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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미친 꿈 꾸던 양떼목장 전영대

중앙일보 2015.12.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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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말의 해 막바지, 각 언론의 집중 취재 대상이 양이었다.
해가 바뀔 즈음이면 그 다음해의 12간지 동물을 조명하느라 각 언론사는 부산을 떨게 된다.
다가올 양의 해, 각 언론사가 찾아갈 곳은 뻔했다.
바로 ‘대관령 양떼목장’이었다.

이제 양떼목장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건 아니다.
한 남자의 제대로 된 미친 꿈(?)이 있었다.


2005년 8월,
여행사진 연재용 사진을 찍기 위해 대관령 일대를 헤집다가 우연히 양떼목장을 들렀다.
푸른 초원, 양들이 노니는 목장, 우리나라에서 기대 못 했던 풍광이었다.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 찍은 사진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이른 새벽 빛이 비춰오는 목장 사진을 기대하며 한 달 후 다시 찾아갔다.
마침 딱 원했던 빛이 찾아들었다.
그런데 원하는 장소에 양이 한 마리도 없었다.
허탈했다.

아쉬움에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목장입구의 컨테이너 사무실 앞 쉼터에 앉아 하염없이 목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한 사내가 컨테이너 박스 문을 열고나오며 인사를 건넸다.
“일찍부터 오셨나 보죠? 날씨가 쌀쌀한데 커피 한잔 드릴까요?”

빈속에 새벽부터 목장을 오르락내리락한 처지니 염치를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다시 컨테이너로 들어간 그가 뜨끈한 믹스 커피를 타왔다.
커피를 주고받으며 스친 그의 손, 놀랄 만큼 거칠었다.

그 찰나의 느낌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노동이 느껴졌다.
뜨끈한 커피가 속으로 들어가니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새까맸다. 그것 또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피부라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의 입성과 그을린 얼굴, 투박한 손, 분명 목부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 사내가 내게 사진작가냐고 물었다.
난 기자라고 답했다.
심심찮게 사진작가들이 찾아오기에 사진작가일 것이라 짐작했다고 그가 말했다.

그의 마음 씀씀이를 받은 데다 그의 물음을 받은 터니 인사치레로 뭐하시는 분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가 목장 주인이라고 답했다.
그의 답에 깜짝 놀랐다.
그가 이 그림 같은 목장을 일군 주인공이라고는 추호도 생각 못했었다.

내친김에 그에게 양떼 목장을 가꾼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대관령이 얼마나 추운지 아시죠? 겨울이면 기온은 수은주 눈금 아래로 내려가죠. 눈이 한번 오기 시작하면 사람의 키만큼 오죠. 바람은 사람도 날릴 정도로 불죠. 말도 마세요. 징글징글 합니다. 그렇게 버텨낸 게 17년이네요. 그간 산짐승처럼 살았어요.”

도대체 왜 이 추운 곳에 양떼목장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물었다.
“원래 제약회사 영업과장이었어요. 1986년에 버스 타고 우연히 이곳을 왔다가 목장을 하고픈 꿈이 생겼어요. 그 후로 한 열 번쯤 왔어요. 왜 있잖아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하는 노래요. 그런 꿈을 꿨어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직장생활에 신물도 났던 터구요. 그래서 아내를 설득하고 집을 팔아 목장 지상권을 샀어요. 여기로 들어온 게 1988년입니다.”

우리나라에 양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때마침 지리산 자락에 있던 면양 종축장에서 양 230마리를 점포정리 세일 했어요. 한 마리당 오 만원에 전부 구입했죠. 그런데 종축장 사람들이 팔면서도 걱정을 할 정도였죠. 미친 사람 보듯 했어요.”

어떤 확신이 있었는지 물었다.
“군청이나 축산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관광목장 아이디어를 얘기했더니 하나같이 외계인 쳐다보듯 했습니다. 그래도 미쳐있었으니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질문은 필요 없었다. 봇물 터지듯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2년째 되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돈은 다 떨어졌죠. 박아 놓은 목장 쇠말뚝은 바람에 뽑히고, 눈에 내려앉고……. 고물상에서 쇠말뚝을 구해다가 다시 박았죠. 다시 뽑히거나 내려앉지 않게 하려고 말 뚝 하나당 한 이 십 번 해머 질을 했습니다. 만 오천 여 개 박았어요. 아내와 둘이 매일 그렇게 살았습니다. 애들 옷 한번 사 입힌 적 없어요. 다 얻어서 입혔어요. 한번은 귀가 너무 아팠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참았죠. 중이염이 심했나 봐요. 그걸 그냥 뒀더니 한쪽 귀가 거의 먹통이 되었습니다.”

뭐에 미친 사람인지, 미련한 사람인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인가 TV 프로그램 ‘체험 삶의 현장’에서 연락이 왔어요. 출연자들에게 양치기 체험을 시키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절호의 기회였는데 거절했습니다. 양치기 체험 출연자에게 줘야하는 일당이 없었어요. 아마 거지도 우리를 부러워하지 않았을 겁니다. 말 그대로 산짐승이었죠.”

그는 ‘산짐승’이란 표현을 시시때때로 했다. 그만큼 징글맞게 살았다는 뜻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담당 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연재용 사진을 찍으려 왔는데, 하도 기가 막힌 사람을 만났으니 인터뷰를 정식으로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전화로 간략히 요점만 설명했는데도 부장은 흔쾌히 좋다고 했다.

다시 한 달여 후, 정식인터뷰로 만났다.
이런저런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나무에 매어진 그네를 보았다.
그네를 타며 사진을 찍자고 그에게 제안했다.

그가 말했다.
“여태 한 번도 타본 적 없어요. 놀러 온 손님들 타라고 매어둔 겁니다.”

그랬다.
나무에 매어진 그네도,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도, 양들이 노니는 초원도,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방문객을 위한 것이었다.

산짐승처럼 산 한 남자의 미친 꿈,
그의 꿈 덕분에 우린 ‘양떼목장’이란 현실을 얻은 게다.
누구나 ‘양떼목장’을 알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
제대로 미친 꿈을 꾼 그의 이름, ‘전영대’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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