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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사이트] 임박한 유가 20달러 시대, 대변혁에 대비할 때다

중앙일보 2015.12.26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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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가 곤두박질 중이다. 배럴당 20달러대 진입이 코앞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신보고서에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에 진입해야 공급과잉이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0달러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원유 값이 10달러대로 떨어진 건 1986년과 1998년 두 차례 있었다. 석유가 '검은 황금'에서 '검은 눈물'이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세계 3대 유종, 가파른 하락…'20달러 진입' 경쟁하는 형국
최근 국제 유가 급락은 여러모로 심상찮다. 우선 속도다. 지나치게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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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산 중질유(WTI)는 이달 배럴당 40달러 아래로 떨어진 데 이어 3주 만에 33.87달러까지 밀렸다. 2009년 2월 이후 가장 낮았다. 미국의 원유 재고가 예상을 밑돌면서 23일엔 소폭 반등해 37.50달러에 마감했다. 이달 초 40달러가 넘던 브렌트유 역시 22일(현지시각) 36.11달러로 급락했다. 장중 35.98달러까지 밀렸는데, 이는 2004년 7월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23일엔 역시 소폭 반등해 37.36달러에 마감했다. 브렌트유가 WTI 가격을 밑돈 것은 지난 1월 이후 처음이다.

우리가 많이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22일 31.94달러. 2005년 12월 이후 가장 낮았다. WTI, 브렌트, 두바이유가 누가 먼저 20달러대에 들어가느냐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형국이다.

사실 이들 3대 유종(油種)은 그나마 선방하고 있다. 캐나다나 이라크, 멕시코산 원유는 이미 20달러 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멕시코 원유는 지난 주 배럴당 28달러, 이라크 원유는 배럴당 25달러, 서부 캐나다산 원유는 22달러 아래에서 거래됐다.

◇저유가 부작용…한국 주축산업 '턴어라운드' 기회는
이렇게 유가가 빨리 떨어지면 부작용이 생긴다. 건설·조선·철강·석유화학 등 가뜩이나 빌빌대고 있는 우리의 주축산업이 턴어라운드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산유국의 돈이 떨어지고 신흥국 위기가 심화하면서 세계 물동량이 줄고 우리 수출 기회도 같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조단위 적자를 내고 있는 조선업종은 대형 해양프로젝트 발주가 뚝 끊기면서 일감 절벽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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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유가가 떨어졌던 과거와 달리 최근의 저유가는 해외 수요를 감소시켜 수입액이 줄고 소비가 늘어나는 긍정적 효과를 상쇄하고도 부작용이 더 크다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10% 하락했을 때 1988~2002년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1%포인트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2001~2014년에는 0.16%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미국도 감당 안 돼…세계 경제 판이 바뀐다
유가 20달러 시대는 세계 경제의 판을 바꿀 수도 있다. 40달러 이하의 유가는 미국도 감내하기 어렵다는 게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분석이다. 글로벌 수요부족이 현실화하면 미국 혼자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글로벌 산업구조의 대전환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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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를 원료로 하는 산업의 수급과 가격이 요동치고 정유·조선·해운 등 관련 산업은 세계적으로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으로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초죽음이 될 것이다. 이미 옥수수로 바이오디젤을 만들던 회사들은 줄줄이 폐업하거나 업종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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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 지형 변화도 뒤따를 것이다. 산유국들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고 국제 관계에서 키플레이어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고 브라질은 국가 부도 위험이 커졌다. 러시아도 정치·경제·사회의 대변혁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구조가 쉽게 바뀔 가능성은 아주 작다. 요즘 유가 하락은 수급 논리와 정치·지역 논리가 맞물린데다 강한 달러까지 겹쳐 가속도가 붙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합의에 실패한 것도 그래서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셰일가스와 맞불을 놔야한다는 입장이다. 베네수엘라처럼 당장 현금이 필요한 산유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 갈 수밖에 없다. 핵 협상을 마무리한 이란은 내년 1분기 원유 증산을 예고해놓고 있다. 여기에 날씨까지 가세했다. 적도 부근의 바닷물 수온이 올라가는 엘리뇨 현상까지 발생해 난방유 수요를 끌어내렸다.

◇원유값 추락, 언제쯤 멈추나…한국의 운명은
원유값 급락은 빨라야 내년 4분기에야 멈출 것이란 게 골드만삭스·씨티은행의 전망이다. 이 기간 동안 세계 경기는 지독한 수요 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산유국과 자원 부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미국이 다시 절대 패권을 쥐면서 태평양 중심의 역학 구도가 다시 짜여질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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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택은 많지 않다. 주어진 시간안에 서둘러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국가 에너지전략도 다시 세워야 한다. 게다가 파리 협약으로 갈 길이 더 바빠졌다. 석유·석탄 의존을 줄이고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갈아타야 한다.  저유가는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나라 전체를 뜯어고친다는 각오로 수출·산업 전략과 성장 전략을 다시 짜 다가올 디플레 시대에 한치의 빈틈도 없이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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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가 강하게 반등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석유메이저나 투자은행들의 분석은 당분간 원유 공급 과잉이 해소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쪽이다.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실보다 득이 많다는 견해도 여전하다. 역시 그럴 수 있다. 유가 하락이 소비 여력을 크게 늘리는 데 기여한다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주유소 기름값 사례에서 보듯 국제 유가 급락이 우리 기름값에 같은 비중으로 연동되지는 않는다. 기름값의 60%가 세금이기 때문이다.

소비 진작 효과가 눈에 보이기까지는 단단히 경계하는 게 옳다. 전세계에서 저유가의 저주, 저유가의 역설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우리의 대응도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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