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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큰 정치와 작은 정치

중앙일보 2015.12.28 00:28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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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난 후 그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그렇게도 뜨거운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개인적으론 오래전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데 대해 안타까워했고,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서 그의 공적을 재평가하기 위한 학술작업을 준비해 보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 중 누가 가장 잘했느냐’는 식의 여론조사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매우 적었고 순위로도 거의 꼴찌에 가까웠다. 심지어 군사정권의 독재자였던 전두환에 대한 평가보다 낮게 나타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이 정도였는데, 정작 세상을 떠나자 많은 국민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또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나마 김영삼 정부에 대한 평가가 균형감을 갖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예상치 못한 애도 열풍이 의아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YS-DJ의 ‘큰 정치’에 대한 그리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양보와 결단
선거구 획정과 쟁점 법안마저
풀지 못하는 여야의 ‘작은 정치’
대승적 차원에서 문제 접근하며
명분도 중시한 큰 정치 배워야


 그런데 사회 현상이라는 것은 그 당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품고 있는 심정의 발로일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에서 충족되지 못한 무언가를 세상을 떠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에서 찾고자 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큰 정치’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김영삼·김대중이 살아 있을 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이들은 참으로 큰 정치인이었다. 권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종종 갈등도 빚었지만, 이들은 갈등 속에서도 대의명분을 잃지 않았고 눈앞의 이익 때문에 전체 판을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양보도 하고 또 배포 있게 결단도 내리면서 정치판을 이끌어 나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은 이러한 큰 정치의 시대를 그리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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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가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선거구 획정과 쟁점 법안 처리를 두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협상이 계속해서 결렬되고 있다. 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라서 여야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당 대표까지 참석한 회담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결말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내 정치든 외교 무대에서든 협상이라는 것이 실무자들이 먼저 만나 이견을 조정하거나 좁히고, 실무자 선에서 해결되지 않는 쟁점은 최고 책임자들 간 회합을 통해 최종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는 여당과 야당의 당 대표가 직접 참여해 수차례나 만났는데도 여전히 별다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결과는 김무성·문재인 두 당 대표의 정치력 부족과 약한 리더십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이들의 답답한 모습을 보면서 만약 김영삼·김대중이 여야의 당 대표였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삼·김대중이 서로 예닐곱 번씩 잇따라 만날 일도 없었겠지만, 둘이서 만났다면 정치적 결단을 통해 쟁점이 해결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집권해야 한다는 큰 목표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큰 틀에서 문제를 바라보려고 했고 명분도 중요시했다. 그러나 지금 김무성·문재인 두 대표는 그저 내년의 총선에서 한 석이라도 더 얻어 보겠다고 하는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있는 모습이다. 불신으로 가득 찬 한국 정치의 개혁을 위한 고민도 보이지 않고, 제대로 된 정치적 명분도 없다.

 여야 모두 문제가 많고 한심해 보이지만 그래도 굳이 책임을 묻자면 국정 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는 여당의 잘못이 조금은 더 커 보인다.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고 나가야 하는 여당이 야당과 똑같이 행동해서는 문제를 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작은 정치’에 골몰하지 말고 대승적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3당 합당 이후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게 된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1990년 10월 지방자치 도입 등 네 가지 요구 조건을 걸고 단식에 들어갔다. 노태우 대통령은 합당 이전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 3당이 통과시킨 지방자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김대중 총재에게 지방자치제의 도입은 관권 선거를 막고 자신의 지역적 지지 기반의 확대를 위해 중요한 방안이었다. 그때 민자당 대표였던 김영삼이 단식 중인 김대중을 방문했고 지방자치 도입을 약속하며 갈등을 풀었다. 김대중이 지방자치를 요구한 것은 정치적 이해가 걸려 있었던 것이지만 명분이 있는 주장이었고, 김영삼 역시 정권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이견이 있었지만 대승적 안목에서 이를 수용한 것이다.

 김무성·문재인 대표 모두의 꿈은 대권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꿈에 걸맞은 ‘큰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치에 국민은 답답해하고, 새삼스럽게 김영삼·김대중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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