경쟁구도가 아니다. 새정치연합이건 안철수 신당이건 호남에서 승리할 수 있는 관건도 비전과 실력이다. 정권교체의 비전을 제시하고, 혁신 경쟁을 통해 실력 있는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야 한다. 미래세대를 위한 희망의 사다리를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넓게 보면 선거 과정 자체가 경쟁력 강화의 한 과정일 수 있다. 모든 시계는 결국 대선을 향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20대 총선에서 호남정치는 모처럼 경쟁적 선거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쟁은 품질 향상의 원동력이다. 호남정치의 품질이 오늘날처럼 불량투성이가 된 것은 경쟁 부재의 낡은 관성 때문이다. 분열이냐 통합이냐의 근시안적인 시각을 넘어 경쟁을 통해 얼마나 야당의 실력을 강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생산적 경쟁은 야당의 낡은 관성을 타파하는 지름길이다. 그것이 호남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호남에서 시작된 야권발 경쟁의 소용돌이가 중앙을 향해 거세게 휘몰아친다면 20대 총선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치열한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이다. 무기력한 패배에 지친 호남의 민심이 이를 마다할 어떤 이유도 없다.

오승용 전남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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