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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시 ‘동천’으로 60년대 초 윌리엄 포크너와 교류

중앙일보 2015.12.29 01:16 종합 2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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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와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윌리엄 포크너(1897∼1962). 당대를 풍미했던 두 대가가 미당의 시 ‘동천(冬天)’을 매개로 교류했음을 드러내는 책자가 발견됐다.

피천득, 영어 번역해 미국 보내
포크너 사후 영문 시선집에 실려
연애시가 인류애 기린 시로 읽혀

 동국대 도서관에서 먼지에 쌓여 있던 영문 시선집 『Henry: A World Poets’ Anthology inspired by William Faulkner’s Painting』이다. ‘헨리: 포크너의 그림에 영감 받은 세계 시인들의 시선집’쯤으로 번역되는 책자는 1960년대 초 기획됐다. 수필가 피천득(1910∼2007)씨가 하버드대 초청교수 시절 미국 지인들로부터 부탁받고 미당에게 시 제작을 의뢰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그림에 능했던 포크너가 그린 한 흑인 노인 초상화에서 받은 느낌을 시로 표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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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은 시 쓰기에 실패했다. 목적지향적 시 작업에 익숙치 않았던 성정 탓이다. 기왕에 써둔 작품을 건냈는데 그게 ‘동천’이었다. 아직 국내에서는 미발표 상태였다. 피천득이 이를 영어로 번역해 미국에 보냈고, 시선집은 포크너 사후 8년 만인 70년에 미국에서 출간돼 미당에게 한 권 배달됐다. 특이한 건 책 앞부분에 포크너의 감사 서명이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대신 쓴 것으로 보인다.

 포크너는 주로 미국 남부의 모순과 폭력을 고발한 작가다. 헨리는 가난하고 무학이지만 단순하고 겸손해 세상 발전에 도움이 되는 모든 이를 지칭한다고 책자 앞부분에서 설명했다. ‘동천’은 원래 연애시다. 40줄의 미당이 한 여대생을 흠모해 지은 시다. 미당의 연애시가 보편적 인류애를 기리는 시로 읽힌 셈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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