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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오는 거야? 친구 문자 받자 ‘재촉 말라 전해라’ 짤방으로 답장

중앙일보 2015.12.26 01:12 종합 1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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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상에서 짤방의 모습은 곧 그걸 사용하고 있는 ‘나의 모습’과 동일시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매력적인 짤방을 찾아나선다. (왼쪽 위부터) 대나무에 매달린 개 ‘개죽이’, 깜짝 놀란 개 ‘개깜놀’, 온몸이 근육질인 캥거루, 시바견 ‘도기’.


 시작은 미약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인터넷 ‘폐인’들이 많이 드나들던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사진 갤러리에는 사진 없이 글을 올리면 해당 글을 삭제시키는 운영 규칙이 있었다. 그래서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버릇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함께 내용과는 상관없는 사진을 올리곤 했다. 그것이 바로 ‘짤방(잘림 방지 사진)’의 시작이다.

[세상 속으로] 온라인 새 문화 ‘짤방(잘림 방지 사진)’
음흉한 햄스터 등 톡톡 튀는 사진
네티즌들 게시판·대화창서 사용
가수 이애란, 먹방 BJ 김형욱 스타로
“짤방 하나로 삶이 완전히 달라져”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이왕 짤방을 올리는 거 좀 더 재밌는 사진을 올리고 싶어 했다. 그 시초가 벽 틈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개 ‘개벽이’, 대나무에 매달려 있는 강아지 ‘개죽이’, 독특한 메이크업을 한 일본 가수 ‘초난강’ 사진 등이었다. 누리꾼들은 웃긴 사진들을 모아 합성하고 서로를 ‘폐인’이라 부르며 잉여들만의 ‘짤방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그런데 요즘 ‘잉여문화’의 대명사였던 짤방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와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 환경이 확대되면서 짤방은 젊은 세대의 새로운 ‘대중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짤방을 수집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수요에 맞게 짤방을 공급한다. 이 모든 행위는 누리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다.

 짤방들은 온라인 게시판, 모바일 메신저 대화창 등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회사원 김진영(30)씨는 “평소 재밌는 짤방을 볼 때마다 저장해놓고 친구와 대화할 때 문자 대신 쓰곤 한다”며 “이동하면서 문자를 치는 게 귀찮기도 하고 때로는 짤방 하나가 글자 몇 개보다 더 소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 인기 있는 짤방들은 대체로 단순하되 사람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유형이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대화에 스며들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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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인생’의 이애란(左), ‘짤방 요정’ 배우 전광렬(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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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즈 마요미’ 배우 마동석(左), ‘주스짤’로 유명해진 배우 박동빈(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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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남’으로 스타가 된 김형욱씨(左), 친구를 놀릴 때 쓰는 ‘오징어 짤방’(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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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햄스터 ‘에비츄’(左), 슬픈 개구리 ‘페페 더 프로그’(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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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눈물이 잔뜩 고인 고양이(左), ‘어쩌라고?’ 묻는 듯한 포즈의 새(右).

 대표적인 예가 요즘 뜨고 있는 ‘전해라’ 짤방이다. 사진 속에는 마이크를 들고 열창하는 여자 가수가 있다. ‘못 간다고 전해라’ ‘재촉 말라 전해라’ ‘또 왔냐고 전해라’ 등 노래 가사로 보이는 자막도 적혀 있다. ‘야, 너 지금 어디야. 언제 오는 거야?’라는 채팅창 속 친구의 말에 ‘한 10분쯤 걸릴 거야. 조금만 기다려’라고 답장하는 대신 ‘재촉 말라 전해라’ 짤방을 10초도 안 돼 보낼 수 있다. 무표정으로 채팅창을 바라보던 상대방을 피식 웃게 할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여러 차례 대화창에서 짤방이 오가다 보면 인기 있는 짤방의 주인공들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눈에 친숙해진다. 실제 만났거나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 본 적도 없지만 괜히 호감도가 상승하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짤방의 주인공이 일약 스타가 되기도 한다. ‘전해라’ 짤방의 주인공 가수 이애란씨는 짤방이 뜨기 전보다 행사비가 6배나 올라 이제야 앨범 실패 후 진 빚을 갚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본지와의 인터뷰(11월 24일자 23면)에서 “처음에는 노래에 집중하고 있는 내 표정이 너무 웃겨서 민망하기도 했지만 짤방이 뜬 덕분에 요새는 젊은 친구들까지 나를 알아보고 좋아해준다. 악용되지만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든 내 사진을 활용해도 좋다”고 말했다.

 요즘 온라인에서 ‘갓형욱’으로 불리는 김형욱(37)씨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7년 전 한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한번에 라면을 5개 먹고 계란 두 판을 해치우는 ‘120㎏ 아들’로 등장했다. 당시 방송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그가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라면 끓여주세요”라고 하며 손으로 머리를 짚고 있는 장면은 누군가에게 캡처돼 현재까지 사랑받는 짤방이 됐다. 이 짤방으로 택시기사 일을 하던 김씨는 ‘현기증 남(男)’이라 불리며 각종 TV 프로그램 출연은 물론 ‘먹방(먹는 방송)’으로 아프리카TV 인기 BJ까지 됐다. 김씨는 “짤방 하나로 내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알아보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는 김씨를 사칭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그는 “내 이름을 사칭한 누군가가 온라인에서 상품권 등 물건을 파는 걸 목격한 적이 있는데 또다시 그런 일이 생겨도 다들 속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는 절대로 온라인에서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당부했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PC와 모바일 등을 통해 네트워크 연계성이 용이해지면서 짤방은 이제 어디서든 스스로를 남들과 차별화하는 새로운 도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짤방을 통해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센스 있고 유쾌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보여지길 원한다. 짤방 이미지가 짓는 표정은 곧 올린 사람의 심리 또는 이미지가 된다. 귀여운 동물의 사진이나 만화 캐릭터 등이 짤방으로 인기 있는 이유다. 동물 중에서도 개 사진은 상황에 맞게 ‘개아련’ ‘개추워’ ‘개졸림’ 등의 제목을 달고 활발히 쓰인다. 만화 캐릭터로는 슬픈 표정을 한 개구리 ‘페페 더 프로그(PePe the frog)’, 귀엽지만 어딘가 음흉함이 묻어나는 햄스터 ‘에비츄’ 등이 있다.

 인기 연예인도 짤방의 그물을 피해갈 순 없다. 이들이 도마에 오르는 건 주로 짤방을 통해 평소 이미지와 다른 반전의 이미지를 드러냈을 때다. 짤방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탤런트 전광렬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짤방 요정’으로 통한다. 주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진중한 역할을 맡지만 표정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영상을 캡처해 보면 쓸 만한 짤방이 많이 나온다는 게 짤방 전문 누리꾼들의 설명이다. ‘러블리즈 마요미’라고 불리는 배우 마동석 역시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표정으로 짤방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기다. 특히 마동석은 짤방이 뜨면서 ‘덩치는 크지만 마음은 여린’ 아빠 역할로 핫초코 CF를 찍기도 했다.

 디지털 기술이 갈수록 진화하면서 움직이는 짤방을 뜻하는 ‘움짤’ 역시 인기다. 움짤은 사진 여러 개를 시간대에 맞게 이어 붙여 영상처럼 보이게 만든 짤방이다. 움짤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 건 미국의 한 포르노사이트 덕분이라는 설이 있다. 대용량인 ‘19금’ 동영상을 하나 올리는 것보다 이를 움짤로 만들면 훨씬 적은 용량임에도 동영상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짤방 문화는 국내에서만 통하는 얘기가 아니다. 해외에서는 짤방과 유사한 개념인 ‘밈(meme)’이 있다. 밈은 원래 모방 같은 비유전적 방법을 통해 전달된다고 여겨지는 문화의 요소를 뜻하는데, 1976년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이 개념을 도입했다. 주로 남미와 북미권에서 이미지·동영상 등을 재미있게 재활용해 사용하는 놀이문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짤방 멍멍이’ 도기는 구글이나 유튜브에 ‘DOGE MEME’이라고 검색하면 관련 밈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짤방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임문영 인터넷 칼럼니스트는 “빠르게 흘러가는 온라인 환경에서 사람들은 갈수록 길게 나열된 글보다 이미지가 뚜렷한 사진 한 장에 더 끌린다”며 “최근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이런 현상에 발맞춰 사진이나 영상을 쉽게 찍고 올릴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연구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출시된 아이폰6S는 사진을 찍기 전후 3초를 동영상으로 녹화할 수 있다. 이러한 물결 속에서 사람들은 짤방을 보다 능동적으로 갖고 놀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그렇게 터득된 짤방의 오랜 생명력은 ‘짤림 방지’라는 본래의 어원을 뛰어넘은 지 이미 오래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짤방(잘림 방지 사진)=게시판에 글을 작성할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함께 올리는 내용과 상관없는 사진. 자신의 글이 게시판에서 삭제되지 않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고 곧 유행이 됐다.


[S BOX] 저작권 침해 막는 ‘짤로그’ 앱도

짤방 문화가 발달하면서 저작권 문제도 함께 대두되고 있다. 연예인 사진이나 웹툰 이미지, 사진 작품 등이 곧잘 짤방의 소재로 사용되지만 원 저작자나 초상권자의 동의를 받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어떤 일러스트레이터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앞으로 자신의 그림을 퍼 가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면서 “출처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19금 사이트나 간접 광고 글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주점 간판에 쓰인 것도 봤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유명해진 짤방들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의 식당 메뉴판이나 간판 등으로 사용된다. 일반 기업에서도 마케팅 용도로 짤방을 활용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하지만 원 출처는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짤방이 소셜미디어에서 돌고 돌다 보면 어느새 출처가 지워진 채 누리꾼들의 ‘공유물’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짤방의 저작권 침해를 막기 위한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했다. 지난달 KAIST 출신의 엔지니어이자 소설가인 박성진 스토리허브 대표가 출시한 ‘짤로그’다. 이곳에 짤방 저작권을 등록한 사람은 한 달 새 1000여 명을 넘어섰다. 저작권보호센터 홍훈기 사이버팀장은 “영화나 음악과는 다르게 사진은 포토샵 등으로 변형이 용이해 저작권 위반 여부를 가려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협회 차원에서도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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