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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35년 전의 샴쌍둥이를 기억하며

중앙일보 2015.12.26 00:13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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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

버림받아 병원서 동냥젖 먹고 방긋 웃던 어린 생명들
고아 아닌 고아로 반년을 살다 간 아기들 잊지 못해

신경외과학

미국 대통령선거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모양이다.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이 대세론을 앞세워 굳히기에 들어갔다. 반면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가 선두인 가운데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젭 부시 전 주지사, 벤 카슨 등이 뒤를 쫓고 있다.

 트럼프는 널리 알려진 부동산 재벌이다. 카슨은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학계에서는 꽤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다. 그는 세계 최초로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분리수술에 성공해 신의 손으로 불린 사람이다.

 카슨의 등장이 오래전에 있었던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에 관한 쓰라린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약 35년 전 신경외과 전공의 시절의 일이다. 소아청소년과에서 의논할 환자가 있다는 연락이 왔다. 별생각 없이 교수님과 함께 신생아실로 갔다. 그런데 아기들을 보는 순간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명의 여자 아기 머리가 붙어 있었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였다. 다행히 움직임은 정상이었고 자극에 각각 독립적으로 반응했다. 교수님도 당황했고 당장은 구체적인 치료 방침을 세울 수 없었다. 몸이 큰 아기를 A, 작은 아기를 B로 부르기로 하고 일단 발길을 돌렸다.

 깊은 고민이 시작됐다. 붙은 머리를 분리하는 것이 치료 원칙이다. 그러나 아기들이 너무 어릴뿐더러 당시 의료 수준으로는 분리수술이 불가능해 보였다. 어느 정도 자라기를 기다리며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X선 검사상 두개골이 붙어 있었다. 또한 붙은 곳의 커다란 혈관에서 피가 섞이고 있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젊은 부모는 일방적으로 친권을 포기하고 연락을 끊었다. 할 수 없이 아기들은 병원에서 동냥젖을 먹고 옷도 얻어 입으며 자랐다. 전공의와 간호사들이 이름도 없는 아기들의 백일잔치를 해주었다. 자신들의 처지도 모른 채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약했던 B에게 기어이 심장 이상이 발생했다. 긴급회의가 열렸다. 모두 살리기 힘든 만큼 B를 희생시키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아무래도 B는 힘들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 방안이었다. 하지만 B를 희생시킬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무시할 수 없는 윤리적으로 합당한 논리였다. 의료 현장에서 현실론과 이상론이 충돌했다. 솔로몬 왕이 살아 돌아온다면 묘책이 있었을까. 부모가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갑론을박이 이어졌으나 속수무책이었다. 사라진 부모가 야속했다.

 생후 181일째 되는 날 극진한 보살핌에도 B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피를 공유하고 있어 빨리 B를 떼어내지 않으면 A도 위태로운 상황이 됐다. 황급히 한밤중에 A를 살리기 위한 응급수술이 시작됐다. 숨 막히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혈관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출혈이 있었다. 필사의 노력에도 어린 A가 출혈을 이겨내지 못했다. 두 아기는 부검을 위해 병리과로 옮겨졌다.

 날이 밝았다. 모두들 침울했다. 응급수술로 잠을 설친 탓도 있지만 뻥 뚫린 마음의 상처가 컸다. 고아 아닌 고아로 반년을 살다간 두 아기가 불쌍했다. 모두가 진심으로 명복을 빌었다.

 모든 생명의 탄생은 가장 성스럽고 축복받을 일이다. 자식을 키울 때는 젊기도 하고 또 바쁘게 사느라 잘 몰랐다. 그런데 손주가 태어나 커 가는 것을 보면서 새삼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실감한다.

 마크 저커버그가 52조원을 기부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막 태어난 딸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 세계가 감동했고 매스컴도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얼마나 좋았으면 전 재산을 내놓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가난했던 샴쌍둥이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배 속에서 열 달을 키워 배 아파 낳은 아기를 포기할 때 엄마의 마음은 많이 아팠을 것이다. 저커버그가 부럽기도 하지만 샴쌍둥이 엄마의 쓰렸을 가슴이 더 마음에 걸린다.

 샴쌍둥이 아기가 입원했을 때 듣기로 부모는 아들을 바랐다고 한다. 소원대로 지금은 서른이 넘었을 아들과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겁게 보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김동규 서울대 의대 교수 신경외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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