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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약속 지켰어, 상금퀸 보미짱의 눈물

중앙일보 2015.12.29 00:59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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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미는 올시즌 일본투어 상금왕에 오르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경기도 수원의 스크린 골프장 내 자신의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보미. [수원=박종근 기자]


올해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투어에서 상금왕을 차지한 뒤 최근 금의환향한 프로골퍼 이보미(27·코카콜라). 그의 시즌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이보미는 쉴새 없이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일본 NHK의 촬영 등으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22일 경기도 수원의 광교에 자리잡은 스크린 골프장에서 그를 만났다. ‘이보미’의 이름을 내걸고 그의 이모가 운영하는 스크린 골프장이었다. 이보미는 “올시즌 성적에 점수를 매기자면 200점이다. 우승을 많이 한 것도 좋았지만 1년 내내 꾸준한 성적을 낸 것이 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작년 아버지 돌아가시고 방황했지만 ‘상금왕 돼라’ 유언 지키려 이 악물어
여자선수 첫 상금 2억엔 넘은 날 우승 트로피 품고 캐디와 함께 울어
LPGA대회 나가 세계 랭킹 올려 … 내년 리우올림픽 참가 꿈 이룰 것


 국내 투어 시절 항상 웃고다녀 ‘스마일 캔디’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보미는 올 시즌 특히 웃을 기회가 많았다. JLPGA투어 32개 대회에 출전해 7승을 거뒀고, 2위도 7번이나 했다. 톱 10에는 무려 23차례나 들었다. 10번 대회에 나가면 7번 이상 10위권 이내에 들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일본 여자 투어 사상 처음으로 상금 2억엔을 넘었다. 일본 남녀 프로투어를 통틀어 역대 최다 상금 기록(2억3049만7057엔·약 22억3000만원)까지 세웠다.

 올해 그가 상금왕에 오른 것은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보미는 지난 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아버지 이석주 씨가 담도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보미는 “지난 해에는 경기 도중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아빠의 유언은 ‘상금왕이 돼라’는 것이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이보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골프를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버지는 이보미의 정신적 지주였다. 이보미는 “1년 3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아버지와 늘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이보미는 “지난달 이토엔 레이디스 대회때 아빠가 꿈에 나와 우승컵을 번쩍 들고 좋아하셨다. 그 다음 주인 에리에르 레이디스오픈 때도 아빠가 꿈에 나오셔서 ‘우리 딸 옆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꿈을 꾸고 난 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이토엔 대회 때 여자 선수 최초로 상금 2억엔을 넘었고, 에리에르 대회에서는 남녀 최다 상금 기록을 세웠다. 이토엔 대회 때는 마지막 날 온종일 비가 내리다가 16번 홀에서 해가 뜨고, 마지막 홀 그린에 무지개가 떴다. 우승 트로피을 품에 안고 아빠 생각이 나서 나도 울고, 캐디도 울었다”고 말했다.

 이보미의 효녀 스토리는 일본팬들에게도 감동을 안겨줬다. 일부 일본팬들은 한국 선수들의 잇딴 우승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유독 ‘보미 짱(이보미의 애칭)’이 우승할 때는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자비를 들여 달력과 헤드 커버 등을 만들어 팬들에게 선물한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보미 짱 신드롬’은 더 거세졌다. 이보미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비행기를 타고 원정 응원을 온 팬클럽 회원들이 대회 때 마다 수백명씩 됐다. 이보미에 관한 책이 나왔고, 내년 1월에는 화보집도 발간될 예정이다. 이보미는 “이런 열성팬들 덕분에 즐겁게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빠는 가족만큼이나 주위 사람들을 많이 챙기던 분이셨다. 나도 아빠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하면 떠오르는 인물’에 대한 한 일본 매체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 이보미는 영화배우 배용준·박근혜 대통령·피겨 스타 김연아에 이어 4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팬클럽 회원들과 만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이보미는 다음달 중순 미국 캘리포니아로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다. 이보미는 “올해 많은 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내년은 기대치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어려운 시즌이 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일단 1승만 하자’는 소박한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그는 내년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겨냥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에도 시선을 돌리고 있다. 현재 이보미의 세계랭킹은 15위. 올림픽에는 국가 당 최대 4명까지만 출전할 수 있는데 그의 랭킹은 한국 선수 가운데 8번째다. 그래서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LPGA투어 메이저 대회에도 출전해 랭킹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보미는 “일본 뿐만 아니라 LPGA투어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면 메달 획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내년에도 200점 짜리 시즌을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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