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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팽목의 성탄, 촛불 아홉 개

중앙일보 2015.12.28 00:30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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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팽목항에서. 논설위원

지난해 4월의 잔상 때문일까. 25일 오후, 다시 부두에 섰을 때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통곡과 아우성 속에 사람과 앰뷸런스와 천막이 뒤엉켰던 진도 팽목항은 적막하고 쓸쓸했다.

사람이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데
“세월호 지겹다”고 외면하는 우리


 “한 놈만 미안하다고 해라. 한 놈만. 변명하지 마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 청문회 방청석에서 생존 화물기사 김동수씨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진상 규명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책임자들을 지켜본 뉴스타파 촬영기자 김수영은 청문회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모두 최선을 다하고, 모두 각자 할 일을 했는데… 왜 가라앉는 배가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아무도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는지 이 모든 것이 미스터리가 되어버렸다.” ‘세월호, 지겹지도 않냐’는 만류를 뒤로하고 바다 앞에 서게 한 건 나도 그중 한 놈이었다는 죄책감이었다.

 ‘미안해. 기억할게.’ ‘함께 할게요. 힘내세요!’ 빨간색 등대로 향하는 회색 콘크리트길 왼편으로 저마다의 다짐을 적은 ‘기억의 벽’이 이어졌다. 오른편엔 노란색 플래카드들이 겨울 찬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으로 간절히 요구합니다. 온전하게 인양을 해주세요.’ ‘피 토하는 울부짖음으로 대할 수 있는 엄마의 자격을 안겨주렴.’

 엄마·아빠들은 처음엔 시신이 내 아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 아이는 구조돼 있을 거야, 생각했다고 한다. 사나흘 후부터 내 아이가 마지막이면 어떻게 하지, 또 다른 공포가 덮쳤다. 시신 찾은 엄마 자리에 앉으면 나온다. 화장하면 나온다. 집 청소하면 나온다. 소문이 돌 때마다 엄마들은 자리쟁탈전을 했고, 화장을 했고, 청소를 했다. 하지만 아직 아홉 명이 세월호 안에 남아 있다.

 오후 6시30분. 컨테이너 박스 분향소 옆 쉼터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땅끝노회 주관으로 성탄 예배가 시작됐다. 배 모양으로 놓인 촛불들과 그 가운데 아홉 개의 촛불이 참석자 70여 명의 얼굴을 밝혔다. “저 들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잠든 목자들/ 한 천사가 전하여준/ 주 나신 소식 들었네….” 목사들과 신자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찬송했다.

 예배가 끝나고 미수습자 가족들이 앞으로 나왔다. “어떻게든 찾아서 장례 치러주고 싶어 버티고 있습니다.” 동생과 여섯 살 조카를 찾지 못한 권오복(60)씨가 고개를 숙였다. 단원고 학생 조은화 엄마 이금희(47)씨는 푸석한 얼굴로 흐느끼며 말했다.

 “우리 은화가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 게 정말 싫은데… 2014년 4월 16일을 619일째 살고 있습니다. 그 숫자가 네 자리가 되면 어쩌나, 인양하다가 어렵다고 하면 어쩌나, 인양됐을 때 아이들이 없으면 어쩌나… 두렵고 무섭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면 세월호에서 아홉 사람을 안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씨는 반문했다. 인양 결정, 하지 않았느냐고요? 작업하고 있지 않느냐고요? 인양은 아이를 찾는 겁니다. 가족을 만나는 겁니다. 그래야 진상 규명을 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겠다고 하지 마시고, 찾고 기억하겠다고 해주세요. 가족들을 지원해온 호남신학대 오현선 교수와 제자들, 페이스북 친구 30여 명이 둘러앉았다. 잊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잊고 있었습니다.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겠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자들을 대신해 때 묻지 않은 청년들이 무릎을 꿇고 울먹였다.

 쉼터에서 나왔을 때 어둠에 묻힌 팽목항에서 분향소만 환하게 빛났다. ‘謹 세월호 팽목 분향소 弔’. 나는 창문 안쪽 희생자 295명의 사진과 미수습자 9명의 빈 액자를 보면서 ‘세월호가 지겹지도 않냐’는 물음을 떠올렸다. “사고일 뿐”이라고,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고, 그러니 이젠 잊자고 속삭이는 목소리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도 당신도 마음 한구석 불편함이 싫은 것이다. 그만 털어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편안해질 수 있을까. 같은 사회를 살던 사람이 맹골수도에 있는데, 정부가 말하는 그날의 진실에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데. 4월 16일을 619일째 살고 있는 건 은화 엄마만이 아니었다. 2015년 우린 세월호에, 우리 스스로 짓고 방임한 악(惡) 속에 갇혀 있었다.  팽목항에서.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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