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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사과 의미 없어…소녀상 그대로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 2015.12.2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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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필근(88) 할머니가 28일 오후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 발표를 TV로 지켜보고 있다. 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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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필근(88) 할머니가 28일 오후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 결과 발표를 TV로 지켜보고 있다. 윤정민 기자


경북 포항에서 혼자 생활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필근(88) 할머니는 28일 오후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 대해 “시골에 혼자 있으니 소식을 잘 모른다”고 입을 뗐다. 할머니는 “박근혜 대통령까지도 맨날 나와서 위안부 얘기 하면 뭐하노, 지금까지 뭐 해결된게 없다”며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할머니는 앞서 지난 8월 본지 인터뷰에서도 “우리 고생한 거 말로 다 몬하는데 그라면 뭐하노. 그놈들(일본)이 눈도 깜짝 안 하는데 되겠나. 내가 오래 살믄 을매나 살겠노. 200살을 사나 300살을 사나. 저기 언제 해결될지 우예 아나”라며 답답한 마음을 표현했다.

양국 대표의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분석들이 TV를 통해 흘러나왔지만 할머니는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은채 “날씨가 추워져 아침에 나무를 좀 주워왔다”며 일상적인 얘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도 회담이 끝나고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어디 한번 보자”며 가만히 TV 화면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할머니는 중간중간 나오는 “위안부 할머니 상처 치유 위한 사업 시행” 등의 자막을 소리 없이 입으로 읽으며 그 뜻을 곱씹어봤다. 또 일본 정부의 재단 자금 지원에 대한 내용이 나오자 “10억엔은 뭐고?”라고 물으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박 할머니는 특히 목소리를 높인 부분은 피해 배상과 관련한 대목이었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라(어린 아이)를 어딘지도 모르는 데로 끌고 가서는 도망친다고 얼마나 괴롭히고 패는지, 말도 못할정도로 많이 맞았다”며 “지금도 잠도 제대로 못잘 정도로 몸 전신이 안아픈 데가 없는데, 평생 고생한 것에 대해 당연히 배상을 해주야지”라고 말하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번 발표에 포함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과 일본의 자금 지원 등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할머니는 “재단이고 뭐고를 만들든 뭘하든 그걸로는 도움이 되는 게 없다”며 “말로만 그카면 안되고 (실제로) 받아야 받은 거지, 우리처럼 아직까지 살아있는 사람들한테 실질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안 죽을때 배상이 나와야지 사과만 하고 말로만 맨날 하면 뭐하냐”며 “평생 남과 같이 못살고 이 고생만 한 우리가 죽으면 그저 죽을줄 아나, 제대로 된 배상 못 받으면 눈 못감고 간다”고 덧붙였다.

할머니는 소녀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중 윤병세 장관이 소녀상과 관련한 문제를 언급하자 “그걸 치워달라카는교? 그럴 와 치우노. 그거 꼭 있어야 되지. 배상 안받고는 못 치운다”고 말했다.

한편 박 할머니는 15살때 고향인 경북 포항의 집 앞에서 일본 군인들에게 붙잡혀 갔다.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간 곳은 일본의 한 위안소였다. 할머니는 “어메랑은 밭에 일하러 가고 어른들도 아무도 없는데 누가 집 앞으로 왔다 아이가. 억지로 차를 태아 가는데 어딘지도 모르지. 촌에서 자라가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얼라때였다. 누가 데려가는지도 모리고, 그냥 남자들 안 있나. 군복 입고 온 일본 남자….”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또 “몇번이나 도망치다가 붙잡히니 죽도록 패더라. 지금도 몸이 안아픈 데가 없다”며 다리 등 아픈 부위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일본에서 모진 고초를 겪다 해방이 되자 배와 경운기 등을 얻어타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동네 총각과 만나 결혼을 하고 두 남매도 낳았지만 얼마 못가 남편과 사별했고, 다른 집 농사를 도와주고 품삯을 받아 자식들을 키웠다. 현재까지 고향인 죽장면 산골 집에서 혼자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며 생활하고 있으며, 대구에 사는 아들과 면사무소 직원 등이 주기적으로 들러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포항=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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