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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한국 백화점은 왜 세일이 잦을까요

중앙일보 2015.12.30 01:28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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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Q 봄세일·가을세일·출장세일·블랙프라이데이·연말세일·신년세일…. 뉴스나 백화점 전단지를 보면 무슨 세일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미국 등 외국 백화점은 일년에 한 두번 ‘짧고 굵게’세일을 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백화점들이 유독 세일을 많이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계절 맞춰 재고품 처리 … 올해엔 180일 했죠


A 불과 5~6년 전만 해도 ‘기다렸다가 세일할 때 사야지!’라며 백화점 세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1년 중에 백화점 세일 기간이 두달 남짓 됐거든요. 하지만 요즘엔 백화점들이 말 그대로 ‘연중 세일’에 돌입한 것처럼 보입니다. 세일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져서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고 싶기는 커녕 피로감을 느낀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특히 올해는 정부가 앞장서 ‘코리아 그랜드세일’,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같은 세일 행사를 만들어 소비 진작에 나섰죠. 지난 5월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탓에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되자 정부가 내수 활성화 촉진에 나선겁니다.


외국은 여름·겨울 대규모 세일

 그럼 실제로 올해 백화점들이 얼마나 자주 세일을 했는 지 들여다볼까요? 국내 1위 백화점인 롯데백화점의 경우 신년·봄·여름·가을·겨울세일, 즉 정기 세일만 총 97일간 했습니다. 여기에 4월과 7월·10월·12월 총 4차례에 걸쳐 일산 킨텍스 등 대형 전시관에서 출장세일을 벌이고 11월엔 중국 관광객들을 잡기 위해 ‘중국 독신자의 날’인 광군절 기간에 ‘코리아 광군제’를 열었어요. 계절별 ‘해외 명품대전’과 개학·졸업·입학·바캉스·웨딩·명절·크리스마스 등 때마다 하는 이벤트성 세일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 사이 정부가 주도한 ‘코리아 그랜드세일’(8월14일~10월31일),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10월1~14일), ‘K-세일데이’(11월20일~12월15일) 등도 겹쳤구요. 결국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세일기간은 어떤 이름으로든 끊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년에 두번, 여름과 겨울에 ‘창고정리 염가판매’(클리어런스·Clearance) 개념으로 대규모 세일을 하는 외국 백화점과는 확실히 차이가 나는 부분이죠.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한국 백화점들은 세일이 잦을까요.

 우선 업계에선 세일과 할인이란 용어를 구분합니다. 세일은 백화점 정식 매장에서 시즌(봄~겨울) 중에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정상 판매가에서 몇% 싸게 판매하는 것을 뜻해요. 원칙적으론 세일 기간이 지나면 이전 가격으로 되돌아오는 거죠. 통상 국내 백화점들은 1월(신년)·4월(봄)·7월(여름)·10월(가을)·12월(겨울)에 정기세일을 합니다. 올해 정기세일 일수는 롯데백화점은 97일, 현대백화점은 90일, 신세계백화점은 79일을 기록했습니다.


1·4·7·10·12월엔 정기 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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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할인은 시즌이 끝날 때 내린 가격으로 계속 파는 개념입니다. 미국 등 외국의 세일이 바로 가격할인·인하의 개념입니다. 국내의 경우 가격할인, 즉 가격인하는 보통 세일보다 빨리 시작되죠. 예를 들어 겨울세일은 12월에 하는데 특정 브랜드 제품의 가격할인 행사(시즌오프)는 11월에 시작됩니다. 브랜드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조금 경쟁력이 떨어지는 브랜드의 경우 아무래도 정기세일보다 먼저 기선을 잡는 게 매출을 올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랍니다.

 백화점이 세일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의류나 잡화의 ‘재고처리’에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 외국보다 짧은 기간 내에 간절기 상품이 재고 많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 즉 업체 입장에선 재고를 빨리빨리 털어야 하기 때문에 세일이 필요한 거죠.

 외국보다 세일이 잦은 건 우리나라 백화점의 운영 구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메이시스·노드스트롬·블루밍데일즈 등 미국이나 유럽 백화점들은 백화점이 상품의 70~80%를 직접 사들여 재고로 가지고 있으면서 마진을 붙여 소비자에게 파는 형태입니다. 물건이 안 팔리면 재고 부담이 커지고, 무엇보다 백화점이 (자기 물건이니까) 직접 가격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연말 등에 80% 이상 과감하게 깎아주는 할인 처분이 가능하죠. 반면 우리나라는 백화점이 업체를 입점시켜 판매금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판매 수수료)로 챙기는 구조입니다. 시즌이 끝나고 남는 재고도 모두 ‘물건의 주인인’ 업체 부담이기 때문에 업체도 세일 등을 통해 소진할 필요가 커지는 거죠. 대신 백화점은 ‘모객(손님모으기)’을 책임집니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친절한 직원들, 멋드러진 전단지와 대형 광고, 각종 사은품 등을 준비해서 사람들이 백화점에 와서 입점 업체의 물건을 사도록 지원하는거죠. 일종의 역할 분담입니다. 업체들은 세일을 신상품 소개의 장으로도 활용하고 있어요. 봄 세일에 여름 신상품을 선보이고, 여름 세일에 가을 신상품을 공개하는 식입니다.


외국은 직매입, 한국은 입점 형식

 백화점이 업체에 세일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백화점은 계약을 맺고 업체를 입점시키는데, 이 계약서에 판매 수수료나 세일 정책 등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어요. 통상 업체들은 각종 세일철이 가까워지면 세일에 참여하겠다는 공문을 백화점 측에 보냅니다. 각 시기별로 이들 업체를 모아 세일을 하는거죠. 세일폭이나 할인율은 기본적으로 업체가 정합니다. 다만 올해처럼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 참여해야 할 세일행사가 많을 경우 백화점 측이 업체들이 내야하는 판매수수료를 깎아주는 등 참여를 유도할 수는 있습니다. 백화점 입장에선 자신의 마진을 다소 줄이는 대신 매출을 크게 늘려보려는 전략입니다.

 달라진 백화점 영업환경도 각종 세일이 생겨난 배경이 됩니다. 우선 불황에 고령화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소득이 줄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데 인색해졌어요.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고 온라인 쇼핑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합리적 소비’가 대세가 됐습니다. 약간 비싸도 백화점 물건이 좋은 물건이려거니 했던 사람들이 같은 제품을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고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몰을 이용하게 된 겁니다. ‘싼 가격’이 쇼핑의 제1원칙이 되면서 백화점들은 업체와 협의해 세일 물량을 늘리는 한편, 각종 아이디어들을 짜내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올해 봄 정기세일 직후에 남성 패션용품을 집중적으로 할인 판매하는 ‘멘즈위크’를 진행했고, 현대백화점은 세일 기간 동안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디저트, 식당가 음식들도 10~20% 할인해 고객들이 백화점을 찾게 하고 있답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은 비싼 것만 판다는 인식을 과감히 깨고 아웃렛 수준의 이월상품이나 리퍼브(약간의 흠이있는 제품)상품 등 고객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저성장 시대에 어떻게 해서든지 위기를 돌파해보겠다는 전략입니다.

글=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경제를 알고 세상을 보는 눈과 모르고 보는 눈은 크게 다릅니다. 10대 눈높이에 맞춰 경제를 설명하는 틴틴 경제는 편안하고 쉬운, 소화제 같은 지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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