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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성과 비이성을 건너게 하는 액체…과학기자가 파헤친 ‘잔 속의 문명’

중앙일보 2015.12.26 00:47 종합 2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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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프 술의 과학
아담 로저스 지음
강석기 옮김, MID
336쪽, 1만5000원


술은 과음 다음날 아침에야말로 존재감을 과학적으로 느끼게 한다. 과량의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진 아세트알데히드가 분해·배설되지 않아 엄청난 숙취를 안긴다. 애주가라면 한번쯤 읊어봤을 과정이다. 저자는 이성과 비이성의 영역을 극단적으로 건너게 하는 이 액체를 파헤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평가에 따르면 저자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 과학 저술가 중 하나’인 베테랑 과학기자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술은 잔 속의 문명이다”라고 선언했다. 술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과학이 심오하게 작용하고 있고, 문명도 이와 함께 발전해왔다.

술은 균류의 한 종류인 효모에서 출발한다. 효모는 당을 먹고 발효한다. 밀, 보리, 과일 등 당의 출처와 증류 과정에 따라 빚어지는 술이 달라진다. 저자는 맥주 양조장, 위스키 증류소, 오크통 공장 등을 찾아가 과정을 살펴본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의 맛과 향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특히 이상한 라벨과 조합이 넘쳐나는 와인 세계에서 그 맛을 설명하기 쉽지 않다. 저자는 한 대학의 연구 결과를 통해 초보자와 프로 소믈리에가 와인을 맞추는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음을 꼬집는다. 차이는 말로 표현하는 기술에 있었다. 꽃, 허브, 담배, 석회질 흙, 산성도, 탄닌 등과 같은 말들이다. “와인을 기술하는 단어를 많이 알수록 사람들은 와인에 대한 식별력이 실제보다 더 뛰어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술 마신 다음날 숙취로 출근하지 못한 사람들의 생산성 손실을 취합해 계산하면 미국의 경우 연간 16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도 숙취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지 않다. 2009년 네덜란드에서 알코올숙취연구그룹(AHRG)이 생겼다. 저자는 헛개나무를 실험한 이야기도 곁들인다. 헛개나무에 든 디하드로미리세틴 성분은 숙취에 효과가 있고, 이 성분으로 만든 영양보조제가 실제로 미국에서 팔리고 있다는 게 흥미롭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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